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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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소설 / 권비영 / 특별한서재



대한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 하란사,

그녀를 새롭게 기억하다!

백만 독자가 사랑한 < 덕혜옹주 >권비영 작가의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

- 책 표지 문구 인용 -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번에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라고 하니 더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희 엄마는 독립유공자유족으로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셨습니다. 대대로 지수집안으로 넉넉하던 외가에서는 독립운동 자금을 대다가 나중에는 전 재산을 팔아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엄마와 외가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고 외할아버지 또한 외경에 잡혀서 순직하셨는데요.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제에게는 남다르게 다가오던 차에 이번에 대한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완성하셨다고 하니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선 많이 모르는데 저 또한 이번 기회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험난한 길에 뛰어든 그녀들의 희생과 업적을 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기도 했습니다.


평양의 전주 김씨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인천 별감이라는 벼슬아치의 하상기의 후처로 혼인한 후에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그녀가 결심한 여러 일들을 당차게 헤쳐나갑니다. 선교사들이 한국 여성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이화학당>에서 공부를 한 후에 남편의 지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1년 동안 공부도 하였고 이후 오하이오주에 있는 감리교 계통의 웨슬리언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아온 일도 대단한 일이였죠. 그것은 조선인 최초로 미국 대학의 학위를 받아온 것이였으니깐요.
그녀는 고집도 있고 목표도 뚜렷하였습니다. 불우한 처지의 여성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목표였던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길을 닦아 나갔습니다. 귀국후에 스크랜턴 부인이 세운 영어 학교의 교사가 되기도 하였고 이화학당의 첫 기숙사 사감이 되어 일했는데 얼마나 엄격했으면 학생들은 그녀를 ' 욕쟁이 사감'이라는 별명을 붙였더라고요. 

" 너희들은 등불 꺼진 저녁 같은 이 나라를 구해야 하는 사명이 있어. 
공부를 잘 하는 건 어둠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공부한 자들은 어리석은 백성들을 계도하고 나라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해. 쓸데없이 연애질이나 하며 청춘을 허비해서는 안 돼. 우리 한 명 한 명이 다 애국자가 되어야 해." - 61




너그럽고 다정하며 생각이 고루하지 않고 툭 트인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그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유로운 여자로 원하는 만큼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삶이 그렇게 순탄하지 많은 않았습니다. 바로 이화 졸업반이였던 그녀의 딸 자옥이 18살의 꽃다운 나이로 요절을 하게 된 아픔은 당차고 강한 그녀를 고통의 시간으로 이끌었습니다. 자옥을 낳자마자 몸만 풀고는 망설이지 않고 유학길에 올랐던 란사는 엄마로써의 도리를 자옥에게 한번도 베풀지 못한 그런 엄마였으니깐요.

남편의 지극한 배려와 보살핌으로 란사는 곧 평정심을 되찾는 듯했으나 이후 무섭게 더 일에 빠져들었고 이후 이강(의왕)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던 중 독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책에서는 미국 유학시절 의왕을 만나게 되고 만들어진 이미지를 오해하여 그를 난봉꾼, 양평대군, 파락호라고 말하지만 이후 자신의 오해를 사과하면서 의왕전하의 길을 돕기로 결심을 하게 되죠.

란사는 더욱더 활동적인 여서이 되어 활동을 했었고 1908년 서른여섯이 되던 해에 박에스터와 윤정원과 함게 고종 황제의 훈장을 받기도 합니다.


책에서는 비단 란사라는  그녀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되어 그의 후원아래 일본어 통역이라는 명문아래 고종 황제의 곁에서 고종 황제를 감시를 했던 배정자 같은 여자들도 있었고,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평범한 민초들의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주셔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곳에 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것!

나는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될지니."


글을 마무리하며 잊어버린 것이 있었네요. 그녀의 이름이 정말 하란사 일까요?

그녀가 이화학당에 입학해 세례를 받을 때  선교사들은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는데 그녀에게는 낸시라는 이름을 받게됩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는 낸시를 한문식으로 고쳐서 화초 란에 역사 사를 써서 하란사라고 스스로 지었습니다. 성은 자신의 성이 아닌 남편의 성 하씨를 써서 하란사라고요. 그러나 이후 그녀의 후손들이 수년에 걸쳐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여 본명인 성을 써서 '김란사'로 바로 잡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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