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말의 자리를 차지하고 등장하면서 부터 가장 뚜렷하게 변화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음성을 통해 울려나오는 말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말하는 자의 육체성이 문자에서는 지워져버리게 되었다는 거다. (음성의 육체성과 문자와의 관계에 대해선 본 컬럼의 „플라톤에서 HTML까지“ 참조)

말하는 자 스스로의 육체를 울려서 발화할 수 밖에 없는 말이 당연하게도 그 말의 발신자를 동시에 드러낼 수 밖에 없는데 반해, 문자에서는 그렇지 않다. 문자는, 그리고 그 문자로 쓰여진 텍스트는 말/음성과 필연적으로 결합하고 있었던 말화는 자의 육체성(그의 성별, 나이, 나아가 그의 육체와 목소리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화자에 대한 모든 정보들)을 그의 말로부터 걸러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제 ‚말하는 사람’이 아닌 ‚말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만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하였고, 이를통해 이제 말은 그 육체성을 상실한 채, 보관되고, 전달되고, 이동되며, 나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될 수 있는 ‚정보’로 변환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의 정보사회의 인프라 디지털 코드는 인류가 최초로 만들어 사용한 기초적 문자 속에서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이 지니고 있었던 육체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까지에는 아직 거쳐야 할 중간과정이 있었다. 구텐베르크에 의해 활자 인쇄술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에 인류는 문자를 직접 손으로 쓰는 수 밖에 없었다.

개개인에 의해 손으로 쓰여진 문자는, 말이 지니고 있던 화자의 육체성 만큼 개방적이고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문자를 쓴 사람의 육체적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개인의 필체 혹은 필적이 그것이다. 누군가가 손을 움직여 써내려간 문자는, 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글쓴이의 개별성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필적 감정을 통해 글쓴이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그의 성격과 성장환경, 그가 그 글을 쓸 때의 심리상태 등까지도 간파해내는 범죄수사 기술은 글씨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육체성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직접 손으로 쓴 글씨가 지닌 육체성이 범인검거 등의 부정적 차원에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타자기나 컴퓨터로 쓰여진 편지보다는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낸 편지가 더 인간적이고 친밀감을 준다고 느낀다.

이메일이 보편적인 문자적 통신수단으로 등장한 오늘날에도 우린 연말연시가 되면, 카드에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쓴 짤막한 글(씨)들을 주고받는다. 그 길지않은 글씨들이 나의 육체성(진실성?)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주길 기대하면서. 컴퓨터나 타자기로 작성된 공적인 편지들에도 그 끝머리에 여전히 직접 손으로 휘갈겨 쓴 개인의 싸인이 첨부된다. 이를통해 그 편지는, 비록 비서에 의해 작성되었을지라도, 친필 싸인을 한 그 편지 발신인 ‚개인의 것’으로 간주된다. 이 모든 관행들은 컴퓨터를 통한 익명적 글쓰기에 익숙해진 오늘날에도 저 오래된 ‚글씨의 육체성’이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적 필체가 지니고 있던 육체성마저 규격화된 활자를 통해 말끔히 제거해버린 책이 보편적 매체로 등장하면서, 이제 애초에 말과 음성이, 이후엔 개인의 글씨가 지니고 있었던 육체성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하다. „활자화된 말“은 그야말로 ‚말하는 사람’과 ‚그의 말’을 최종적으로 분리시켰다. 활자화된 말은 그를통해 하나의 ‚사상’ 이나 ‚생각’, 아니면 ‚감정’등을 드러내지만 그것이 누구의 생각, 감정, 사상인가 하는 것은 다만, 활자로 찍혀진 그 책 저자의 이름을 통해서야 알 수 있다. 우리가 그 책 저자의 이름과 그의 간단한 약력 등을 확인하기 전에는 활자로 찍혀진 그 책의 내용은 사실상 우리에겐 익명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 동일한 내용이 이 저자가 아닌 다른 저자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쓰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이 감추어버리는 말하는 자의 육체성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사람들은 책방이나 출판사 등에서 주최하는 ‚저자 싸인회’에 몰려가 그 저자가 직접 쓴, - 그리하여 그의 육체성의 최소한의 흔적을 보여주는 -, 글씨(기껏해야 그의 이름)를 책표지에 받아두고 싶어한다.

