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1927
송해.이기남 지음 / 사람의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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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1927

에세이 / 송해, 이기남 / 사람의 집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을 때처럼

즐겁고 기쁜 게 없어요.

저는 지금도 원하는 것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그저 건강해서 끝까지 여러분 앞에

꿋꿋하게 선다면 제가 누릴 수 있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용 인용 -



어릴적 추억의 소리 중에 하나가 일요일 점심쯤에 티비에서 들려오는 '전국노래자랑~~~'하고 외치던 송해아저씨의 목소리입니다. 그때는 아저씨라 불렀는데 지금은 할아버지라고 해야겠죠?

온 동네 티비에서 똑같이  들려오던 그 목소리였는데 지금도 변함없이 일요일에 들을 수 있다니 너무 신기한 것 같고 대단한 것 같습니다.


송해 선생님은 올해 아흔다섯이십니다. 고향은 황해도 재령, 1927년 4월 27일에 태어나셨다고 하네요.

이 책은 얼마전에 송해 선생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송해 1927>을 찍으셨는데, 그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님이 송해 선생님과 가족, 희극인 후배들 등을 여덟 차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송해 선생님의 인생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MC 송해 선생님의 딴따라 인생이 그의 출생과 자라온 환경과 가족사 등 우리가 미쳐 몰랐던 그의 인생 전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릴적에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서 소학교를 남들보다 한 2-3년 늦어서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터졌을 때는 스물넷이었고, 해주음악전문학교에 다니다가 도망을 쳐서 합류한 길이 남한으로 내려가는 피난길이였다고 하네요. 상륙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망망대해를 해맬 때 그때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송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본명은 송복희였는데 남한에서는 송해라는 이름으로 주민등록상 본명이 되었다고 하네요.


가족도 없이 홀로 피난와서 정말 막막했을 듯 한데 임시 수용소이자 훈련소에서 차출되어서 육군 통신 학교로 가게 되어쏙 그곳에서 <766 고속도 통신사 >시험에 합격해서 통신원으로 군대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전국노래자랑을 어떻게 진행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이 제일 궁금했는데... 휴전 협정이 체결되어 군을 3년 8개월을 생활을 하고 제대를 하고 친구의 집에서 살면서 극장에 악극단 구경도 가고 여러 악극단을 떠돌기도 하면서 전국을 돌며 유랑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울 한일극장에 온 <창공악극단>에 노래 부르는 시험을 보고 합격해서 들어가서 활동을 하다가 방송국에서 여기저기 악극단을 찾아다니며 방송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을 인물을 찾을 때 기회를 잡았다고 하네요.


북한에 금강산 관광과 <평양노래자랑>을 통해 두번 방문했던 이야기나 전국노래자랑을 맡게 된 이야기, 그리고 오토바이사고로 20살의 젊은 아들을 잃은 이야기등 굴곡진 삶을 살아오면서 겪은 송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의 살아있는 역사를 함께 읽은 듯 합니다.

34세 때 4.19혁명, 53세 때 군사 쿠테타 등 아주 먼 예날 이야기인 줄 만 알았는데 그 모든 것들을 다 겪으면서 살아오신 송해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는 마치 내 가족이 겪고 내가 겪은 듯하게 다가오네요.  송해 선생님의 딸, 손자, 그리고 후배 희극인(엄영수, 김학래 등등 )을 통해서 듣는 각자 개인의 이야기와 함께 송해 선생님의 삶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던 시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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