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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온전한 한 사람의 몫을 하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점점 희미해지는 존재감으로 유령처럼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 모습을 투영해 본다. 나는 어떤 존재일까. 어쩌면 나도 유령이 아닐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나이, 성별, 학력, 경력 무관이라는 채용 조건에 무작정 이력서를 내고
약국에 취직한다. 주인공 나는 국장이라 불리는 김 약사와 조 부장과 함께
약국에서의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주인공에게서는 상실의 기운이 느껴진다.
마음의 결핍일 수도 있고 물질적 결핍일 수도 있다.
다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상실의 기운이 불편할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결핍을 채워줘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강박감이 생겨난다.
이 책은 아직 '1'이 되지 못한 '0'에 가까운 존재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1'이 되면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결론은 누가 내린 것일까.
정말 1이 되면 완전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모두가 1이 된다면 그래서 모두가 뚜렷한 존재감을 내보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풀리지 않은 의문을 뒤로한 채 다시 유령의 삶이 집중해 본다.
주인공은 0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의지도 의미도 없던 약국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면접을 보기 시작하고
주말에는 집회에 참석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렇게 0의 삶에서 하나둘씩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희미한 점도 점점이 모이면 뚜렷한 점으로 보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치열했던 지난 삶에 대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