- 솔직 담백 군대 이야기
주호민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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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군대 이야기, 둘째, 축구 이야기, 셋째,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라는 우스개에요. 정말 이런 우스개처럼 남자들은 모였다 하면, 마치 여자들이 꽃보다 남자 얘기하듯 정신없이 얘기를 하지요. 군대 어디서 나오셨어요? 3사단, 백골부대 아시죠? 저 거기 나왔습니다. 거기 빡세다고 유명하던데, 저는 귀신 잡는 해병대 나왔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동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친해지는 남자들, 여성들이나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군대에서 그렇게 고생했다고 욕하면서도 군대 얘기가 나오면 눈에서 불을 뿜으며 신나게 얘기를 되풀이하는 남자들. 곁에 있던 사람들은 고마해라, 마이 했다, 둘레에서 손사래를 쳐도 군대 얘기가 나오면 남자들은 또 자기 얘기를 꺼내게 됩니다. 내가 군생활 할 때는 말야~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편안하게(?) 살아오던 청년들은 군대에서 엄청난 문화충격을 받습니다. 갑자기 짧아진 머리,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이별, 어색한 전투복과 소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시작하는 집단 내무 생활, 이상한 나라에 온 기분으로 이색체험을 하는 거죠. 그렇기에 군대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어린아이까지 알 정도로 널리 퍼졌지요.

 

군대 얘기, 끔찍하게 고생했거나 눈물 나게 불쌍하거나

 

군대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너무 추워 오줌발이 얼어붙었다는 얘기부터 화장실에서 울면서 초코파이를 몰래 먹었다는 얘기까지 끔찍하게 고생했거나 아니면 눈물 나게 불쌍하거나. 이 둘은 서로 겹쳐있지요. 군대는 전쟁을 준비하는 집단이기에 일반 사회보다 열악한 환경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군인들은 씩씩하게 생활하지만 속은 그럴 수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군대 얘기는 지나치게 부풀려졌거나 아니면 너무 우습게 유통되고 있지요. 이 때 한줄기 빛처럼 군대 만화가 나타나 좋은 평을 받지요. 2006년 독자만화대상 수상작 <짬>[2006. 동양문고]은 ‘있는 그대로’ 솔직담백 군대이야기를 그렸지요. 복무한 부대마다 분위기와 업무는 다르지만 군대라는 큰 틀로 보면 어디나 공통점이 있지요. 짬은 그 공통점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요.

 

만화가 주호민은 자신이 겪은 부대이야기를 그대로 적어냈지요. 지원중대 운전병으로서 생활한 이야기는 무척 공감이 가고 재미가 있네요. 책을 펴자마자 손을 놓지 못하고 볼 정도로 몰입하게 하네요. 그 안에서 울고 웃고 고생하면서도 즐겁게 생활한 이야기에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도 슬쩍 들춰보고 가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있게 하네요.

 

있는 그대로를 그린 군대 만화, 무릎 치며 빠져들다

 

군대하면 으레 이야기하는 진정한 남자가 되는 곳이다,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 만화가는 그건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다만 군대라는 곳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를 영원한 안주거리로 삼을 수밖에 없는지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만화를 보다 보면, 어머니에게 편지 쓸 때는 덩달아 마음이 먹먹해지고 혹한기 훈련받을 때를 보면서 괜히 옷깃을 주섬주섬 여미게 되네요. 훈련병을 거쳐 이등병, 점차 일병, 상병, 병장, 예비역이 되면서 달라지는 마음묘사와 상황 설명도 상당히 공감이 가면서 재미있네요. 휴가 나갈 때 심정은 어찌 저리 잘 그려냈는지 무릎을 탁 치게 되더군요.

 

따뜻하고 밝은 색체로 군대하면 떠오르는 딱딱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걷어냈네요. 군대를 갔다 온 분들은 이 만화를 보면서 추억을 되짚어볼 수 있고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군대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교양만화’네요. 책을 사면, 논산훈련소PX+쉼터 20% 할인권을 준다는 말에 슬쩍 웃음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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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은 어디에서 라는 글을읽고..
    from 잡학블기 DRAMATIQUE ESSAY 2009-11-14 07:51 
    지금은 어디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1) @ 33사단100연대3대대10중대 본부 요원들을 그리워 하며. @ 시흥군 오이도 정왕6리 코스모스별장 요원들을 그리워하며. 이 이야기는 1968년 초여름부터 1971년 겨울이 올때 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연속글 2편바로가기 http://dramatique.tistory.com/ -->> 사진을 크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1/40sec | F/5.6 | 2009:11:13 10:55:20 세월이 꿈같이 흘..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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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란 그 자체로 성 에너지가 부글거리는 시기니까 제쳐두더라도 성과 사랑은 이 시대를 달구는 뜨거운 화두입니다. 한 주간지 조사에 따르면, 한국 40~50대 중년 남성들의 최대 관심사는 ‘연애’라고 해요. 다들 모이면 연애 한번 멋지게 해보는 게 꿈이라고 하죠. 여성들은 한 술 더 떠요. 요즘 중년 여성들은 ‘연하 남친’하나쯤은 있어야 바보취급을 당하지 않는대요. 거기다 황혼 연애도 활발해진 오늘날,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연애공화국입니다.

