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 가고 싶은 카페에는 좋은 커피가 있다
구대회 지음 / 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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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열두번씩 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물론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만두고 뭘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손님으로 가득 차 있는 커피점을 생각했었다. 내가 생각한 커피점은 딱히 커다란 부지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섯개 정도의 테이블과 그 테이블에서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 노트북으로 미드를 보거나, 다이어리를 정리하는 등 내가 카페에서 하던 그것들을 하는 손님들. 그만큼 내 머릿속에 '창업'을 떠올리면 으레 떠오르는 공식은 '커피점'이었다.


이 얼마나 바보같고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모든 일에는 신중함과 열정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사람이 알려주는 책이 있다.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좋아해서 그런지 부담스럽지 않게 읽었지만, 커피점 창업의 꿈을 날아갔다. 다른 아이템을 생각해보겠다고 살며시 다짐해본다.

 

 

 

 

 

<커피집을 하시겠습니까> 라고 독자들을 향해 잔잔한 물음을 던지는, 이 책의 저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세계 곳곳의 커피 농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벼농사를 짓는 농부가 쌀의 생산과정을 모르면 안 되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용기와 노력 그리고 열정이 꼭 필요한 요소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저자가 세계 여행을 떠났을 시점은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아마 더 큰 고민을 했을 듯 싶다.


한두곳의 농장을 다녀온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 지구를 한바퀴 돌았다. 베트남을 비롯해, 멕시코,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인도네이사, 잠비아, 케냐 등 원두의 맛이 좋기로 소문난 커피 농장을 다녔으며, 유럽과 아시아 등지의 유명한 커피점에 들러 그들이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책 속에는 그가 다녀온 커피 농장과 커피점 중 인상적인 몇 곳의 기록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커피향이 풍기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저자가 '가배무사수행'을 떠났던 일이다. 그는 일본에 가서 핸드드립의 명장을 만나 그들의 커피를 맛보기도 하고, 그들에게 그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본의 커피 문화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그가 놓칠리 없었다. (일본의 핸드드립 커피가 유명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와, 나의 무지함이란. 소오름-) 아마 그는 가배무사수행을 통해서 커피는 내리는 사람의 인품과 정성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장 읽던 책 집어던지고(?) 그의 커피점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책의 끝부분에 한 챕터가량에는 커피점을 열고 싶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들에 대한 친절한 답이 담겨있다. 카페를 지금 해도 되겠냐는 물음에는 카페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도 없고, 이른 때도 없다며, 중요한 것을 고객들이 찾는 카페를 만드는 것이라고 살며시 귀띔해준다. 커피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커피 공부는 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며, 다양한 커피를 많이 마시고, 눈으로 보며, 코로 느끼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맛의 커피를 볶아서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맛있는 커피의 조건을 묻는 물음에는 신선하고 결점없는 생두, 생두의 특징을 살린 적절한 로스팅, 실력 있는 바리스타의 추출, 마시는 사람의 기분과 태도라고 답한다. 그리고 네 가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두!  


책의 가장 마지막에는 저자가 카페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는 진정성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커피점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어야 할 따뜻한 조언이다.


"지금 당장 혹은 앞으로 언젠가 카페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면, 우선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내가 정말 커피를 좋아하는가?' '커피 이외에 다른 창업 대안은 없는가?' 이 두 가지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카페를 할 경우 단지 커피를 파는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커피 맛을 좋게 할 수도 없고, 별 관심도 없다. 이런 경우 어지간한 상권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대개 이런 분들은 창업 후 카페를 운영하다가 권리금을 받고 다른 사업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커피를 좋아하면서 다른 대안이 있는 경우, 고민을 더 해야 한다. 이런 분들은 카페 운영중 위기가 찾아오면 견디기 어렵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커피 맛을 향상시킨다거나 수익원을 다각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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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체파리의 비법 팁트리 주니어 걸작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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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고 차분한 문장. 한 호흡으로 책의 마지막까지 볼 수 있게 하는 작가의 힘. 소설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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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읽고싶어지는 이유는 참 여러가지다. 나의 경우에는 제목이 마음에 들거나, 표지가 예쁠 경우,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가지의 경우가 더 있다. 아끼는 출판사의 책이거나, 추천사가 마음에 드는 경우, 책 속의 삽화나 사진이 눈에 띄었을 때 등등. <세상 끝에 살고 싶은 섬 하나>는 위에 이야기한 이유 중 상당수를 차지했다.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장 눈에 띈 건, 책의 뒷커버에 적힌 김훈 선생님의 추천사였다.