문자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잠재적 익명성은 또한 다른 정치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한 국가의 왕이나 임금이 자신이 다스리는 어떤 지역에 대해 특정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고 해보자.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결정을 문자를 통해 작성하여 그것을 그 지역의 담당관리에게 나아가 그 지역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그를 따를 것을 강제해야 한다. 그런데, 서한을 받아본 관리나 백성들은 그것이 정말 왕에 의해 쓰여진 것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확신하는가? 왕이 그 지역에 직접 행차해서 관리와 백성 앞에서 자신의 정치적 결정에 대해 포고한다면 전혀 발생하지 않을 문제가 여기에 등장한다. 바로 문자의 익명성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의 임금들은 ‚옥쇄’를, 유럽의 왕들은 ‚봉인 혹은 인증’(Siegel)을 사용했다. 이제 왕은 자신의 정치적 결정이 쓰여져 있는 편지에 도장을 찍거나, 문장을 통해 봉인함으로써 그 편지가 다름 아닌 최고 통치자에 의해 발신된 것임을 보증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왕의 옥쇄나 문장은 왕만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만일 동일한 도장이나 문장을 다른 누군가가 도용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발신인의 신분확인을 위해 사용되었던 이러한 방법은 실효를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나 유럽에서나 임금의 옥쇄나 문장은 그 어떤 왕가의 물품보다도 엄중히 관리되었던 거다. 어쨋든, 옥쇄나 봉인은 누군가가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특정한 징표를 통해, 문자가 갖는 익명성을 극복하고자 한 시도였다. 곧, 이전 시대의 말이나 손으로 쓴 글씨가 지니고 있던 육체성을, 왕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옥쇄나 봉인을 통해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임금의 옥쇄를 임금의 몸, 옥체처럼 취급했던 것은 이처럼, 저 옥쇄나 봉인이 말하는 이의 육체성과 그와 결합되어 있는 발신인의 진품성(Authenticity)을 보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우리의 친숙한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되어버린 이메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메일은 기본적으로 컴퓨터 자판을 통해 입력되는 문자로 쓰여진다. 누구의 손이 자판을 치건, 그가 분당 500타의 고수이건, 두 손가락의 독수리 타법 소유자건 상관없이, 모니터에 나타나는 문자는 모두 동일하다. 말하자면, 글쓰는 이, 곧 발신자의 육체성은 그렇게 입력된 문자 속에선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친구와 혹은 동료들과 일상적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데는 사실 이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떨 때 우리는 심지어 한꺼번에 여러 사람에게 동일하게 입력된 이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컴퓨터의 간단한 복제 테크닉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이 입력해놓은 문자들을 복사해서 내 이름으로 보내지는 편지에 갖다 붙이기도 한다.

컴퓨터를 통한 사업과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그러나 이메일 문자가 가지고 있는 저 극단화된 익명성은 이제 새로운 문제로 떠오른다. 이메일을 통해 확인되지 않는 발신인의 진품성(Authenticity)의 문제가 그것이다. 얼마든지 ‚이름(아이디)’를 바꾸어가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고, (난 하루에도 수십통씩의 스팸메일을 받는다!), 원한다면 발신인의 신분을 얼마든지 가장할 수도 있으며, 그도 여의치않으면 그저 인터넷 상에서 잠적해버릴 수도 있는 이메일의 ‚무육체성’은 인터넷을 통한 금전거래의 가장 큰 허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여러가지 방식이 위에서 말한 임금의 옥쇄나 문장의 기능방식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한 컴퓨터에 단 한번만 발행함으로써 그 컴퓨터 소유자의 신분을 확인하게 해주는 소위 ‚디지털 인증서’ 는 독점적 소유를 통해 그 소유자의 신분을 확인하려던 옥쇄의 기능방식과 같다. 개개인에게 고유하게 부여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주민등록번호는 한국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내 번호는 나만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자가 억압해버린 말하는 이의 육체성은 이렇게 다른 모습을 띠고 귀환한다. 다만 그 모습이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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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사실일 수 있을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신화는 뉴스나 제보와는 다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대한 다른 방식의 언어적 기록이지 않을까?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서 언급된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주장은 이 생각의 연장선 속에 있다. 그가 신대에 쓰여있는 신화를 실제로 일어난 사실로 받아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논증은 오늘날의 현대 언어철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여전히 흥미롭다. 그에 의하면, 신대에 쓰여있는 신화들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일어날 수 없는 황당무계하고 불합리한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의 언어를 가지고 옛 언어를 해석해서 옛 일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대에 묘사되어 있는 신화를 그 일이 발생했었을 과거의 언어를 통해 바라본다면 그 신화들은 특정한 사실들을 묘사하고 있는 것에 다름아닌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라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비행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원시사회의 부족장이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사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는 자신이 난생 처음 접한 그 경험을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통해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들어 그는 그 비행기를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는 거대한 독수리“라고 말할 것이다. 나와 그 부족장은 모두 하늘 위로 스쳐 지나간 비행기를 함께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비행기“라고 말하는데 반해, 그 부족장은 „독수리“라고 말한다. 나와 그가 눈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동일한 사태 곧, 하나의 동일한 실재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는 그 동일한 사태를 서로 다른 언어적 표현을 통해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된 서로 다른 언어적 표현을 읽고 대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 두 개의 언어적 표현이 서로 다른 사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나는 ‚비행기’에 대해 말하는데 반해, 저 부족장은 ‚독수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테레비젼을 처음 본 우리의 선조들은 아마도 그를 ‚조그만 사람들이 들어가 살고 있는 상자’라고 말했을 것이며, 전기불을 처음 켜 본 사람들은 그를 ‚도깨비 불’이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와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동일한 하나의 대상 곧, 테레비젼과 전기불을 보고 다만 다르게 말했을 뿐이다.

