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 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
어맨다 레덕 지음, 김소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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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 속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 되면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 거라 믿었다.

인생 초반에 만난 세상은 판타지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현실은 동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동화와 장애를 연결 지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주인공은 언제나 완벽했고 설령 장애가 있다 해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장애가 사라진다.

완벽한 비장애인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야

동화는 끝이 난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동화가 만들어 놓은 세계관에 빠져 장애를 나쁜 것,

없애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건 아닐까.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행복한 결말의 동화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동화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고슴도치 한스>, <손을 잃은 아가씨> 등 잔혹 동화처럼 느껴지는 낯선 동화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다리를 절면서 마주하게 된 세상과

학창 시절의 경험, 그리고 여러 장애인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주며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비장애 중심주의 세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준다. 어쩌면 내가 자란 현실에서

나도 모르는 새 비장애인이라는 우월성에 취해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온갖 노력으로 극복한

장애인을 추켜세우며 감동을 강요하는 '감동 포르노'에 중독되어 있던 건 아닌지

냉정하게 돌이켜 본다. 또한 행복한 결말을 위해 장애를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야 좋을지 답을 찾고 싶어졌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장애는 불편한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지워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불편한 것이 있다면 서로 돕고 이해해야 한다.

나와 다른 삶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오랜 시간 갇혀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을 하나씩 깨트려 보려 한다.

우리가 장애가 있는 몸은 가치가 적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걸을 수 없던 사람이 결국에는 걷게 되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마다, 예쁘기 때문에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 공주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마다, 비장애인만의 행복한 결말을 받아들일 때마다 우리는 덤불 가시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가시를 잘라내고 새로운 것이 자랄 수 있게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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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졌어 - 평범한 직장인에서 산 덕후가 된 등산 러버의 산행 에세이
산뉘하이Kit 지음, 이지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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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산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만 같다. 마음이 답답할 땐 도시 곳곳을 달리던

평범한 직장인에서 등산 덕후가 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산의 매력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상실감을 잊기 위해 시작한 등산은 새벽 산행, 야간 산행, 산속 캠핑에

트레킹까지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산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산을 오르내리며 마음가짐이 가장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산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의 고백을 들으며 왜 내가 산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10여 년 전 연구실 전체가 도봉산 등반을 했던 적이 있었다.

연례 행사였는지 그 해에만 간 건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교수님 보폭에 맞춰

시작된 등산은 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근성 없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내 속도는 무시한 채 창백한 얼굴로 정상에 올랐다. 절경을 감상할 틈도 없이

다음 일정을 위해 급하게 산을 내려왔고 며칠 동안 내 몸은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날 이후로 내게 산과 바다 중 하나를 고르라면 숨도 쉬지 않고 바다를 선택했다.

산을 올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산행에서 가장 힘든 건 오래 걷는 게 아니라 자기 속도가 아닌 다른 속도로 걷는 일이다.

p. 75

작은 발전에도 만족할 수 있게 된 자신을 마주했다. 그녀의 고백에 조금씩 산에 대한

마음이 열리는 듯하다. 나도 나를 더 좋아하고 싶으니깐. 스스로에게 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싶으니깐.

산에서 마주한 사람들, 그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글과 사진으로 담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편견과 트라우마를 깨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아직은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시기지만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등산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 내게 작은 용기의 씨앗을 전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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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고스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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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공장, 이번에는 농업용 기계에 도전한다.

작지만 탄탄한 회사 쓰쿠다제작소가 우주로켓용 밸브, 심장 인공판막에 이어

이번에는 농업용 트랜스미션에 주목하게 된다.

자신들의 강점인 밸브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이들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우주로켓 밸브를 납품하던 데이코쿠중공업이 실적 악화로 우주 로켓 사업을

철수하려 하고 소형엔진 사업도 저가의 다른 기업에게 거래를 빼앗기게 되자

쓰쿠다제작소는 또 다른 판로를 찾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건강 악화로 잠시 농사일을 돕고 있던 경리부장 도노무라의 본가를

찾은 쓰쿠다 사장은 소형 엔진을 단 트랙터를 직접 운행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

자신들이 가진 엔진 기술에 더하여 고성능 트랜스미션을 제작하는 것.