 

거창하게 연애공화국이라고 했지만 정작 실태를 따져보면 ‘연애무능시대’입니다. 얼마나 사랑에 굶주리고 있는지 사람들이 어디서든 입만 열면 사랑타령이에요. 게다가 미디어는 온통 사랑과 섹스를 쉼 없이 쏘아대고 있지요. 그.러.나. 뜨겁게 사랑을 누려야할 사람들이 사랑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사랑하고 싶다’며 혼자 외로운 밤에 방바닥을 긁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솔로지옥 커플천국이란 말이 생겨났지요. 자신은 누구와 사귀는 게 귀찮고 혼자인 게 좋다며 반발하는 분도 많이 계십니다. 솔로가 최고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 마음에는 타자를 만나는 데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두려움을 넘어설 정도로 매력 있는 상대가 나타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솔로 친구들을 배신하고 커플에 동참합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자연스러운 욕망이기에 솔로찬양은 자기 위로이자 핑계일 뿐이죠.

 

어떤 대단한 이라도 가슴 속을 뒤져보면 미련과 후회, 상처와 아픔이 고여 있습니다. 그러한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다면,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동정과 연민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사랑을 공부해야 합니다.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니까요. 살아있다면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게 되죠. 그러니 포기할 수 없어요. 마땅히 배우고 익혀야 하죠.

 

멜로드라마에 넋을 놓고 부러워하면서도 사랑공부를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 없는데도 늘 ‘제자리걸음’을 합니다. <호모 에로스>[그린비. 2008]는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싶고 더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큰 힘을 주는 책이기에 이렇게 소개합니다.

 

쿨한 연애? 작업하는 선수들의 안쓰러움

 

IMF 이후 이른바 ‘쿨한 연애’가 나타났지요. 깊게 빠지지 않고 서로 적당히 즐기다가 깔끔하게 이별하는 연애행각이지요. 치고 빠지기로 요약할 수 있는 쿨한 연애는 한마디로 감정을 끈적하게 낭비하지 말자는 거죠. 이것을 연애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때 대세였죠. 골드미스 2만 7천여 명, 1인 가구 300만 명이 ‘끈적하지 않은 인간관계’를 보여주지요.

 

그러나 쿨한 만남은 절대 자유가 아니지요. 쿨한 연애를 하는 사람 가운데 진짜 자유롭거나 행복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이야말로 자의식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있지요. 영화 <동사서독>의 대사처럼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버리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아가기 일쑤지요.

 

그렇기에 진정한 사랑을 하기보다는 ‘가벼운 감정’을 거래하고 ‘가볍게 몸’을 교환하지요. 연애가 작업이라는 허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주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연애가 삶의 기쁨, 존재의 해방으로 이어지지 않고 돈과 권력, 그리고 겉모습이라는 그물에 갇히는 거지요. 이런 연애는 애로틱한 열정과는 거리가 멀고 말 그대로 작업의 일종이고 노동이 될 뿐이지요. 입시나 취업전선과 차이가 없어진 것이죠.

 

작업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남에 따라 참사랑을 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통과하기’보다 어려워졌지요. 사람들은 선수답게 거의 날마다 경기에 출정하게 되는데, 여기서 아뿔싸, 그 모든 경기가 다 비스무레하게 됩니다. 몇 번을 하건, 또 몇 명과 동시다발로 하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거죠. 다람쥐 쳇바퀴돌기, 아이 지겨워.



이거야 원,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사냥하는 즐거움’이 아주 잠깐 있을지는 몰라도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죠. 더 큰 비극은 상대방도, 나의 경쟁자도 다들 선수라는 거예요. 따라서 이 게임에선 누구도 인정사정 봐 주지 않죠.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더한층 비열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이런 존재들이 남과 제대로 소통을 할 리 없고 참사랑을 할 리 만무하죠.

 

낡은 연애 틀에 갇혀있는 순정파, 자기감정만 배설하는 스토커

 

선수들의 반대쪽에는 지고지순한 순정파라며 자신의 감정에 매몰된 사람들도 있어요. 이들 역시 사랑을 제대로 하기 어렵지요. 그들은 대중문화가 쳐놓은 그물망에 걸려서 새로운 사랑을 상상하지 못하고 드라마공식만을 흉내 낼 뿐이니까요. 드라마나 소설이 정해준 문법을 밟아가며 이것이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죠. 무슨 이벤트를 벌이고 희한한 쇼를 해야만 사랑을 표현하는 거라고 믿고 있죠.

 

낡은 연애 틀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하기에 불행하죠. 청순가련한 여성, 거칠지만 자상한 남성, 애틋한 추억의 장소들, 달콤한 배경음악, 닭살 돋는 대사 등등을 모방합니다. 그렇게 했는데 서로 죽이 잘 맞아서 진행이 매끄럽게 되었어요. 온갖 긴장과 설렘을 즐기지만 막상 사랑을 확인한 다음엔? 그들은 별로 할 게 없어요. 똑같은 얘기를 나누고 비슷한 데이트를 반복하게 되지요. 결국엔? 지쳐 떨어지죠.

 

이별한 뒤 추억이란 꽃가루로 옛사랑을 꾸민 뒤 소중히 간직하지요. 틈날 때마다, 그때는 참 좋았는데, 읊어댑니다. 울적할 때마다 과거를 회상하고 또 다시 그런 순간이 오기를 몽상하게 되지요. 이러한 순정파들은 회상과 몽상 사이를 왕복 달리기하느라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할 능력도, 여유도 없게 됩니다. 그저 빙글빙글 돌아가는 고상한 회전목마에 앉아 ‘과거의 낭만’에 머물러 있는 ‘고매한 족속’이 되는 거지요.