공터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고, 아이는 „빠방이 코자자 한다“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않고 죽은 듯 늘어서 있는 자동차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코잔다(잠자다)“ 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의 세계 – 그것은 곧 아이가 습득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다름 아니다. – 내에선 세계 내의 사태나 대상을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였다.

이런 식으로 아이는 신호대기 중인 버스를, „버스가 힘들어서 쉬는“ 것으로, 주유하고 있는 차들을 „차들이 밥먹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며, 그것은 아이의 세계 속에서 실지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이다. 나아가 아이는 자신이 이해한 세계 내의 사태에 걸맞게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기도 한다. 아이는 주차되어 있는 차들 옆을 지날 때에는 ‚차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목소리를 낯추며, 신호등 앞에서 ‚쉬고있는 버스’를 독촉하지도 않는다. 차들이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차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아이의 저런 행동을 나이브한 것이라 여긴다.

이제 이러한 예들을 우리가 애초에 제기한 신화의 문제와 관련시켜 생각해보자. 신화는 특정한 언어적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에선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 이해와는 달리 인간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라다니기도 하고, 구름과 다른 동물들로 변신하기도 하며, 마늘을 먹고 곰이 인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우린 그 속에서 표현된 사태들이 우리의 세계 이해에 비추어 볼때 ‚비현실적’이며 ‚비실재적’이라고 말한다. 그 표현들은 결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실재나 세계 내의 사태일 수 없으며 다만 판타지나 꿈 속에서 일어난 것을 나이브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화에 사용된 언어적 표현들이 다만 우리가 마주하는 것과 동일한 실재나 세계의 사태들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신화를 만들어낸 고대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태들을 그들에게 주어져 있는 언어적 표현들을 통해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를 ‚실재나 세계의 사태’가 아니라 그저 ‚판타지나 상상’을 묘사한 것이라 여기는 것은, 그들의 언어적 표현을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신화의 언어적 표현들을 사실상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실재와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우린 그 언어적 표현들로부터 실재와 세계의 특정한 사태에 대한 진술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는 종종 그렇게 하기도 한다. 인류종말의 예언이 빗나가긴 했지만 저 위대한 예언자 노스트라 다무스의 예언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그의 예언을 그 이후에 실지로 일어난 사건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건 그가 자신의 예언에 사용한 언어적 표현들을 오늘날 우리의 언어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언어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려고 시도하는 해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가 얼마전 일어난 쌍둥이 빌딩 테러사건을 다음과 같이 예연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본문은 다음과 같다.