쓰쿠다제작소는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주를 대상으로 했던 쓰쿠다제작소는 이제 땅으로 내려와 세상에 도전장을 던졌다.

트랜스미션에는 이제 막 첫발을 내민 쓰쿠다 제작소는 자신들의 강점인 밸브 기술을 먼저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벤처기업인 '기어 고스트'에게 트랜스미션 밸브 경쟁입찰을

요청하며 제작에 돌입한다.

역시나 비즈니스 세상은 전쟁터였다. 벤처 기업을 먹어 삼키려는 대기업의 치사한 계략과

부패한 법조인의 파렴치한 행태, 꼼수를 부린 특허 소송까지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외부의 압력과 어려움에도 쓰쿠다 사장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한다.

비록 그 선택의 끝이 달콤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의 선택을 전적으로 응원한다.

작가는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기업 비즈니스 세계를 보여준다.

과연 이런 경영 마인드를 가진 사장이 실제로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세상 어딘가에 쓰쿠다 제작소와 같은 기술과 뚝심으로 뭉친 회사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기술력 중심의 우량 기업이 쓰쿠다제작소가 펼쳐낼

기적 같은 성공이 기다려진다. 역시나 통쾌한 한방을 날려준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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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지금, 너에게 간다
박성진 / 북닻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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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소방관 '수일'과 그의 연인 '애리'를 중심으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과거나 현재나 변하지 않은 소방관들의 열악한 환경과

이기적인 인간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불길이 타오르고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은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투를 벌인다.

첫 출동에 생긴 트라우마로 힘겨워하던 수일은 어느 날 화재가 난 지하철에 갇혀 있다는

애리의 전화를 받는다. 과거 지키지 못했던 약속으로 애리를 한번 떠나보냈던 수일은

다시 만난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간다.

기다림에 지쳐 이별을 해야 했던 애리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가는 길에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자신의 분노를 방화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한 인간의 이기심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왔다. 그의 사정을 듣고 나면 한순간 동정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는 결코 이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지하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생겨난 작은 불씨는 한순간에 열차 전체로 퍼졌다.

더구나 열차 안 내장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값싼 가연성 물질로 이루어졌다.

도덕심마저 내팽개친 업체의 이기심과 시민의 안전보다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몰지각한 시장과 비서진들의 행태에서 보이는 추악한 인간의 민낯에 화가 난다.

이에 반해 연기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도우며 위험을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뭉클함이 느껴진다. 이 순간 소방대원들은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살리기 위해 이들은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사명감에 그들의 노력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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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만큼만 욕심내는 삶 - 적당히 탐하고 오늘에 만족하는
요로 다케시 지음, 이지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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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사태평한 열여덟 살 고양이 '마루'와 여든셋의 고양이 집사가 전하는

유쾌한 삶의 태도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하루하루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숨이 차오르게 달려가고 있던 걸까.

고양이의 시선으로 삶에 대하는 현명한 지혜를 전해주는 노학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가진 삶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과한 욕심을 부리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에 나를 억지로 맞추기 위해

하루하루 몸부림치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보았다.

말로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든지,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게 목표라고 했지만

실제로 제대로 지키며 살았는지 잠시나마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이 세상은 쓸모없는 것으로 가득하다는 노학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동안 그 쓸모없는 것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을까.

최근 들어 힘들일 이 계속되고 있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큰일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도 잊을 정도다.

이럴수록 정신을 더욱 바짝 차리라고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며 이 책을 읽었다.

아등바등 버티며 살고 있는 내게 고생했다고 위로해 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더 이상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상황에도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아직은 내가 버틸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이기에

내가 가질 수 없는 바람은 다 날려버렸다. 바보같이 울지 않고 힘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자기만의 기준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지혜로운 노학자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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