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여 침을 뱉어라
이효인 / 예건사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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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충무로 판에서도,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비평판에서도 운동권 출신과 비운동권 출신사이의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과 - 그중에서 이효인은 전자를 대변하고, 정성일은 후자를 대변한다.- 그 역시, '한국적인 것'이라는 화두가 한국영화를 둘러싸고 논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더구나 놀라왔던 것은, 이효인 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하면서도, 글이되고 책이 될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작가는 1960년생으로, 이제 거의 40대가 다 되어가는 세대다. 우린 그의 생년월일로 그가 대학1-2학년 쯤에 광주를 맞이했고, 그것이 그의 삶에 결정적 전환을 안겨주었으리라는걸 직감한다. 그는 당시 운동권출신으로는 진귀하게도 영화운동에 일찍부터 발을들여, '서울영화집단' 에서 박광수, 김홍준 등과 활동하다.'서울 영상집단,', '민족영화연구소'등을 전전한 인물이다. '영화평론가' 라는 우릴 주눅들게 하는 '멋진' 표찰아래 그의 이름이, 한겨레 신문 등에 간혹 등장한 걸 우린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판에 조금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그가 한때 한국영화에 대한 비평때문에, 영화판에선 이단자 쯤으로 취급되게 된 작은 사건의 장본인임도 기억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수연, 안성기, 문성근, 정성일 등 내노라하는 인물들과 어울려 다니며 영화평론을 한다는 그의 생활은 우리 예상과는 다르게 '지긋지긋한' 것이었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체제 4명이 삐질삐질 비비며 사는 10평짜리 아파트와 티코 한대가 40대가 가까화가는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집안꼴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지금 이책-을 낸 출판사(영화언어)에 근무하며, 부정기적으로 영화평을 '팔아' 생활한다.

그의 글은 조악하다. 그는 자신의 문체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하고싶은 말만 하자는 식이다. 더우기 그의 글에는 친절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냉소와, 학위가 없어서 대학교수가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피해의식이 걸러져 있지 않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의 피해의식엔 칼이 숨겨져 있다. 난 너희가 유학가고 학위받는 동안, 대한민국에서 허덕이며 운동하고 있었다! 너희가 '진보와 운동의 이름으로' 수사적 문체와 화려한 학위를 팔아먹고 있을때, 난 고통스럽게 한국영화의 미래와 전망에 대해 고민하였다. 사실, 이런 식의 '칼달린' 피해의식은 왜곡되고 부정적 방식으로만 드러나기 십상이다. 그를 백안시하는 영화판의 인물들 (정성일 등)은 그의 이런 자의식을 지적하고 나선다. 이건 마치, 운동권들은 모두 결손가정의 자녀들이거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문열 식의 중상과 같다. 90년대 들어 재생산 된 그것은 더욱 공격적 양상을 띤다. 그것봐, 운동권 출신들은 저래서 안된다니까. '적응'하지도 못하고 있잖아. '적응'과 '지탱'의 힘겨운 줄다리기. 그의 글은 그래서 잘 읽힌다.

이 책은 영화평론 모음집이 아니다. 이책은 이효인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 영화판,영화적 삶-'영화같은'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밥먹고 살아가는'이라는 의미의 - 속에서 풀어나간다. 80년대를 힘겹게 살아남은 사람과 '영리하게 대처한 사람들' 간의 위화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90년대를 살아가는 그의 삶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투성'을 잃지 않는다. 참 용하다. 40이 다 되도록 버티어내는 그의 견고함은 어디에 뿌릴두고 있을까. 죽을때까지 세상에 침을 뱉으며 살아갈 용기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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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0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놀랐어요.
특히 정성일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는 부분이......
책을 읽고 1년 후인가, 경희대 졸업생인 친구의 결혼식에 갔더니
하객으로 참석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