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밀란 쿤데라 지음 / 하문사 / 1994년 10월
평점 :
절판


마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법. 서로 다른 직업과 맥락에 있는 여러 등장 인물들은 그러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으며,가끔씩 서로 마주치기도 한다. 사건들은 늘 그들 각자의 삶의 공간 속에서 발생하지만 그 공간들은 서로 일부분씩 겹쳐져 있다. 교집합적인 소설. 따라서 우린 그의 소설을 읽으며 그 모든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그들의 공유공간에 대해 둘러가며 입체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모르고 있지만 우린 그들이 서로 모르는 채 스쳐 지나고 있는 광경에 짜릿한 흥분을 맛본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그 등장인물들의 서로에 대한 관계의 양상이다. 그들은 서로는 알지 못한 채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인상을 확인하며,(좋든 나쁘든)그들에 대한 입장을 갖는다. 이런 식으로 엮어져 있는 그들 관계의 그물망을 짜는 쿤데라의 솜씨는 정말 놀랄 만하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 주관적 환상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서로에 대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신뢰가 일순간에 다시 증오나 배반으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그 변화의 과정은 어쩌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기에 희극적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그러한 사소한 환상과 변화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위 심경과 가치관의 변화라는 것에 엄청난 무게감과 존엄성을 부여하려고 한다. - 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는 자기 나름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해석에 의거해 자신의 행동과 태도들을 결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각자의 환상들이 부풀어올라 서로 퉁퉁 부딪치며 부유하는 모습과 같았다.

각자는 모두 삶에 대한 각자의 콘텍스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그 컨텍스트에 의하면 지극히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이다. 그러나,어느 순간 그 삶들에 작은 균열이 발생하였을 때, 각자의 컨텍스트는 서로 부딪쳐 껄끄러운 소리를 내며 삐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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