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 - 여든 살 아버지 인생을 아들이 기록하다
한일순 구술, 한대웅 엮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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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도 훨씬 전인 1941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의 주인공인 아버지 한일순이 태어난 해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한일순은 열네 살의 나이로 머슴이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겠지만, 첫 직업인 머슴을 시작으로 그의 고된 노동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진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러 팔순이 된 아버지 한일순의 지나온 삶이, 잡지사 기자를 지낸 아들 한 대웅의 손끝에서 한 권의 전기로 엮였다.

 


아버지의 첫 사회생활은 머슴살이였다. 전쟁 이후 먹고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둘째 고모할머니라고 형편이 다를 건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머슴이 되어야 했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농부의 집에서 모내기, 김매기, 풀베기 등 잡다한 일을 하고 숙식과 쌀을 받으며 생활을 해나갔다.

 


아버지가 남의 집에서 모내기, 김매기와 같은 머슴 일을 시작한 나이는 고작 열네 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야 할 시기였지만, 아버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혹독하게 일했다. 이후에도 아버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군대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호적이 없었고, 어렵사리 운영하게 된 창호지 공장은 새마을 운동으로 벽돌집이 등장하면서 망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단칸방을 전전하다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외국인 근로자로 파견되어 돈을 모았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19년가량 닭집을 운영하면서 다섯 명의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우리는 모두 대학에 진학했고, 아버지는 이 사실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했다. 아버지는 지인들에게 우리를 가리키며 어떻게 하다 보니 모두 대학을 가긴 갔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지인 앞에서 그런 식으로 나를 소개할 때마다 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작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데, 인정을 해줘야 하는 당사자가 나를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대학에 들어갔어.’ 라는 말 자체가 아버지의 은근한 자랑이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며 비로소 아버지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꽤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아들이 쓴 모든 문장에는 아버지의 대한 존경과 연민 그리고 사랑이 가득하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철없던 아들은 이제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이 된 것이다.

 


6.25전쟁, 4.19혁명, 중동특수 등 책장을 넘길 때마다 격동의 한국사과 마주할 수 있는 점도 책의 또 다른 재미다. 격동의 한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숭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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