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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예진과 도원, 재인과 호계. 다시 도원과 재인, 예진과 호계.
네 남녀가 보여주는 사랑의 빛깔을 따라가며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소설을 읽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를 할 때 매 순간 달달한 건 아니다.
다툼과 오해가 있고 눈물과 슬픔이 더해지면서 두 사람의 감정은 더욱 풍부해지게 된다.
읽으면서 유독 재인이라는 인물에게 몰입하게 되었다.
상처와 후회를 견디며 묵묵히 살아가는 그녀의 처지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의 사랑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그녀의 미련함에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나는 그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만난 인연이 사랑이 되기에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너무나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인연과 우연이 반복되면서 그들의 감정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서로를 향해 꼬여버린 네 남녀의 마음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시 시작된 사랑은
평범한 일상의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한 번 어른이 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까마득한 과거의 일들이 문득 떠올랐다.
한 번의 오랜 짝사랑, 그리고 두 번의 연애.
지독한 짝사랑의 상대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변했지만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로
서로의 안부조차 묻기 조심스러운 사이로 변해 버렸다.
나로 인해 그가 곤란해질까 문자 하나 보내기 어려워졌지만
스무 살의 풋풋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늘 그가 함께였다.
이후 두 번의 연애는 내가 시작했고 내가 끝을 냈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그 순간들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죽을 만큼 아프지도, 죽을 만큼 슬프지도, 죽을 만큼 행복한 순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사랑의 빛깔은 어떤 색인지 궁금하다.
이 계절이 지나면 알 수 있을까. 오랜만에 꺼내 놓은 기억의 한 조각을
오래도록 음미하려 한다.
p. 13
너무 날카롭고 아름다운 건 결국 속성을 뒤바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걸까 답 없는 상념만 남았다. 그 뒤 예진은 프리즘을 두 번 다시 가지고 놀지 않았다.
p. 89
용케들 이런 감정으로, 이런 표정들을 짓고 사는구나. 새삼스러우면서도 조금 쓸쓸했다. 자신에게서 멀어진 어떤 것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