 

이들은 슬픔을 통해서 사랑의 진실성을 보증 받는다고 믿고 있어요. 과거를 회상하며 슬픔에 잠겨있는 걸 예의라고 여기고 아름답게 치켜세우죠. 이것은 오늘을 제대로 살지 않는다는 반증이고 슬픔이 크기에 비례해서 사랑도 커진다는 착각입니다. 지나간 첫사랑에 방부제 잔뜩 뿌려 보관하고 사랑의 추억을 가능한 한 비극으로 덧칠하려고 해봤자 지금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뭔가 남다른 사랑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중요한 건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 거예요.

 

새로운 사랑을 창조하지 못하면 스토커가 됩니다. 스토커는 순정파의 변태버전이죠. 그들은 대상이 누군지, 상대가 뭘 원하는지 따위는 관심이 없어요. 그저 한 방향으로 주구장창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는 것만이 중요할 따름이죠. 자신의 방식을 사랑의 순수한 표현이라고 착각하고 착각의 동굴에서 나오지 않아요. 상대방과 소통할 용기가 없을 때 그런 식의 광기가 나타나는 법이라며 지은이는 따끔하게 꼬집지요.

 

엇갈리는 사랑과 성, 억눌리거나 돌변하거나

 

큰 인기를 끌었던 멜로물들을 떠올려 보세요. <가을 동화>, <겨울연가> 등등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은 하나같이 ‘탈성화’되어 있어요. 사랑에 빠진 남녀 주인공이 손을 잡고 입을 맞추기까지 우주가 폭발했다가 지구가 생성되는 시간이 걸려요. 보다보면 기다리다가 곯아떨어질 지경이에요. 키스신이 나온 이후에도 둘이 몸을 합쳤다는 건 암시조차 나오지 않아요.

 

한마디로 사랑과 섹스 사이에 컨테이너박스가 69층으로 쌓여있는 셈이에요. 대체 왜? 성욕이 개입할수록 사랑은 타락해버린다는 순결강박증 때문이죠. 혼전순결은 종교근본주의처럼 도그마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죠. 성윤리는 무시무시한 강령이 되어 자기 검열하도록 만들죠. 지금 내 욕망이 올바른가, 성행위는 정당한가. 덜덜덜

 

성욕을 억누르려고 하는 수준이 성고문에 가까워요. 문제는 겉으로는 강하게 억누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금욕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거죠. 낮에는 ‘단정한 사제’처럼 지내다가 밤만 되면 ‘발정난 사자’처럼 돌변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요. 질주름(처녀막) 재생수술이 흔해진 시대입니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죠. 혼전순결이 아직도 결혼의 보증수표가 된다는 사실도 어이없지만 무슨 짓이건 다 해도 되지만 질주름만 있으면 오케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어처구니없네요.

 

물론 성욕이 곧바로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상대방에게 신체 합일의 욕망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랑이라는 관계에 들어서기 어려워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성욕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성욕과 사랑의 관계를 공부하지도, 교육받지도 않기에 사람들은 판타지멜로드라마로 사랑을 엿보고 야동으로 섹스를 알게 됩니다. 헐~

 

유치찬란한 몽상 아니면 야동 변태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는 얘기죠. 연애에 목말라하지만 연애를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 나기죠. 그렇기에 대부분의 솔로들은 야식 또는 야동을 탐해요. 야동은 말할 것도 없고, 야식(특히 폭식)은 외로움이 몸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니까요. 정신의 공허를 채우려고 몸은 반응하게 되는데, 그것이 허기에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노노,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하지요. 한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거예요.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 못 골랐기 때문이고, 사랑을 못 하는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모든 원인을 밖으로 돌리죠.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거래고 교환이라 할 수 있죠.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에요.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려면 사랑 따로 대상 따로 나 따로가 아니라 나와 사랑과 대상이 하나로 어우러져야 해요. 나의 반쪽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아야 해요.

 

함께 걸으려면 최소한 방향이나 바라보는 눈길이 같아야 하는데, 이러한 짝을 시절인연이란 부르지요. 다시 말하면 시절인연이란,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어떤 강한 촉발로 공통의 흐름을 이루게 된 특정한 시간대를 뜻해요. 시절을 타게 되면 아주 작은 촉발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요. 봄이 오면 겨우내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순식간에 땅을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사랑은 타이밍이란 거죠. 대상이 누구냐 보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가 더 중요한 거예요. 어떤 특별한 ‘시공간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그러한 시공간에 금이 생기고 틈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는 거예요. 결별의 진짜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해요. 사랑할 때 아무 이유가 없었듯이 헤어질 때도 아무 이유 없지요.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시절인연이 다했고 어긋나기 시작한 탓이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사랑도, 삶도 변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불멸이라는 판타지에서 빨리 던져버려야 해요.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에요. 유지태는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었지만 유지태도 조금 더 경험을 하면 알게 되겠죠.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밑줄 짝~ 사랑할 때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세월 따라 흘러가는 사랑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네요. 이 때 필요한 것이 걸어가면서 사랑하기, 사랑하면서 걷기에요. 세상과 소통하면서 걸어가는 게 인생이죠. 그러다 시절인연이 닿으면 곁에 도반이 생기는 거죠. 짝을 찾아 헤매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반을 만나려면 자신이 원인이 되어야 해요. 그럴 때 사랑은 그 자체로 축복이 됩니다. 열심히 사랑한 다음 그 대가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천국이 됩니다.