„요크(York)의 도시에 거대한 붕괴가 있어 쌍둥이 형제가 혼란에 의해 갈라진다. 요새는 아픔을 겪고 위대한 지도자는 굴복할 것이며, 큰 도시가 불탈 때 세번째 큰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위의 언어적 표현을 우리가 경험한 객관적 사태에 비추어 얼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뉴욕 도시에 거대한 폭발로 인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다. 사람들은 슬퍼하고 미 대통령(?)은 굴복할 것이며, 보복 폭격으로 다른 도시를 공격함으로써 삼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이제 이러한 해석방식을 우리가 알고있는 다른 신화들에도 적용해보자. 누가 아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놀라운 발견을 우리가 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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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언어는 때로는 그저 중립적인 소통의 매체이지만은 않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 속에서 등장했을때 가해자의 언어와 피해자의 언어는 그 언어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문화적 '작용'을 갖는다.

2차 대전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은 지금도 독일어만 들으면 온 몸이 떨릴 정도의 아득한 섬뜩함을 체험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독일어는 단지 무엇인가를 소통시키는 중립적 소통매체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의 욕구를 위협하는 가해자와 그가 수반하는 공포와 심리적 압박감, 그리하여 증오와 혐오감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음성 복합체이다. 일제시대 한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기를 강요당한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어는 그저 한국어와는 다른 음성적 가치를 가진 다른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다가왔었을 위협과 강요, 나아가 그에대한 증오와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울림이었을 것이다.

독일어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2차대전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영화에 등장하는 '독일어'의 울림은 그 자체로 가해자의 등장, 위협, 불안과 공포, 긴장과 긴박감을 일으키는 그 어떤 소리보다 더 효과적인 효과음에 다름 아니다. 우린 우리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 독일군 병사의 '말 음성'을 통해 가해자로서의 독일의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를 얻게되는 것이다. 반면 그 독일어의 '울림'을 위협과 긴장, 협박과 생존의 갈림길로 받아들이는 피해자들의 언어는 그 말을 우리가 이해하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안도와 발각되지 않았던 어떤 소속감, 공동의 위협 앞에서 존재하게 되는 피해자들 사이의 연대와 자기 희생 등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lifeisb가해자의 언어와 피해자의 언어가 갖는 이러한 대립적인 음성적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 장면을 우리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에서 본다. 어린 아들과 함께 아우슈비츠의 포로 수용소로 끌려온 아버지는 포로 수용소의 비인간적이고 엄격한 생활 규칙을 설명해 주는 독일군 병사의 말을 아들을 공포에 빠뜨리지 않기위해 이탈리아어로 하나의 게임 규칙인 것처럼 번역(?)한다. 가차없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비인간적인 수용소의 가혹한 생활규칙을 설명하는 독일군 병사의 말은 그를통해 우승하는 자에게 전차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하나의 흥미진진한 집단게임의 규칙으로 번역된다. 이를통해 가해자의 언어인 독일군 병사의 폭력과 위협적인 음성 이미지 피해자의 언어인 이탈리아어의 인간적이며 유희적인 음성적 이미지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독일병사의 독일어나 로베르토의 이탈리아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그 두 언어의 음성적 이미지의 대립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한다.

모든 외화를 자막 대신 더빙으로 처리하는 독일 티브이에서 이 영화를 보았던 나는 유감스럽게도 이런 서로 다른 음성적 울림이 낳는 이 장면의 효과를 체험할 수 없었다. 가해자 독일군 병사와는 다른 울림을 가졌어야 할 알베르토 역시 같은 독일어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명장면은 저 서로 다른 언어의 음성적 울림의 대립의 효과를 잃고 다만 독일 병사의 제스쳐를 응용, 이를 다른 의미의 말로 변화시켜 내는 알베르토의 재치만이 부각되는 평범한 장면이 되어버렸다.

독일군과 연합군이 모두 함께 독일어로 이야기하고(„라이언 일병구하기“), 아우슈비츠의 폴란드 유대인 포로와 독일군 병사가 전부 독일어로 말하는(„쉰들러 리스트“), 심지어 전쟁 중인 일본군과 미군이 모두 독일어로 이야기하는(„펄 하버“) 영화를 떠올려보라. 모든 대사를 독일어로 더빙함으로써 이 영화들은 독일인들에게 이해되기는 하겠지만 서로 다른 언어의 음성적 울림이 주는 극적인 효과를 상실하는, 서투르게 번역된 번안시처럼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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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은 내가 입력한 것이 내가 그것을 다시 필요로 할때 온전하게 다시 불러내어질 수 있는 무시간성을 특징으로 갖는다. 난 무엇인가를 저장하고, 그렇게 저장된 것은 이후 언제든지 내가 필요한 순간에 저장된 상태 그대로 다시 불러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반면 기억은 내가 그것을 나의 기억 속에 담게된 순간과 그것을 다시 불러내어 상기하는 순간의 시간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나의 기억은, 내가 그것을 불러내는 순간의 나의 현재의 상태, 정체성, 과거에 대한 판단, 기억하는 대상과 얽혀있는 감정상태 등에 의해 그때그때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재조직된다. 말하자면 기억에선 체험과 기억이 하나의 구조로 결합되는 것이다. 여기선 저장에서처럼 저장시킨 내용과 불러낸 내용 사이의 동일성이 문제될 수 없다.

