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시간을 위하여
성진 지음 / 도도서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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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까지 걱정을 떠안으며 늘 긴장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 대한 걱정 대신 내 앞에 놓여 있는 일들만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 내 현실이 힘든데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오늘을 무사히 버텨야 내일이 있는 삶. 그런 삶 속에서 홀로 외로이 버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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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 대한 성진 스님의 말씀은 힘겨운 삶을 잘 버텼다며 나에게 격려를 보내주는 것만 같다. 세상을 대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기에 더 마음에 와닿았다. 10대와 20대의 고민이 다르고 40대인 지금의 고민 또한 다르다. 이 책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면 좋을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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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소신, 뚜렷한 가치관이 없이 산다면 삶이 더 힘겹게 느껴진다는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생에는 고난의 파도가 늘 있으며 고통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수용하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 이해된다.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면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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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되면서 내 삶은 급격히 달라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고 엄마의 병간호를 시작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준비 없이 달라진 삶은 숱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고통과 번뇌의 시절을 보내고 난 후 웬만한 삶의 변수들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을 하나씩 읽으며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의 무탈함에 감사할 줄 알게 된 나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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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문득 당신이 와 있는 것 같아서 - 드라마작가의 가장 사적인 기록
송정림 지음 / 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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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같은 드라마를 만나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감탄과 함께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시청자를 브라운관 앞으로 끌고 오는 그 대단한 힘의 원천을 알고 싶다. 내일은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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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드라마 작가의 이야기는 이런 내 궁금증을 충족시켜준다. 저자가 쓴 드라마 목록을 살펴보니 매일 저녁 엄마 옆에서 함께 보던 낯익은 제목의 드라마도 보인다. 그런 저자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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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드라마 작가의 삶은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대본을 한자씩 써 내려갈 것 같지만 현실은 치열하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시청률에 일희일비한다. 그 치열한 삶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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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동안 글과 함께 한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며 쓰는 행위에 대해 고민해 본다. 창작의 고통을 매일 마주하면서도 결국 쓰게 하는 건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 주고 그렇게 쓰기의 시간이 채워진다. 저자가 안정적인 삶에서 진심을 따라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을 땐 나도 말리고 싶었다. 그 힘겨운 길에 기꺼이 들어선 그녀의 용기에 마음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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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든 영화든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된다. 현장에 대한 생생한 경험은 이제 막 그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커다란 지침이 되어 줄 것이다. 시청자로서 드라마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작가의 진심과 노력이 담겨 있는 대사 한 줄에도 이제는 누군가의 시간이 겹쳐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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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
웨인 케스텐바움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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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왜일까. 굴욕이라는 단어에는 외면하고 싶으면서도 끝내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부터 당황했다. 단편적인 짧은 글들이 이어지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마구잡이로 등장했다. 굴욕은 개인적이고 신체적이며 외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어쩌면 이런 형식이 굴욕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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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굴욕적인 순간이 있었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봤다. 도통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면 아직 나는 굴욕을 느껴본 순간이 없다는 걸까. 아니면 너무나도 굴욕적이기에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린 것일까. 개인적인 경험일 테니 나를 아는 누군가에게 물어봐도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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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을 읽는 순간이 굴욕적인 순간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타인의 굴욕을 알게 되는 건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굴욕이 주로 성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불편하다.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취향을 알게 되는 순간에는 거북함을 느꼈고 엉덩이의 뾰루지 이야기에서는 그만 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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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손을 놓을 수 없었던 건 굴욕이라는 감정이 보편적인 인간적 연대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저자는 굴욕이 끔찍함과 좌절을 안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손 내밀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남에게 일부러 굴욕을 주는 일은 나 역시 삼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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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도서리뷰 #서평 #굴욕 #웨인케스텐바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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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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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색을 유지하며 부패하지 않는 기이한 시체들. 과연 소문일 뿐일까. 

교황의 명에 따라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던 스테파노는 진실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모든 증인들은 입을 다물고, 독약 제조법이 담긴 비밀의 책은 사라졌다.

비밀의 책은 어디에 숨겨져 있으며 '지롤라마'는 학대받는 여성들의 구원자였을까

아니면 그녀들을 대신한 심판자였을까.


아내를 학대한 남자들과 남편을 독살한 여자들의 승부가 짜릿하게 펼쳐진다. 무색무취의 치명적인 독 '아쿠아'는 그녀들에게는 해방의 창구였을지도 모른다. 17세기 로마를 뒤흔든 독살 스캔들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내가 받은 짧은 티저북이 끝이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여기서 끝나다니.. 빨리 전체 이야기를 읽고 싶어졌다. 고딕스릴러는 익숙지 않은 장르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이지만 시대적 배경에 따른 약자의 저항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출세를 갈망하는 젊은 판사 스테파노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제거할 수 있는 비법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지롤라마의 승부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하다. 


#티저북 #비밀의책 #안나마촐라 #인플루엔셜 #고딕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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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절사회 - 손익계산이 되어버린 인간관계,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한 탐구
이승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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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면서도 스스로 외로움을 자처한다. 관계의 피로감에 지쳐 타인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감정을 보호하려 한다.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다. 모두 지금의 내 모습이다. 직장 생활을 통해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끼고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내가 선택한 삶이다. '손절'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현실에서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손절이 해방과 치유의 언어가 되는 흐름을 경계하는 저자의 주장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유행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인간관계를 다시 바라본다. 저자의 이야기 중 가장 먼저 공감을 한 건 '무해함'에 대한 부분이다. 무해함을 추구하는 문화, 무해함을 내세우는 마케팅 등 자신의 감정적 항상성을 침범하지 않고 편하고 즐겁게만 하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을 소개한다. 


요즘 내가 즐겨 읽고 보는 콘텐츠의 대부분도 무해함이 선택의 제1 순위이다. 가급적 갈등과 시련이 없고 읽는 동안 감정적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는 새에 무해함에 길들여졌다. 책임감의 무게, 상실의 두려움 등으로 인해 현실이 아닌 세계에서라도 무탈한 삶을 바라는 마음에 그럴 것이다.  


또한 셀프케어 현상이 두드러진 이유도 공감할 수 있었다. 스펙 쌓기 위주로 자기 관리를 하던 과거와 달리 자신을 돌보는 것을 강조하는 '자기 관리', 즉 자기 돌봄 문화에 대한 두드러진 현상이 이해된다.  갑자기 가족을 돌보고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보니 나를 돌본다는 건 잊고 지내게 된다. 번아웃과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제시되는 셀프케어는 나를 위한 선물로 포장되어 외로움의 대안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타인을 자신의 정신 건강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이러한 현상의 흐름을 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저자가 보여주는 손절사회의 대부분의 현상에는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 현상이 유독 젊은 여성들에게서 두드러진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관계의 자발적 단절, 무해함을 추구하는 마음, 심리적 프로필에 대한 맹신, AI와 사주팔자 유행 등은 40대인 나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절사회의 등장은 어느 특정 세대에서 나타나기보다는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흐름이 아닐까. 결국 문제는 우리가 감당하는 외로움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도서제공 #도서리뷰 #서평 #손절사회 #이승연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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