"나는 3년 전에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추크섬을 여행하다가 거기서 김도헌을 만났다. 그는 오래전에 이 먼 섬으로 건너와 원주민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두고 있었다. 그의 삶은 풍매하는 홑씨 한 개가 바람에 실려와 인연 없는 땅에 떨어진 것 같았는데, 이 홑씨는 살아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감당하고 있었다."


미크로네시아가 어디더라. 추크섬은 또 어디지. 지도를 검색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친절하게도 예쁜 지도가 담겨있었다. 괌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 그곳에 이 책을 쓴 작가가 살고 있다. 잠깐의 여행이나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정말 그곳에 몸을 맡기고 살고 있었다.


 

 

요즘 나오는 책에 비해서 글자가 많은 편이다. 빼곡히 줄을 맞추고 있는 글자들이 지겨울만도 한데,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작가가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차분하게 써내려 간 까닭이다. 그의 이야기와 주변인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섞여 소설책을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이병률 작가의 사진이 담겨있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이유 중 하나다.


"땅 위에 사는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깊디깊은 심연의 공간을 나는 바라본다. 원근감 없이 흔들리는 짙푸른 공간이 창공 같기도 하고 물속 같기도 하다. 몽환적이고 경외로운 풍경 앞에서 물살에 몸을 맡기고 기포만 뿜어 올린다. 앞서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달에 착륙한 우주인이 유영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다. 찾고 있던 해면을 발견했는지 그들은 테이블 산호와 브레인 산호가 섞여 자라는 군락 옆에 바짝 엎드려 사진을 찍은 다음 작업용 칼로 회색빛 해면을 잘라내 그물 망태기에 담는다. 나는 뒤편 흰모랫바닥에 무릎을 꿇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들이 하는 일을 구경한다. 멀리서 다가오던 잭피시떼가 방향을 틀어 우리는 비껴간다."

p113.


 

 

"행복이라는 것이 불행하지 않아 행복한 것이라면,

나는 불행하지 않으니까 행복한 거겠지."

p150



언젠가 아버지에게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두어살 어렸던 아버지는 '이민'이라는 용감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나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 어쨌든 아버지께서는 내가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할 때마다, 타향살이의 서러움과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하도 들어서 외웠을만큼 절절한 사연때문인지 요즘은 아예 나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잠깐의 여행에도 이렇게 외로운데, 낯선 곳에 오랜시간 머무른다는 건 꽤 두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김도헌 작가는 그렇게 낯선 곳, 내가 막연하게 외로울 것이라고 추측했던 타지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렸다. 이제 그는 오히려 한국이 낯설고 불편하다고 말한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하늘, 바다와 친해졌다. 열대어와 산호초는 그의 친구가 되어줬고, 때때로 섬 전체가 그에게 어깨를 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코럴을 만났다. 그러니 그에게 그곳은 전부이며, 삶이다.


언어와 생활 방식이 다르고, 사고도 다를 수밖에 없는 낯선 땅에서 김도헌 작가는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추크섬의 원주민과 같은 모습으로, 아마 내일은 뼈 마디마디 파고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이방인으로. 그렇게 그는 여전히 경계에 서 있지만, 그의 삶이 있는 그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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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 애인과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싸움의 원인이 기억날 리 없지만, 당시 그가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줄 생각이, 전혀, 없어.”

전혀에 강세를 찍은 그의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크기가 작고, 게다가 소심한 모양으로 빚어진 나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거야.

영향을 끼치려고 해선 안 돼.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그가 변한다면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닌 거니까. 감화건 강요건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단념하는 게 좋아.“

앙리 피에르 로쉐 <줄과 짐>

 

 

돌이켜보면 나는 그가 내게 딱 맞는 옷혹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변하는 내 기분에 잘 맞춰주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 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싸웠던 시간이 파도처럼 내게 밀려왔다 부서진 지금, 나는 안다.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할 것이고, 그도 이런 나를 사랑할 것이다.

곽정은 작가의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은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고민에 답을 하고 있는 책이다. 한동안 출판사에서 사랑과 연애에 관한 고민을 모은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아마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한 것이었나 보다. 책 제목 하단에는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고민에 답하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곽정은 작가가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로부터 받은 메일을 추리고 추려서, 답을 한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담담하게 건네는 언니의 위로

연애에 정답이 있을리 없겠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녀의 코멘트들은 어쩐지 모두 정답같이 느껴진다. 그도 그럴것이 방송에서 그녀를 봤다면 똑 부러지고 솔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책 속의 코멘트들도 방송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곽정은 작가는 고민을 보내온 이들에게 솔직하게 담담하게 그녀의 생각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때로는 따끔한 충고가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전해진다.