많은 기술적 저장 미디어들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많은 것들을 '저장'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 시대의 저장 미디어들이 저장된 것과 불러내어진 것 사이의 완전한 동일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면, 이제 발달된 저장 미디어들의 저장 기술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린 우리가 그것을 제때에 잊어버리지 않고 저장하기만 했다면, 언제든지 내가 필요할때 그것을 다시 불러내어 활용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가 그것의 내용을 내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난 그것을 적절한 순간에 내 머리 속에 '저장'시켰으며, 그를 이제 다시 온전하게 불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이러한 저장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우린 사실상 우리가 활용하는 저장 미디어들, 노트, 컴퓨터, 녹음기 등 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작은 용량의 저장 능력만을 가지고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노트나 책, 컴퓨터나 녹음기가 '아는' 것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을 이제 저장이 아닌 '기억'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우린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저장 매체도 갖지 못했던 인간만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그것이 기억된 시점과 불러내어진 시점에 따라 늘, 새롭고도 변화하는 다채로운 색깔을 띤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기억했던 과거의 사건,사람,지식들을 그를 기억해 내는 지금, 현재의 지평에 따라 창조적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이다.1

훌륭한 저장 미디어로서의 컴퓨터가 만일 이러한 '기억'의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1년 전에 써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나 디스켓에 기억시켰던 글은 1년 후 내가 그 글을 다시 불러낼 땐 새로운 글로 숙성되어 있을 것이다. 1년 전 내가 기억시켜 놓았던 나의 생각은 1년 동안의 나의 새로운 경험과 성숙 혹은 변화를 반영하여 다른 분위기의 다른 글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컴퓨터는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을 불러낼 때의 나의 감정상태를 감지하여 그 글을 적절히 변화시키기도 할 것이다. 10년 전에 내가 감동했었던 한장의 그림을 컴퓨터에 기억시켜 놓은 나는 1년 후 역시, 그 그림이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분위기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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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는 Nationalsozialism , 민족 사회주의의 약자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국가는 독일인들에겐 그야말로 인민의 국가였다. 나찌는 국민들이 국가가 바로 그들 물론 아리안 인종의 독일인들! – 위해 존재한다는 실물적으로 느낄 있도록 국가 시스템을 조직하고 운영했고 이를통해 대다수 독일 인들의 자발적인 충성과 지지를 얻어낼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에게 히틀러의 국가는 평상시 그들 봉급의 73 퍼센트를 지급했다. 그건 당시 영국이나 미국 군인들에 비해 두배가 많은 수치였다. 나찌 국가는 군인과 그들 가족으로 하여금 오히려 평시보다 실물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있도록 배려했으며, 모두를 점령국과 유대인으로부터의 효과적인 착취를 통해 충당했다. 전쟁에 참여한 독일 군인들은 공식적으로 한달에 100 마르크, 크리스마스 200 마르크까지를 고향으로 송금할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점령지에서 월등한 환율가치를 갖게된 독일 마르크화로 그곳의 모든 물건들을 그야말로 똥값 구입할 있었고, 그를 특별히 독일 군인들을 위해 마련된 소포 열차를 통해 한달에 2,5 Kg까지 독일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있었다. 1941 1월부터 독일 관세청은 군인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소포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주었다. 이를통해 남아프리카의 신발, 프랑스의 실크, 주류와 커피, 그리이스의 담배, 러시아의 꿀과 , 노르웨이의 청어, 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특산품들이 수없이 전쟁 중인 국경을 넘어 독일에 있는 군인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고향에 남아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쟁 전엔 오히려 접해보기 힘들던 장난감, , 유럽 각국의 특산품과 생필품 등을 손쉽게 보낼 있다면 어느 아버지가 그를 마다하겠는가. 당시 군인으로 참전했던 작가 하인리히 뵐은 독일에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소포에 당신에게 무엇인가 보낼 있게 되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거요라고 썼다. 이를통해 군인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배려해주는 고마운 국가에 대해 마음 속으로부터의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나찌 점령지의 국민들은 부족해진 생필품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독일에 남아있는 군인 가족들을 위해서도 나찌국가 독일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미 남편과 아버지가 매달 전선에서 부쳐주는, 평시엔 접해보기 힘든 물건들로 기뻐하고 있던 이들에게 나찌 국가는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부서진 집과 가구, 그외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거의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1943 점령지였던 프라하엔 독일인들에게 폭격으로 상실한 가구와 생활 용품들을 재충당 해주기 위한 폭격피해 복구를 위한 저장창고가 설치되는데, 여기엔 4,817 개의 침실가구, 3,907개의 부엌가구, 18,267개의 옷장, 25,640개의 소파, 1,321,741 개의 부엌과 가정용품, 1,264,999 개의 침대보와 , 밖의 물건들이 있었고, 이는 전쟁 독일 도시의 관청들이 개최했던 경매를 통해 헐값에 독일인에게 분배되었다.

