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많은 나라들의 분노와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계속 팔레스타인을 공격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이스라엘은 전쟁에 있어서 어떤 도덕적 명분도, 휴머니즘적 고려도, 국제 관계에서의 고립이나 그로인한 경제적 불이익 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전적으로 칼 슈미트가 말했던 „적과 동지“의 구분이라는 ‚정치적인 것’의 논리를 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조차도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을, 허위로 조작해서라도, 내세웠어야 했던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이슬라엘은 오늘날 그 어떤 나라보다도 충실하게 칼 슈미트의 정치 이론을 현실 정치 속에서 대변하고 있는 듯 하다.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이 나찌의 법 철학자였던 칼 슈미트의 정치사상을 실천하고 있다고 하는 일견 모순적으로만 느껴지는 이 가설의 근거를 우리는 그러나, 유대인 철학자로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의 교수이기도 했던 야콥 타우베스 Jacob Taubes가 전해주는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야콥 타우베스에 의하면 칼 슈미트의 정치사상은 1941/1942년 뉴욕의 유대인 신학 세미나 Jewish Theological Seminar 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도, 특히 Albert Salomon 등을 통해서 미국의 보수적 유대인 학자들과 유대주의에 결정적인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 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건국되던 시기 이스라엘의 헌법과 법률에 직접 영향을 끼쳤다. 야콥 타우베스는 이를 그가 1949년 바부르크 장학금을 받고 히브리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할 때 겪었던 일화를 통해 전하고 있다. 법 개념에 관한 역사적, 철학적 논의들을 강의하기 위해 당시 그에 대해 유일하게 다루고 있었던 칼 슈미트의 ‚헌법론 Verfassungslehre’ 을 도서관에서 대출하려던 타우베스는, 당시 이스라엘 헌법 초안 작업을 하던 법무장관 Pinchas Rosen이 그 책을 빌려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이스라엘 국가의 헌법은 칼 슈미트의 <헌법론>에 기초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Jacob Taubes : Ad Carl Schmitt. Gegenstrebige Fügung, 1987 Berlin, S.19, Jacob Taubes : Die politische Theologie des Paulus, 1993 München, S.134.)
칼 슈미트의 <헌법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이스라엘 헌법에 반영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치적 „적“들을 대하는 태도와 정책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는 당연하게도 더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과제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어떤 식으로든 정말 칼 슈미트의 ‚주권자’와 ‚정치적인 것’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면, 거기에 대한 우리의, 대부분 휴머니즘적, 윤리적 관점에서의 비판은 별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정치를 도덕적 요구들로부터 자율화시키고, 주권자적 결정과 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영역으로 독립시키려는 것은 칼 슈미트 정치 사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