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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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 협회에서 올해 크리스마스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양 사나이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데도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 사나이에 대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양 박사님을 찾아갔더니

양 사나이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야만 한다고 말했고

양 사나이는 크리스마스 곡을 완성하기 위해 저주를 풀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양 사나이가 저주에 걸린 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성 양 축제일에

구멍 뚫린 도넛을 먹었기 때문이라는데. 이 황당한 이유를 그대로 믿은 양 사나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난다.

저주를 풀기 위해 양 사나이는 도시락으로 준비한 구멍 뚫리지 않은 도넛을 나눠 먹기도 하고

더러운 집안 청소를 대신하기도 하며 고군분투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양 사나이의 모험을 함께 하면서

어떤 특이한 캐릭터를 만나고 황당한 사건에 휘말릴지 기대가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짧은 단편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어우러진 이 책이야말로

올 크리스마스 선물로 추천하고 싶다.

순진한 양 사나이를 모험에 끌어들인 양 박사님이 다소 짓궂긴 하지만

연말에 동화 같은 따뜻한 단편을 읽으며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도 양 사나이의 세계처럼 엉뚱하지만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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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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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낯선 소설이다. 책 전체에 깔려있는 건 폭력과 파멸이다.

한낮 도심의 스타벅스에서 나는 성연우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의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독립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인 나는

그와 4년 넘게 연인 관계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성연우는 나의 무책임과 이기심에

괴로웠다고 울부짖는 그는 이별을 종용한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결백하다는 태도를 취하며 가여운 여자친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이런 태도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세계관을 지내고 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작은 사소한 것들로 시작하여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

오로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고 행동할 뿐이다.

인간의 약한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내가 살아갈 방법을 찾을 뿐이다.

내가 가진 타이틀도 타인을 덫에 걸리게 하는데 훌륭한 도구가 된다.

그 타이틀을 이용해 박세영이라는 어린 제자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며

서서히 불행한 삶으로 떠밀고 있다. 곧 파멸에 이르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

책에 깊숙하게 들어찬 불행의 기운 때문이었을까. 한 권을 다 읽기가 힘들었다.

화자인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나와는 반대의 성향을 지닌 '나'를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파멸을 추구하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단지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박힌 악의 근원을 뿌리뽑고 싶었다.

비록 이 세상이 동화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공허하지만은 않다고 항변하고 싶다.

이 세계에는 선도 악도 교훈도 없이 텅 빈 제로라는 주장에 반박하고 싶다.

당장 이 우울함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은 암흑이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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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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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플라톤이 저술한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과

에로스를 예찬하는 향연의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하여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전하고 있다.

각 장의 맨 앞에는 등장 인물을 간략히 소개하여 이후 전개되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건하게 지키며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된 소크라테스.

그가 남긴 철학은 수세기를 지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는 불경죄와 청년들을 부패시킨 죄로 재판을 받은 소크라테스의

1차 변론과 유지 평결 이후 2차 변론, 그리고 사형 선고 후의 3차 변론으로 전개된다.

크리톤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은 후 탈옥을 권하는 친쿠 크리톤에게 탈옥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으며,

파이돈은 생의 마지막 순간 영혼 불멸을 주제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저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플라톤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가진 의미는 크다고 생각한다.

질문과 대화로 이루어진 형식은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참된 진리란 무엇인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이 한 발짝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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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내려오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
김동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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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김동영 작가의 신작 <천국이 내려오다>는 여행지에서 그가 마주한 천국을 전해준다.

20대 어느 날, 그의 책을 읽고 여행 병에 걸렸었다.

국경을 넘어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학업을 핑계로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동경하던 미국 대륙으로 떠났다.

첫 종착지는 샌프란시스코 공항. 목적지인 샌디에이고로 향하는 도중 멈췄던 짧았던 여정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내 삶은 달라졌다.

늘 자유로운 삶을 꿈꿨지만 겁이 많았던 어린 나는 그날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첫 관문을 통과한 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스스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언제나 김동영 작가의 책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번에 또 어떤 자극을 내게 전해줄지 기대하면서.

이 책은 21개 나라, 31개 도시에서 그가 마주한 천국을 담고 있다.

여행 작가로 세계 곳곳을 다녔던 그의 경험은 내게 또 어떤 꿈을 남겨줄까.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내게 온 책을 마주하는 순간, 설렘은 숙연함으로 바뀌었다.

그가 만난 첫 천국은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터였다.

생명이 끝나는 곳, 삶이 사라지는 곳,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얻는 곳.

그곳에서 생선 작가는 천국을 만났다.

나는 그걸 보고 싶었다.

실제로 인간이 불로 태워지고 조각나 결국 분자가 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사는 이 세계의 모든 일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p.12

이방인이 느끼는 순간의 감정은 분명 충동적일지도 모른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낯선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주는 새로운 감각에 천국이라 느낄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벗어난 작은 일탈이 주는 행복감.

잠시나마 그가 떠난 여행을 함께 따라가며 그 기분을 느꼈다.

그를 따라 유럽의 낮은 담장에 핀 장미를 보았고, 후미진 골목에서 고양이를 만났으며,

모래바람이 부는 드넓은 평원을 거닐었다.

긴 여행에 지쳤을 그가 이제는 제대로 된 휴식을 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마주한 천국을 읽으며 내가 있는 이곳은 어떤지 생각해 보았다.

5개월 전에 같은 질문을 했더라면 망설임 없이 지옥에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천국보다 더 천국 같은 곳에 살고 있다. 적어도 내 마음은 그렇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내가 여행을 떠날 차례다. 내가 만날 천국은 어디가 될지 기대된다.

언제 떠날지, 어디로 떠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내가 만난 천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수도 있고 하얀 물보라는 일으키며 달려오는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내게 올 그 순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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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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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늘 도시 밖에서의 삶을 동경한다.

집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집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으며

마음 푸근한 이웃이 어우러지는 조용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나는 도시 밖에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잠깐의 일탈은 가능할지라도 삶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안다.

그래서 이제는 도시를 알아야겠다. 차갑고 복잡한 이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니깐.

도시 건축가 김진애가 전하는 도시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수많은 욕망과 감정이 가득 담긴 이 공간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넘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도시를 12가지 콘셉트로 나눠 설명한다.

도시가 가진 공간적 의미,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넘어

새로운 관점에서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도시 이야기엔 끝이 없다. 권력이 우당탕탕 만들어내는 이야기, 갖은 욕망이 빚어내는 부질없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얽히며 벌이는 온갖 갈등의 이야기,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삶의 세세한 무늬를 그려가는 이야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인간관계의 선을 잇는 이야기,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는 이야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도시 안에 녹아 있다.

p.7~8

도시 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

정부 기관과 같은 권력 공간에는 명예와 권위에 대한 욕심, 자긍심,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에서는 편안함,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다채로운 도시만의 색을 만들어 낸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연하다 여겼던 도시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문제점을 해결하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전환하는 밑바탕을 만들어 준다.

앞으로도 도시 밖에서의 삶을 꿈꿀 테지만 나는 이 도시에서 어떤 이야기를 채워 넣을 수 있을까.

그 이야기가 만들어 갈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이제는 버스 정류장이나 공원에 있는 벤치를 볼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를 것만 같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쳐간 작은 것 하나에서도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공간이 사유화되고 상업화되는 이 시대에 그나마 앉을 데 하나로 '초대받은 느낌'을 줄 수 있다면 도시가 주는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초대받은 느낌'보다도 더 좋은 게 '초대하는 느낌'이다. 작은 계단, 작은 단과 벽 하나, 소박한 벤치 하나, 소박한 의자 하나로 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메시지를 준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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