모든 물건들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측할 있듯 이것들은 독일과 다른 유럽국가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의 것이었다. 살고있던 집을 떠나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에겐 일인당 50 킬로그램까지의 짐만 허용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집과 가구, 나머지 살림들을 모두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민족 사회주의, 나찌 국가는 1941 8 베를린, 쾰른, 프랑크프르트, 함부르크 등에서 수용소로 이송된 8천명의 유대인과 열흘 브레멘, 빌레펠트, 뮌스터, 하노버 에서 이송된 13,000명의 유대인들의 남은 재산을 몰수하여 소위 폭격피해를 입은 독일인민의 소유 만들었다. 그나마 급히 짐가방에 넣고 갖던 나머지 물건들도 주인들이 수용소 가스실로 사라지고 후엔 독일인들에게 귀속되었다. 그리하여, 붕대, 가루 액체 비누, 면도칼, 면도크림, 샴푸, 머리기름, 성냥, 향수, 구두약, 칫솔, 담배, , 커피, 카카오, 쏘세지, 초코렛 등의 물건들은  당시 독일 적십자가 운영하던 군인 기숙사와 군대용품 저장고로 이송되었다. 죽은 유대인들의 물건들이 전시 독일인들의 편안함 삶과 그를통한 나찌 국가의 공고화를 위해 활용되었던 것이다.            

역사학자 알리의 책은 나찌 독일을 겪은 독일인들의 전후 책임문제에 대한 공방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전후 독일인들은 자신들 역시 히틀러 독재의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인류사에 유래가 없는 나찌 전범의 도덕적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는 또한 , , , 소련 연합군을 나찌 독재로 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해방군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후에 이루어진 전범 재판은, 한나 아렌트가 표현하듯 전체는 유죄이나 개인들은 무죄라는,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 상황을 만들어내었고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독일인들 스스로를 전체로서의 나찌와는 무관한, 개인적 희생자로 규정하려 했다.

그러나, 알리가 책을 통해 보여주듯, 나찌 국가의 독일인들이, 피점령지 국민들과 유대인들의 희생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 이익의 긍정적 수혜자였다면, 그리하여 나찌와 히틀러에 대한 그들이 지지와 봉사가 단지, „국가 조직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한 것일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만족과 편안함의 긍정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제 전쟁책임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부터는 전선에서 배달되는 아버지의 소포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전후세대들도 그렇게 많이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나아가 책은 민족주의와 결합한 독재를 바라보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자국 국민의 안녕과 삶의 만족을 보장해 주었던 독재자는, 타국 국민들과 자국내 소수 인종의 희생이 있긴 했어도, 국민들에겐 훌륭한통치자이지 않을까. 오늘날 독일인들 사이에 적지않게 잠재되어 있는 나찌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적 실용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어쩌면 그건 또한 부시를 재선시킨 대다수 미국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인지도 모른다.     

 Götz Aly : Hitlers Volksstaat. Raub, Rassenkrieg und nationaler Sozialismus, S. Fische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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