 

사랑할 때 생기는 열정은 쾌락이나 충동과 달라요. 아무리 뜨겁게 솟구친다 해도 열정은 중독되지 않아요. 오히려 열정은 유래 없는 평온을 선사해요. 수백도의 열 속에서 도자기가 단단히 구워지듯이. 보통 시작하는 연인들은 서로에게 강렬히 열중하죠.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지 사랑의 증거가 되지 않아요. 얼마나 ‘뜨겁지만 평화롭게 사랑’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또 하나, 사랑은 거래가 아니에요. 자신을 다 버렸다고 무엇을 바라서는 안 돼요. 뭔가를 바라는 순간, 그건 이미 헌신이 아니라 교환이자 거래가 되니까요. 내가 버린 것만큼 너도 버리지 않았다고 따지기 시작할 때, 미움이 돋아나죠. 사랑은 희생을 통해서만 빛난다 → 내가 더 많이 희생했다 → 나의 희생을 저버린 상대는 나쁘다, 고 하는 건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에요. 주어진 연애 문법에서 벗어나 더 퍼주고 더 사랑하는 상상력을 키워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둘만 아등바등하는 만남을 하면 안 돼요. 둘만을 바라보는 사랑은 반드시 권태와 마주하게 되니까요. 사랑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아주 특별한 관계인건 맞지만 정말 중요한 건 타인들과 관계이고 일상의 토대에요. 두 사람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감정, 하루하루 생활이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랑을 아름답게 하는 힘이죠. 그게 붕괴되면? 사랑은 물론, 삶도 무너져 버리죠.

 

사랑은 결코 장애물이 많다고 아름다운 게 아니에요. 신분 격차, 주위의 격렬한 반대, 출생의 비밀, 그리고 불치병 등등 사랑은 불행의 크기에 비례한지 않아요. 이것은 일종의 허무주의이고 여기에서 어서 탈출해야 해요. 불행과 상처를 과장하면서 자학증과 피학증 사이를 오가다보면 전도망상이 되요. 슬픔을 딛고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랑이 영원하고 위대하려면 슬픔을 동반해야 한다는 식으로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죠.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 온 몸으로 공부하고 온 생애를 걸어서 사랑하라!

 

너무 외로워요. 사랑을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이 너무 두려워요. 거절당할까봐, 더 외롭게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이런 생각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지요. 산다는 건,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 없어요. 배는 이미 불타버렸으니까요. 우리는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니체가 한 말이에요.^^

 

오만과 편견, 자의식을 둘러싼 망상에서 벗어나 한걸음이라도 내딛는 순간, 자신은 달라집니다. 자신의 몸이 바뀌고 삶이 변하고 세상이 움직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몫이에요. 사람은 어차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거예요. 홀로 갈 수 없다면 절대 남을 사랑할 수 없어요. 사랑이라 일컫는 행위를 하지만 예속이나 집착, 또는 작업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오노 요코에 대해 존 레논은 “그녀와 나는 음악과 정치, 예술, 모든 분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거기다 섹스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짝이 어디 있단 말인가”라며 자신의 사랑을 설명했습니다. 걸어가면서 사랑하는 정말 멋진 두 사람이었지요.

 

자신도 이른바 ‘소울메이트’를 만나고 싶다면 자신이 그런 소울메이트가 되어야겠지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누군가의 짝이 될 수 없지요. 자신은 폭군인가? 그렇다면 짝을 사귈 수 없어요. 짝은 자신과 동등하게 걸어가는 도반이니까요. 뭐든지 자기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성하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넘어진 곳에서 스스로 딛고 시작해야 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사랑을 하면 삶 자체가 싱싱하게 되죠. 사실, 삶은 원래 푸르러요. 그렇기에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젊음이라고 할 수 없지요. 자기 연령에 걸맞게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해야 해요. 그럴 때 비로소 청춘이 되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셈이지요. 온 몸으로 공부하고 온 생애를 걸어서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움 없이 사랑하시는 청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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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d-meet-you 2009-02-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정리 하셨네요. 차서를 바꾸어서 새로이 창조한 부분도 보이고요.
님의 발원대로 멋진 님 되시길, 멋진 도반 찾으시길 기원합니다.^^

좋은책 2009-03-20 15:2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즐겁게 길 걸어가시길 바랄게요~~

스스로 보살피자 2009-10-2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절인연이라.....
그렇군요....

그런데 사랑이 잇긴잇나요??
영역확장용 아니던가요???
사랑이란 이름하에 자아도취에 빠져....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면 ..그 요구는 끝을 모르고,,생주접을 떨고 ..서로 솔직하지도 못하고...

사랑단어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려는 것이엇다는 것...

연애 하지말고 중매한 후 연애하세요.....

좋은책 2009-11-23 20:53   좋아요 0 | URL
사랑은 자신의 그릇만큼 하는 것이죠. 사랑이란 허깨비가 현실에서 넘쳐나지만
참된 만남은 모두가 바라는 욕망이고 삶이 달라지는 기회죠.
진짜 사랑을 해보시길 바랄게요~~

스스로 보살피자 2009-10-2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한대로 한순간이 아닌 말이 통하는 그런 상대르 만나 연애를 하는 거라면.....
그러나 대개의 바람피는 아버지를 보면 말이 통한다기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아닌...
그러나 세월 흐른 지금 그런 바람둥이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도 저살길 찾아 헤매는 중이엿다는 것...
단지 그뿐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란 것...
그뿐입니다....아하??라는 것..보고 들은 게 그것 뿐이고 가장 손쉬운 것이니 나름 바람빼기를 하고 잇엇다는 것..
.......단지 그뿐
너무 그들에게 신경을 쓴다느 것은 매몰비용만 추가될 뿐이라는 것..

너무 많은 것은 기대하지않는 법을 배우고 익히길....

