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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형제, 꼬리 달린 친구 - 인간과 동물 사이, 그 사랑과 우정의 커뮤니케이션
제인 구달 외 지음, 채수문 옮김, 최재천 감수 / 바이북스 / 2021년 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426/pimg_751552154292698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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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638만 가구에 달한다. 전체 가구(2,304만)의 약 27.7%가 반려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무려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어, 자못 동물친화적인 사회인 것 같지만, 동물을 잔인하게 학대하거나 죽이는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단연 반려동물 뿐일까?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잔인함과 무관심, 환경오염 등 셀 수 없는 이유로 목숨을 잃고 있다.
<날개 달린 형제, 꼬리 달린 친구>는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사랑받아온 책의 개정판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마크 베코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동물’을 주제로 쓴 글들을 엮었다. 저자들은 자신이 기르는 반려동물을 소개하기도 하고, 오랜 기간 지속해 온 동물 관련 연구를 소개하기도 한다. 동물과의 만남으로 내면적 치유를 경험한 이야기, 동물과 관련된 전설을 소소하게 전하기도 한다.
<날개 달린 형제, 꼬리 달린 친구>는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게리 코왈스키가 전하는 아드리안 코르트란트의 침팬지 이야기는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먹으려고 들고 다니던 파파야를 땅에 내려놓은 채 석양의 장관을 지켜보던 침팬지가 결국 파파야도 잊은 채 숲으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더라는 얘기. 이 책에는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과학의 잣대로 일축하지 말기 바란다. 비판적인 눈은 또렷이 뜨고 있더라도 마음의 문은 따뜻하게 열어두었으면 한다. 언젠가는 과학이 동물의 마음도 환히 들여다볼 수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눈을 갖추게 될 테니까.
<날개 달린 형제, 꼬리 달린 친구>, 5p
여러 명의 저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는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결의 이야기를 한다. 인간과 동물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책의 제목처럼 동물들은 우리의 형제이자 친구라는 점이다.
언젠가 동물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한 학생이 질문했다. 내가 그렇게 많은 어린 침팬지를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무책임한 적은 없었는지 다소 거만한 자세로 물었다. 막 답변을 하려는데 문이 열리고 한 젊은 여인이 새끼 침팬지를 안고 들어왔다. 어미에게 버림받아서 인공적으로 키우고 있는 새끼였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둘러싸고 녀석의 손을 만져보려고 하고, 눈을 들여다보고, 윤기 있는 머리를 쓰다듬어보고 싶어했다.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을 때 나는 녀석을 안고서 교탁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어느 누가 이 어린 침팬지를 죽일 수 있는가? 하고. 우리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잡아서 보호해주거나 아니면 잡아서 죽이거나. 마치 죽음과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몇몇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날개 달린 형제, 꼬리 달린 친구>, 35p
‘동물’의 범주는 매우 광범위하다. 애완동물로 기르는 강아지, 고양이뿐만 아니라, 소, 돼지, 닭, 말처럼 식용으로 길러지는 동물도 있으며, 실험의 대상이 되는 쥐나 모피를 위해 가죽채 벗겨지는 여우도 있다. <날개 달린 형제, 꼬리 달린 친구>의 저자들은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동물을 인간의 ‘형제’, 그리고 ‘친구’로 여긴다. 그리고 어떤 동물이든 그들이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고마운 마음을 늘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책의 제목에 ‘형제’와 ‘친구’가 들어가도록 개정된 까닭도 아마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