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어딘가 블랙홀 - 감춰져 있던 존재의 ‘빛남’에 대하여
이지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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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다른 나라의 저자가 쓴 과학 도서를 먼저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깊은 경의를 표하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언어는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과학 관련 학문을 전공했지만 과학은 여전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과학 책에는 관심이 많다.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라면 더 좋다.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인을 과학 독자로 삼고 싶어 하는 저자가 있다.

그녀가 쓴 과학 에세이라니, 저절로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말한다. 자고로 글은 발로 써야 한다고.

글을 쓸 때 무엇보다 경험을 중요시하는 저자의 글쓰기 철학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전 세계를 직접 다니며 발견한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하루가 꼬박 넘게 걸리는 칠레까지 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 먼 곳까지 직접 다녀온 저자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휴양지로 유명한 하와이에 지상 최대의 망원경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사바나 초원에 가득한 풀 냄새가 사실은 알코올 냄새라는 것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7색이라 말하는 무지개가 이슬람에서는 4색이고

멕시코 원주민들은 5색이라고 한다는 점도 재미있다.

이 책에는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독특한 과학 이야기가 푸짐하게 담겨 있다.

총 6부로 나누어 여행 도중 발견한 신기한 과학 소재를 풀어 놓는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자연의 모습도 저자가 마주하면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가 된다.

여행 중 경험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여행 에세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익숙한 소재에서 벗어나 과학이라는 낯선 관점에서 여행을 기록한 이야기에 빠져들어 보자.

새로운 여행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지금 이 순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단지 숨만 쉰다 할지라도. p. 63 ​구아노 표면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홀씨들이 자리를 잡았다. 바다로 흘러든 구아노는 물고기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연이 살아났다. 자연은 내버려 두면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인간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므로.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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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내일 - 기후변화의 흔적을 따라간 한 가족의 이야기
야나 슈타인게써.옌스 슈타인게써 지음, 김희상 옮김 / 리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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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와 옌스 부부는 네 아이와 함께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를 직접 보여주기 위해

가족 여행을 떠났다. 이들은 개 썰매를 타고 그린란드를 달리고

말을 타고 아이슬란드를 거닐었으며 걸어서 알프스를 넘었으며

모로코와 남아프리카의 사막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북극의 핫스팟인 동그린란드부터 유럽의 급수탑인 알프스까지

사진 속 지구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평화롭다.

하지만 현실의 지구는 너무나도 다르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얼마 전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이상 고온 현상이 계속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북극권에 속하기 때문에 한 여름에도 서늘한 날씨를 보이던 시베리아에서

난데없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예상보다 빠른 온난화로 빙산이 녹고 산불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도 점차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걱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나부터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이 가족의 여정을 따라가며 기후 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에 의해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도 보았다.

이 책은 내게 큰 숙제를 안겨 주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위해, 미래를 살아갈 후세대를 위해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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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물건 - 웬만하면 버리지 못하는 물건 애착 라이프
모호연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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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물욕이 심할 때가 있었다. 그렇다고 비싼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작은 머리핀, 볼펜, 노트 같은 작은 물건을 끊임없이 사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출퇴근 길에 습관처럼 문구점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더 이상 헛된 소비를 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순간에는

어느새 미니멀리즘 찬양자가 되어 있었다.

반복되는 물욕과 미니멀리즘은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이런 나처럼 물건과 썸타기를 30년째 반복하는 이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끊임없이 물욕과 싸우면서도 놓지 못해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녀의 물건 애착 라이프를 읽으며 과거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의 물건 사랑은 대부분은 공감했지만 다른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빈티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히 누군가의 손을 타서가 아니다.

중고 물건에는 타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안에 담긴 사연을 이해하고 인정하기에는 내 마음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애착 이야기에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많은 물건들 중 더 친밀하고 더 사적으로 느낌을 주는

물건을 반려물건이라 부른다. 이 낯선 단어가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잘못되고 어리석고 부정적이라 여겼던 소비 행동이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기분 좋은 소비 행동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내 주변에 있는 물건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제라도 잘못된 소비 습관을 바고 잡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났다.

내가 바라보고 사들이는 물건을 보면 지금의 내 상태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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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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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책에서는 천문학의 시선으로 그림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1부에서는 태양계 행성을 중심으로 금성, 토성 등의 특징을

설명하고 이와 관련된 신화 속 신들이 등장하는 그림을 소개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명화 속에 숨겨진 천문학적 의미와 화가들의 삶을 알려준다.

미술을 전공한 저자와 천문학을 전공한 남편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우주라는 광활한 미술관 속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준다.

명화를 잘 모르더라도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은 한 편의 그림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주라는 미술관에서 저자는 도슨트 역할을 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그림을 감상하고

천문학과 연관된 의미를 살펴보며 그림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천문학을 다룬 책은 많이 접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 새롭게 느껴졌다.

오래전 조상들이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아다녔듯이 우주의 별과 행성을 다시 알게 되고

예술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에 담긴 천문학과 신화 속 이야기, 그리고 명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학문에 대한 지적 만족감을 채워준다.

과학과 예술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가 실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시기에

반짝이는 별과 밤하늘을 상상하며 낯선 세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드넓은 우주에 펼쳐진 신비로운 행성과 별, 그리고 캔버스 위에 펼쳐진 신들의 이야기.

이 모든 소재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별과 우주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얼핏 천문학과 미술은 그 연관성이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투영해 재창조하는 예술이고, 그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아온 별과 우주가 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다.

p.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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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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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정된 대기업의 간부로 아내와 딸들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조르주 제르포.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알 수 없는 우울함으로 가득했다.


그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웨스트코스트 재즈를 들으며 파리 외곽 순환도로를 지나고 있을 때


처참하게 부서진 차를 발견하게 된다. 그 옆에는 피를 흘리는 한 남자가 있었고


조르주는 그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다주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조르주는 가족과 함께 해변으로 휴가를 떠났다.


평화로운 일상도 잠시,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 도중 낯선 이들이 조르주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갑자기 무차별로 조르주에게 폭력을 가하며 그의 머리를 바닷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는 물속에서 발버둥 치며 가까스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청부업자들은 사라졌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 조르주는 가족에게는 말도 없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 근처에는 바다에서 마주친 청부업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친 사람을 병원으로 데려다준 작은 선행이 한 남자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피 튀기는 현실로 이끌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청부업자들은 마치 덤앤더머처럼 어리숙해 보인다. 이들에게 조르주를 죽이라 


지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평범한 남자를 죽이라 명했을까. 


이들이 감추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계속되는 질문은 조르주의 자취를 따라 하나씩 풀리게 된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과 빠르고 사실적인 사건 전개는


거칠고 폭력적이며 고독한 인간의 본성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결말에 이르렀을 때 어쩌면 이 모든 사건이 조르주의 망상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해 봤다.


살기 위해서라지만 사람을 죽이는 조르주는 지독하게 냉정해 보였다.


과연 평범한 중년 남성이 이런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가능할까.


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폭력성과 잔혹함이 망상으로 펼쳐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빗나갔지만 이 독특하고 세련된 범죄 소설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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