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작가 폴 오스터.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소설 초반부터 작가의 문장이 자꾸만 시선을 끈다. 아내 애나를 잃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바움가트너는 앙헬 플로레스의 손가락이 절단된 사건과 까맣게 그을린 냄비를 보며 문득 아내를 잃은 고통을 다시 떠올린다. 지독한 상실감은 환지통으로 나타나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 같은 시간을 보낸다. 재능 있고 똑똑한 빼어난 문장가인 애나의 미발표 원고와 그가 쓰고 있는 글이 자연스럽게 얽히면서 비로고 과거를 두려움 없이 볼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진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상실을 애도하고 어떤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여전히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각자의 주어진 삶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작가가 투병 중에 쓴 이 소설은 상실과 애도, 기억과 현재,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여긴다. 남겨진 이들의 기억과 추억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상실의 아픔을 달래주는 것이다. 바움가트너가 현재를 살아가기로 한순간 작가는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삶은 연결을 통해 이어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회복된다. 작가가 보여준 연결의 의미를 자꾸만 곱씹어 보게 된다. 나 스스로가 고립된 삶을 자처하고 있어서 일까. 바움가트너가 주디스를 만나 청혼을 결심하고 애나의 글을 연구하고 싶다는 비어트릭스를 만나면서 보여준 관계의 회복과 연결이 자꾸만 떠오른다. 상실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꾸만 나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 같다. 삶이 끝날지라도 사랑은 남아있다. 존재하지 않더라도 기억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상실을 두려워 말라고 위로와 용기를 건네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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