좋은책 2009-11-23 20:54   좋아요 0 | URL
말이 통한다는 것은 그저 자신의 헛헛함을 달래고 외로움을 잠깐 가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가 마주치는 것이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선생님이 어떠한 상처와 아픔이 있는지 모르지만 늘 처음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시길 바랄게요~~
 
추방과 탈주 트랜스 소시올로지 2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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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기가 겁나는 시대입니다. 시민들이 떼죽음당하고 끔찍한 범죄들이 며칠을 멀다하고 터지고 있어요. 패러다임자체가 크게 변화하는 세계와 동떨어져서 한국 사회는 거꾸로 타들어가고 있기에 시민들은 불안합니다. 콘크리트 쏟아지는 강에 사는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참담하게 오늘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쇠고기 수입에서부터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삶에 맞닿아있는 문제들이지만 엉뚱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혀 시민들이 바라는 방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느꼈듯이 수유+너머 연구소의 고병권 철학자도 엄습하는 불길한 조짐에 거리로 나갑니다. 거기서 느낀 점을 책으로 냅니다. <추방과 탈주>[2009. 그린비]는 그 결과물로 삭막하다 못해 잔인해지는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진단합니다.

 

한국사회가 민주주의? 관계자 외 출입금지!

 

민주주의(데모스크라시)는 민중이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사회제도를 뜻합니다. 하지만 이제 민중이 없는 지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민중을 추방하고 있지요. 이것은 민주주의가 몇 가지 제도나 장치들의 이름에 불과하며 통치기계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럼 지금은 무엇일까요? 지은이는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고 밝혀요. 몇 몇 권력자들이나 시스템의 작동에 관여하고 있는 기술자들이 민주정이란 이름으로 귀족정이나 군주정을 시행하고 있다는 느낌이지요.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특정 분파가 민주주의를 장악하고 민주주의가 모두의 이득이 아닌, 특정 분파의 이익에만 복무한다는 거지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이 경향은 더 노골화되었지요. 현 정부의 정책들은 입안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어이, 물렀거라, MB대왕님 납신다,’를 외치며 철저히 시민들을 물리치고 계시죠.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과 공권력 사이에 매개나 조정을 하기보다는 명령이나 통보 형식을 띠며 시민들의 삶에 침투해옵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대부분 서민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기에 공권력에 의해서 거부되고 있지요. 보통 서민이 정치에 참여할라치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이며 쫓아내기 일쑤지요. 시민들은 이제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 결정으로 배제되고 있지요. ‘합의로부터 배제’되고 ‘합의를 통해 배제’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잃어버린 10년? 그들은 같은 팀 릴레이 선수들이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금융시장 개방과 노동시장 구조조정을 완수한 것은 정권을 교체한 김대중 정부였고, 노무현 정부가 완수하지 못한 한미FTA 최종 비준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역시 정권을 교체한 이명박 정부다. 서로 당파는 다르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트랙 위에서 바통을 후임자에게 성공적으로 건네주었다. - 책에서

 

지은이의 따끔한 분석처럼, 네 개의 정부 두 번의 정권 교체가 있었음에도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숙성에는 어떤 단절도 없었어요. 단지 그것을 책임지는 관리자들만 바뀌었을 뿐이죠.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 정권에서 잘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노선 위를 마음껏 질주하고 있지요.

 

한 마디로 이번 정권교체는 노선의 교체라기보다는 속도의 교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요. 지난 정부가 슬슬 눈치를 보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불도저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요. 선진국과 방향이 많이 달라 한국에서 사는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괴로운 역주행’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정부는 열심히 달리고 있어요.

 

정권 교체세력들은 ‘잃어버린 십 년’타령을 부르며 과거로 돌아가고 있지요. 하지만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듯 황당하게도 그들은 잃어버린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오히려 그들은 ‘잃어버린 십 년’동안 그들의 주머니는 더 불룩해졌고 얼굴은 기름기로 더 번들거렸지요. 그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었으나 십년 동안 생존의 위기로 몰린 수많은 민중들은 ‘살림살이 상실시킨 정권 타도’에 표를 몰아주지요.

 

그 결과는 현실에서 보시는 대로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닦아놓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생활 기반의 상실’이 생겨 이명박 정부를 지지한 민중들은 이제 ‘삶 자체가 상실’하게 생겼습니다. 형식상 시민권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은 비국민들이 되어 존립 기반을 잃게 생겼습니다. 이들은 국가의 일원이지만 국민은 아닌 자들이죠.

 

부와 권력을 일부 집단에만 쏠리고 대중들은 주변으로 밀려나서 불안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끊임없이 추방되었지요. 각종 양극화 지표들이 잘 보여 주고 있듯이 1997년 이후 한국사회는 권력과 자본의 핵심을 장악한 소수의 세력과 그렇지 못한 대중들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국가의 주인에서 추방되어 희생당하는 내부난민들

 

권력과 자본을 장악하지 못한 대부분 서민들이 처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용산참사입니다. “국가의 설립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야수들”이라고 니체는 말해요. 말 그대로 공권력은 갑자기 들이닥쳐 삶을 파괴하지요. 용산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철거민들은 국민이 아닙니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공권력을 ‘늘 그렇게 해왔듯’ 장애물을 치워 버립니다. 사람이 죽어도 일 하다 실수한 것이기에 사과를 할 수 없는 겁니다.

 

모두의 이익이라며 몇 몇 예외를 희생시키는 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국민 모두가 살길’이라는 식의 얘기는 ‘제발 우리를 살려 달라’는 보통 서민들의 외침을 묵살해버립니다. 자기 나라 안에 있으면서 사실상 자신을 보호해줄 정부를 갖지 못하는 이들을 ‘내부난민’이라고 지은이는 부릅니다. 몇 푼을 쥐어주면서 평생 고기잡이를 한 어민들은 쫓아내자 “아, 우리는 국가의 주인이라기보다는 국가에 빌붙어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였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다고 추방당한 어부는 고백합니다.

