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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제목만큼이나 유쾌 발랄한 감동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단정한 검은 단발머리에 대단한 주량을 가진 귀여운 서클 후배 아가씨를 향한
선배 남학생의 짝사랑은 봄의 밤거리, 여름의 헌책 시장, 가을의 대학 축제, 겨울날 꿈속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그와 그녀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만들며 신비로운 세계로 이끈다.
각 이야기에는 공중부양하는 대학생, 애주가 노인, 수수께끼 남자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상황은 자꾸만 웃음이 나게 만든다.
짝사랑하는 후배 아가씨를 향한 주인공 '나'의 여정은 힘겹기만 하다.
바지와 속옷을 빼앗기기도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단잉어에 맞기도 하는 등
수난의 연속이다. 하지만 어수룩하지만 진심이 담긴 주인공의 노력에 자꾸만 응원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는 과정은
괴상망측한 등장인물들이 뿜어내는 저마다의 매력과 함께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늘에서 떨어진 잉어에 맞은 선배가 무사한 것을 지켜보고 커다란 전집을 든 선배와 함께
저녁노을을 바라보기도 하고 편리주의자가 되어 선배와 함께 연극 무대에 서고
감기로 생전 개지 않은 이부자리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선배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를
볼 때면 짝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로 짝사랑이라는 설정을 이토록 즐겁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망상의 세계는 긴 장마로 몸도 마음도 눅눅한
현실에서 벗어나 청량하고 보송보송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어디선가 "아, 선배, 또 만났네요!"라고 외치는 그녀의 귀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