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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곽재우
조민 지음 / 문학지성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역사 소설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책 또한 아주 잼나게 읽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을때나 아니면은 티비속의 사극을 접할때마다 정말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김훈의 <칼의 노래>라는 책을 통해서 이순신에 대한 글을 읽을때도 마찬가지였고 이 책을 통해서도 일본(왜)가 한 짓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또 무능하고 부패한 조정의 대신들을 보면은 정말 짜증이 확밀려온다,,,
학창시절 역사를 배울때 짤막하게 나오는 홍의장군 곽재우
임진왜란 당시에 사실상 의병활동으로 인해서 왜의 침략을 막아 낼 수가 있다고 배우면서 잠깐 언급이 되고 그래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책을 통해서 나라를 사랑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삶의 도리를 깨우쳐 준 의병장이자 현자로 살아간 곽재우의 삶을 엿볼 수가 있어서 좋았다,
동시대를 살았던 이수광은 <지봉유설>이라는 책에서 임진왜란 당시 3대첩의 주인공인 권율과 김시민을 제치고 선조대의 2대 명장을 꼽는데 이순신 과 곽재우를 뽑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의를 세우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백성의 당연한 본분이다, 내 붉은 심장을 터트려 산천을 물들이고 내 피 끓는 영혼을 천지에 뿌려 하늘을 움직이리라!" ==p197
일찍히 그 학문이 뛰어나고 사람됨됨이가 되어서 남명조식 선생은 재우를 재자로 받아 들여 자신의 손녀와도정혼을 시킨다,,
남명조식하면은 나는 <조선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좀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는데,,조정이 썩을때로썩고 무능하고 부패한 조정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으로 내려야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평생을 보내면서 13번이나 나라의 부름을 받았지만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곽재우 또한 문과2등으로 과거에 급제하지만 그 답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조가 파방하여 그 후로 과거를 보지 않고 강호에 묻혀 살아갔다,
그러나 사람의 가치는 위기가 닥칠때 드러 난다고 하였던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파싸움만 하고 있던 조정대신들과 지방관아의 수령들은 도주하고 정작 위기가 닥쳐 필요할대 자신의 목숨부터 챙기고 도주한다,
이때 곽재우는 자신이 모든 재산을 다 내놓고 의병을 모집을 하고 병기와 군량을 감당하며 처음에는 집안 하인들 10명을 이끌고 첫승리를 얻었다,
남명스승으로 부터 병법을 배웠고 장인인 만호 김행으로부터는 병사에 관한 일과 무예를 익혔으며, 선친이 의주 목사로 계실때 선친을 도와 병사에 관한 일을 한것이 곽재우가 의병활동을 하는데 책략이 뛰어나 그런것들이 다 도움이 된것 같다,
곽재우는 애초에 상을 바라고 의병활동을 한것이 아니고 오직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지킬려는 마음에도 활동을 한것이기 때문에 전공을 세웠으나 단 한차례도 조정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곽재우 같은 대장부가 없었다면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런지 정말 아찔하다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었고 육지에는 곽재우가 있었다,
곽재우가 낙동강을 오르내면서 왜군과 싸워 경상 우도를 그의 보호아래 두었고 왜구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 호남지역으로 진출할려는 것을 정암진에서 처단하여 적의 호남지역의 진출을 저지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영웅들은 전쟁이 끝날려고 하면은 갖은 모함이 난무하고 , 반란을 일으킬까봐 없는 죄도 만들어서 죽일려고 하는등,,그리고 왜(일본)은 곽재우를 죽이기 위해서 또 암살단도 보내고 하니 세상은 재우가 조용히 지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의병장으로 알고 있었던 홍의장군 곽재우,,이 책을 통해서 그를 왜 의인이자 현자 곽재우라고 불리워 지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아낄줄 아는 진정한 영웅을 보았으며 ,위기에 나라를 지켜준 곽재우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진실로 그 어떠한 부귀로도 대장부의 뜻을 어지럽히지 못했다. 변란초에 포의를 입고 향병을 이끌어 적을 토벌하고 공을 세웠다,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 되었으나 모든 것을 뜬 구름처럼 여기고 표연히 은거하여 필마로 가야산을 주유하였다. 낙동강 하류의 창랑에 집을 짓고 삿갓과 도롱이를 입고 지내면서도 즐거워하였다,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다투었으나 재우는 그러지 아니하였으니 어찌 세사 사람들과 다르지 아니한가."- 왕조실록의 사관에 남은글 p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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