 

지금까지, 안타깝게도 추방당한 사람은 이 사회의 ‘예외’이며 그들의 희생은 가슴 아프지만 전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가 드셌지요. 하지만 이제 그 ‘예외’는 일상화가 되고 있고 희생은 대중화가 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외’들을 몸으로 겪은 대중들은 자신도 언제 희생될지 몰라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면에서 보수주의가 되죠. 그들은 자기 삶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사태를 견딜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보수주의가 된다고 서민들에게 콩고물은 떨어지지 않지요. 도리어 먹음직스러운 콩고물이 되기 십상이죠. 지난 십여 년간 미적대던 중산층 붕괴는 이제 와르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서 그들을 챙겨주지도 않죠. 우선 한국에서 복지국가라는 말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었으니까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성장해 온 신자유주의는 잠복기간을 마쳤습니다, 신자유주의는 드디어 사회 곳곳에서 발병을 일으켰고 시민들은 불행한 결과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앓기 시작했지요. 공권력이 ‘시장에 대한 개입’은 줄어들었을지 모르나 ‘시장을 위한 개입’은 훨씬 더 강화되었습니다. 용역을 위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이 이를 말해줍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몸을 삽시간에 갉아먹는 질병에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에 거리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분노가 거리에 쏟아집니다. 정부 정책에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보통 서민들은 원치 않은데 ‘국익’이란 이름으로 쇠고기를 수입하겠다고 했지요. 도대체 국익은 누구를 위한건지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않았던 시민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촛불을 듭니다. 그들은 정부가 하는 일 때문에 불안해지고 가난해지는 사람들이지요. 작년 촛불시위는 왕따 당한 민중의 분노였습니다.

 

촛불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정부, 오로지 규제와 탄압

 

촛불들은 스스로 불안에 떨면서 동시에 권력자들을 불안케 했지요. 정부는 촛불을 이해할 능력이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기에 그저 광우병에 놀아나는 ‘멍청한 대중’으로 취급됩니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자세가 안 되어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정부는 대중들의 주장을 괴담으로 움직임을 난동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촛불을 든 대중은 힘이 있었고 정부는 촛불에 뎁니다. 데었으면 현실에 맞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정신을 차리고 시민들 눈높이로 자세를 낮춰야 하는데, 그들의 뇌회로는 다른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힌 나머지 감시와 처벌, 통제하는 법을 계속 만들어 내려 합니다. 법과 질서를 지키면 국민 총생산이 1%올라갈 수 있다며 취임순간부터 법질서를 강조하였던 분답지요.

 

군사정부 시절의 백골단을 연상시키는 체포전담반, 시위진압 경찰은 면책하고 시위대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사법처리하겠다고 합니다.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중들을 옭아매고 탄압만 하겠다는 위정자들의 인식능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규제 철폐와 정부 축소를 외치는 정부는 강력한 법치주의와 치안강화를 주장하는 걸까요.

바로 신자유주의가 퍼뜨린 불안 때문이죠. 안전을 욕구하는 건 불안하기 때문이죠. 안전보장은 이 시대에 고유한 불안과 맞닿아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을 탈규제 시켜주어 대중들을 시장의 무차별 폭력 속에 방치시키는 결과를 낳았지요. 그렇게 태어난 불안한 대중은 이제 관심 밖 난민이 되었지요. 정부는 그들의 복리나 안전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들을 치안관리대상으로 여깁니다. 용산철거민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대중을 이해하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정부는 위협의 내용이 분명한 국방보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생겨날지 모르는 내부 저항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안전보장개념이 중요해지는 거죠. 이명박 정부는 행정자치부의 이름을 행정안전부로 바꾸었습니다.

 

악은 무개념에서 나온다, 생각하라, 그리고 탈주하라!

 

IMF이후 보통명사처럼 널리 퍼진 구조조정은 현재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란 뜻입니다. 안정된 사회구조로 옮겨나는 과정에 고통스러운 때지만 이 기간은 잠깐에 지나지 않는 ‘예외시간’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착각이지요. 이미 예외성은 일상성이 되었고 구조조정은 하나의 구조가 되어 한국사회에 들어앉았고 서민들의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늘 고통스럽고 불안한 겁니다.

 

판단중지, 잠시 생각을 멈춰봅니다. 지금까지 생각하고 살아왔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인식과 삶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저 구조조정이 되어버린 나날을 보내면서 고통과 불안에만 시달릴 수 없습니다. 이제 스스로 자기 삶과 인식을 구조 조정해야 합니다. 구조조정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바꿔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라며 핑계를 대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주어진 대로 순종하다보면 언젠가 해뜰날도 오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유대인 학살혐의로 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은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은 나쁜 생각에서가 아니라 생각 없음에서 나온다.’며 호통을 치지요. 일출은 스스로 고통스런 새벽을 견뎌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겁니다.

