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광화문 광장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 시대 육조 거리 흔적이 대거 발굴되었다. 늘 걸어 다니던 길 아래 조선 시대의 거리가 묻혀있었다니 놀랍고 신기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늘 걷는 길은 저마다의 역사와 사연을 지녔을 텐데,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무심히지나치기에 바빴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의 저자는 시인이자 건축가로 잘 알려진 함성호 작가이다.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저자에게 서울은 많은 추억을 선물해준 아름다운 도시이다. 하루 사이에 없었던 길이 생기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요즘이지만, 저자에게 서울은 여전히 걷고 싶은 낭만이 가득한 공간이다. 사라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의 제목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서울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에게도 좋았던 기억과, 괴로웠지만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듯이 도시도 그렇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괴롭고 아파도 지우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사는 괴물 같은 도시에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싶지 않은 다정하고 괴로운 기억이 있는 것이다. 이 글은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부수지 않고 베어내지 않고 건축하는 방법은 지금, 여기를 이루고 있는 시간과 장소를 철저히 탐구해 들어가는 일이다. 해 아래 새로울 것 없는 세계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는 저자의 기억 속에 있는 다양한 거리가 등장한다. 중구, 왕십리, 종묘를 비롯해 신촌, 홍대, 종로. 저자는 여러 거리를 이야기 하며,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작가들이 그 거리를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 거리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는 글귀들을 함께 가져와 소개한다. 그래서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는 함성호 시인과 그 거리를 걸었던 작가들이 함께 있다.

 


김소월이 꼭 이런 전설을 따른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시에서도 왕십리는 쉽게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정한으로 가득 차 있다. 왕십리는 예부터 남태령 고개와 함께 서울의 관문으로 통했다. 시의 화자도 아마 왕십리에서 누군가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그 이별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가는 이는 이미 떠났는데 화자의 생각은 계속 이별의 장소 왕십리에 머물러 있다. 몸은 돌아오고 마음은 떠난 이와 함께 계속 천안, 아니면 그 사람이 가는 어디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함성호 시인은 무심히 지나치던 길에 담긴 추억과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을 때에는 을 보라고 이야기 한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거리가 눈에 들어오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오로지 앞만 보며 내달리던 독자들에게 잠깐 쉬어가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시인의 위로는 그가 연필로 스케치한 서울 거리의 풍경과 함께 따뜻하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