 

애인이 자신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는 고민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연애를 하다보면, 이래저래 힘든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저 이래저래 힘든 일 정도가 아니래 내가 구걸하고 있다는 감정이 들 정도라면, 그건 불행한 관계가 맞아요. 혼자 있을 때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에 연애를 선택한 거잖아요? 힘든 일도 있겠지만 그 안에서 행복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 그 사람을 선택한 거잖아요? 당신을 갈증나게 만드는 남자와는 절대 행복할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연애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요. 지금의 그 남자는, 당신의 그 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네요.”

프롤로그에 적힌 그녀의 말이, 책의 모든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

"상처를 받더라도, 매번 어긋난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결국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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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드릴 꽃을 사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웃으셨다. 직계 가족도 아닌데 유난이라며.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자 결심했을 때 (그게 드라마 작가든 소설을 쓰는 사람이든, 하물며 지금처럼 사보를 만드는 직업일지라도) 나는 선생님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찾아 읽었다. 책장 한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는 선생님의 책들.

 

선생님의 글을 처음 접했던 건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여자네 집가볍게 읽을 수 있는 로맨스 소설쯤으로 생각했던 건 순전히 제목 탓이었다. 또 선생님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알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다.

 

이후로도 선생님의 글은 문학 교과서를 비롯해 종종 모의고사나 수능 문제의 지문으로 나왔다. ‘밑줄 친 부분과 같은 뜻으로 사용된 단어를 고르시오따위의 폭력적인 문학시험 문제를 경쟁하며 치열하게 풀어대는 동안, 선생님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의 삶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렇게 대학을 갔다. 곱단이와 만득이가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처럼, 선생님이 그린 개인의 상흔, 민족의 비극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던 대학 시절, 선생님의 책을 다시 집어든 것은 내가 살면서 해온 일 중 몇 안 되는 잘 한 일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어졌고, 감히 선생님을 존경했고, 동경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글을 읽을 때마다 곁에 계시는 것처럼 이렇게 생생한데, 5년이나 흘렀다니.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그리워하고 있으며, 추억하고 있다고 전하는 책이다. 선생님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의 글을 시작으로, 9개의 대담이 모아져있다. 9명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박완서 선생님을 만났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는지 등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묻는다.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담담하게 답한다.

 

 

그의 문학은 곳곳에서 온갖 바스러진 것들 짓눌린 것들 뒤틀려버린 것들에 대한 짙은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문학에 도저하게 깔려 있는 비극성은 그의 파란 가득한 가족사에도 닿아 있고 그것은 바로 우리 현대사가 그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산맥에 깃들인 개인들의 삶에 떨구어놓은 치명적인 앙금이기도 하다.”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 작가로서 지난 삶을 돌이켜보시면 행복하십니까?’

쓰기를 잘했다 싶어요. 그렇죠. 쓰고 싶은 걸 못 쓰는 건 싫지만, 의욕이 과해도 안 좋아요. 체력에 맞게 써야죠. 체력과 비슷하게, 예쁘게 소멸했으면 좋겠어요. 쓰는 게 고통스럽지만, 쾌감도 있습니다. 또 그래야죠. 즐길 만큼만 쓰고 싶어요.’”

 

유난히 웃는 사진이 많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렇게 잘 웃진 않아요. 여러 장 찍으면 개중 웃는 게 실려서 그래요. 결심을 하고 안 웃은 적도 있어요라며 또 웃으셨죠. 하지만 다시 찾아본 그날의 사진들 속에서 선생님은 역시 온통 웃고 계시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선생님의 뒷모습을 골랐습니다. 저는 이 사진이 좋습니다. 선생님의 등을 살짝 내리누른 세월의 무게가 좋고, 아끼며 돌보셨던 서재와 정원이 잇닿아 있는 풍경이 좋고, 저와 선생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좋습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당신 마음에는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던 이별이어서 저의 뒤끝은 거뜬하지 않지만 당신을 알면서 지내는 동안 나에게 내내 드리워졌던 그 이상한 기둥 같기도 하며 검부러기 같기도 하며, 그물 같기도 한 그걸, 잘 붙들고 잘 덮고 살아갈게요. 꽃은 몇 번 사드린 적 있지만 이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서, 그래서 이제야 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참 예뻐요.”

그럼 우리 언제 만날까요. 여행 중에 산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선생님, 그날은 꼭 좋은 얼굴로 나오셔야 합니다.”

 

 

아주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났다. 단 한 번도 선생님을 만나본 적 없었고 선생님은 늘 책 속에만 계셨지만, 오늘에서야 진짜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문학인들이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 존재만으로도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사람. 문장 하나로도 당신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

 

선생님.

그곳에서도 글을 쓰고 계시는지요.

보고싶습니다. 많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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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16-03-21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벌써 그렇게 지났네요.

저는 이렇게 소녀같았던 모습을 뵌적이 한번 있어요.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