 

대중들의 삶이 불안정에 시달릴 때 일부는 막대한 부를 긁어모았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 한 몫 잡고 싶은 욕망에만 들떠 있어 자신을 포함하여 불안정에 시달리는 대다수 서민들을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자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상반된 운명은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전자에게 일어난 일과 후자에게 일어난 일이 동일한 이유 때문입니다. 예전처럼 혼자 열심히 한다고 부자가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 책 제목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추방, 그것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추방당한 서민들과 추방위협에 시달리는 대중들은 현정부와 ‘저강도 내전상태’에 있는 겁니다. 탈주,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낌새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요동치며 죽음으로 내달리는 고장 난 폭주열차입니다. 이에 시민들은 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아, 아프지만 다 잘 될 거야, 최면 걸며 자위하다가 강제추방 당할 건지 스스로 탈주를 할 건지 책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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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5:09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서른이라도 괜찮아 - 인생의 각종 풍랑에 대처하는 서른 살 그녀들을 위한 처방전
이시하라 소이치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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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란 나이는 조금 특별하지요. 29살 11개월 30일에서 30살로 넘어간다고 인생이란 게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지만 사회맥락에서 자신의 위치와 사회가 요구하는 내용들은 많이 바뀌게 되지요. 서른 이전까지 꿈을 찾거나 무엇을 도전해보라는 분위기라면 서른 넘어서는 결혼을 하고 안정된 가정을 가지라며 은근하게 압박을 하는 분위기죠. 여기저기서 찔러옵니다. 결혼, 언제 할 거야?

 

드세진 주변의 눈치를 못 마땅해 여기다보면 또 하루 멀어져가지요. 가수 김광석 역시 <서른 즈음에>라는 애달픈 노래로 서른의 감정을 표현하지요.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정말 영원히 20대 청춘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서른은 다가오고 돌아보면 가난한 추억들만 웅크리고 있지요.

 

몇 번의 만남을 하고 이별을 하였던 시간들은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시간 속으로 흩어졌지요. 늦은 밤, 지나쳐간 사람들, 기억 저편으로 스러져간 짧았던 인연들이 술잔에 떠오를 때가 있지요. 그러면 잠깐, 그윽하게 쳐다보며 옛 생각에 젖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새로 만나기 겁나고 변화가 불편해질 때쯤, 서른이 묵직하게 다가오지요.

 

서른, 까만 밤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게 되는 때

 

이제 서른이구나,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여보지만 온갖 상념들이 겨울바람 불 듯 사방에서 매섭게 파고듭니다. 20대가 될 때, 이제 스물이구나, 하면서 가졌던 느낌과 많이 다르지요. 스물은 반짝이는 눈망울로 세상으로 뛰어드는 나이라면 서른은 까만 밤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나이니까요. 저 어딘가에 별이 빛나기를 바라며.

 

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로워지고 너그러워지길 바라지만 나아지기란 쉽지 않아요.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면 세상 돌아가는 원리도 알고 살아가는 재미도 꽉 잡을 거 같았지만 나이와 삶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지요. 많은 어른들께서 나이 먹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왜 사는지 모르겠고 가슴 깊숙이에 묻어둔 회오리바람이 나이와 상관없이 자꾸 일어난다고 하시니까요.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외로움 속에서 사람들은 난파되지 않기 위해 구명보트 찾듯. 곁에 있을 사람을 찾아요. 하지만 구명보트인 줄 알고 만났지만 알고 보니 그 역시 허우적대는 사람이죠. 안 되겠다, 스스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겠구나, 자신을 자기가 챙겨야 사람들과 제대로 만날 수 있겠구나, 여겨질 때 책을 찾고 공부를 하게 되지요.

 

<서른이라도 괜찮아>[2009. 웅진지식하우스]는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처세술, 충고상담서 가운데 하나에요. 지은이 이시하라 소이치로는 솔직하고 대범한 말투로 30대 여성에게 말 걸기를 하네요. 30대 여성들의 몇 가지 공통된 성향을 가리키며 그것을 묶어 ‘서른 살 증후군’이라고 부르네요. 서른 살 증후군의 공통점은 일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관한 것이지요.

 

첫째, 폼 나게 살고 싶다.

둘째, 연애하고 싶다.

셋째, 나다운 것에 집착한다.

넷째, 아직 젊다고 여긴다.

다섯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꾼다.

 

지은이는 여성들이 평소에 하는 말들 밑절미에 있는 여성들 심리를 ‘자기 나름으로는’ 그럴 듯하게 분석해요. 각 이야기에 앞 서 ‘서른 살 체크리스트’를 내놓아 증상을 검토하게 하지요. 이러한 표는 여성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지요. 책 내용은 ‘그 남자의 마음을 빼앗는 10가지 기술’이란 제목으로 연애잡지에 실리는 글 같네요. 지은이는 자기 식으로 여성심리를 따지고 도움말을 일러줘요.

 

예를 들면, 어느 30대 여성이 자기 주변에는 마음에 들지 않은 남자들만 득실거리기에 ‘도대체 좋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라며 탄식을 하죠. 이것을 지은이는 지금 혼자인건 결코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자기변명이라고 해석해요. 그런 푸념을 하면 자신은 ‘좋은 남자’에 어울리는 ‘좋은 여자’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자기주장일 뿐이며, ‘좋은 여자’취급하는 사람도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지적하죠. 그러면서 이런 여성을 대처하는 자세를 귀띔해요. 깎아내리기보다는 치켜세워서 안전을 도모하라!

 

서른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것

 

‘인생의 각종 풍랑에 대처하는 서른 살 그녀들을 위한 독특한 처방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독특하기는 한 데, 큰 도움은 안 될 듯싶어요. 여성 잡지를 뚫어질 때까지 읽어도 잡지 광고에 나오는 물건이 그림의 떡이듯 이 책은 그저 재미삼아 읽으면 되겠네요. 비싼 화장품 한번 바른다고 갑자기 김태희가 될 수 없듯이 이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서른 살이 행복해질 수 없지요.

 

그렇다면 세상 살면서 만나는 각종 풍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살아있는 공부를 하고 진짜 경험을 통해서 혼자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하지요. 여울 치는 곳에서 더 넓은 곳으로 헤엄쳐 나와야하는 거예요. 이 일은 긴급구조 119가 해줄 수도 없고 백상어 탄 왕자님이 해줄 수도 없지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지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해요. 홀로 우뚝 설 수 있어야 곁에 사람을 두고 같이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슬프고 외로울 때 어르고 달래줄 엄마아빠가 있다면 좋겠지요. 하지만 이제 서른이에요. 마음 안에 간직하고 싶은 보행기에서 나와 사뿐사뿐 세상으로 발을 내딛어야죠. 그때야 비로소 서른이 되는 거죠. 서른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 나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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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토끼 밥상 개똥이네 책방 2
맹물 지음, 구지현 그림 / 보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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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어른들은 맛없는 걸 먹는 걸까? 어린 시절, 채소를 많이 먹으라는 얘기가 정말 못 마땅했어요. 하루 세끼 맛있는 햄버거와 피자만 냠냠 쩝쩝 먹고 물 대신 콜라만 마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지요. 돈이 없어서 그렇지, 이렇게 시켜 먹으면 얼마나 편해, 라는 생각에 빠졌었지요.

 

그만큼 어린이들은 패스트푸드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지요.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신체건강과 인성도 크게 달라지기에 좋은 음식을 줘야 하지요. 자기 자식에게는 뭐든지 좋은 거를 주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패스트푸드를 먹이는 모습은 너무 안타깝지요. 요리는 번거로우니까, 아이가 먹고 싶어 하니까, 라는 적절한 핑계를 대며 전화배달을 시키지요.

 

어린 시절 패스트푸드에 자기 몸을 내준 아이들이 건강할리 없습니다.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들이 건강한 생활을 할리 없습니다. 현대 들어 아토피가 부쩍 늘고, 암,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병들이 아이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지요. 아이가 좋은 책을 읽어야 하듯이 음식도 좋은 것을 먹어야 하지요.

 

열여섯 살 소녀가 직접 요리한 경험을 쓴 책

 

열두달 토끼밥상[2008. 보리]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며 어떻게 요리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지요. 지은이 맹물도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고 콩이랑 채소를 싫어하는 ‘보통 도시아이’였지요. 그러다 부모를 따라 산골로 내려간 맹물은 산천을 뛰어다니고 3년 동안 직접 요리 하면서 겪은 이야기와 요리법을 정성스럽게 담았지요.

 

모든지 부모가 해주는 요즘 아이들에게 신기하고 반가울 책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차근차근 따라 하다보면 어린이 혼자서도 척척 만드는 제철 요리를 할 수 있지요. 지은이 맹물은 열 여섯 살로 자기가 느낀 점들을 자기 동무나 동생에게 알려 주려고 썼지요. 그렇기에 아이들이 읽기 편하고 만화로 되어있어 쉽게 다가오지요.

 

또한, 훈계가 아니라 대화를 하지요. 갑자기 햄버거를 먹지 말아라, 이러면 당연히 반발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오는지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하고 어떤 것이 바른 먹거리인지 돌아보게 하지요. 강요가 아니라 촉발을 시키죠. 책 제목이 ‘열두달 토끼밥상’이듯 달마다 어떤 먹을거리가 나는지, 어떻게 하면 재료 맛과 영양을 살려서 요리를 할 수 있는지 담겨있지요.

 

달마다 어떤 음식을 해먹었으며 왜 그렇게 해먹었는지 풍습도 알 수 있어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연스럽게 한국 전통들을 익히는 기회가 되네요. 왜 새해에는 떡국을 먹고,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지 어린이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궁금해 하잖아요.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다보니 절기에 맞는 요리를 소개하고 어린이들은 시간의 흐름과 음식의 변화를 배울 수 있지요.

 

체격만 커지고 체력은 약해진 아이들, 무엇을 먹고 있나요?

 

이 책은 건강을 무척 신경 쓰죠. 그래서 튀기거나 볶는 요리는 소개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많은 경우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화학조미료도 쓰지 않고 설탕 대신 집에서 담근 효소를 쓰며 정제된 소금 대신 천일염을 쓰고 물엿 대신 조청을 쓰지요. 고기를 안 쓰지는 않지만, 되도록 쓰지 않는 요리들로 식단을 짜지요.

 

아토피가 있는 지은이는 건강에 좋은 거를 챙길 수밖에 없지요. 먹거리 공포에 휩싸인 오늘날, 지은이와 지은이 가족이 갖고 있는 고민을 누구나 하고 있지요. 그렇기에 아이 건강을 생각하는 부모님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네요. 단순히 이렇게 해라, 머리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린이 스스로 먹을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배어있으니까요.

 

자기 스스로 요리를 하고 먹거리를 살핀 맹물은 자연스럽게 몸이 좋아지죠. 아토피가 있고 편식을 했던 아이였기에 아무거나 먹지 못했지요. 또한, 성격도 까칠하고 감기도 자주 걸리며 조금만 뛰어놀아도 금방 지쳤었는데, 이제는 맛있게 음식을 직접 요리 해먹고 축구를 좋아하는 말괄량이로 달라졌지요.

 

씩씩하고 건강한 맹물을 보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이들은 모릅니다. 어른들도 아이들이 무얼 먹고 자라고 있는지 관심이 모자랍니다.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입맛을 바꿔버린 햄버거와 콜라의 중독성에 소름이 끼칩니다. 지금, 아이들은 무엇을 먹고 있나요. 너무 손쉽게 배달을 시키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처음부터 살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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