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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위하여 ㅣ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평점 :
근데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는 기획 '소설, 잇다'. 네 번째로 출간된 작품은 김말봉과 박솔뫼의 소설이다. 1930년 식민지 시대에 대중소설가임을 당당히 선언한 작가 김말봉의 소설은 다소 신선하면서도 파격적이다. 근대 소설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이야.
이 책에는 김말봉의 대표 단편이 실려 있는데, 문학은 대중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녀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다. 기생이었던 순애가 사회주의 운동가로 바뀌게 된 <망명녀>, 불륜을 저지른 남편의 굴욕을 잘 드러낸 <고행>, 한 통의 편지로 남편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난 <편지>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고행>은 벌거벗은 몸으로 벽장 안에 갇혀 수치와 굴욕을 겪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며 의도치 않은 통쾌한 복수를 대신해 준다. "누가 뭐래도 소설은 재밌어야 하고 널리 읽혀 독자들에게 선의의 감동을 줘야 한다"라는 작가의 의중이 제대로 반영된 소설이라 하겠다.
이어지는 박솔뫼의 소설 <기도를 위하여>는 <망명녀>의 뒷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망명녀>의 순애와 정섭이 옥중 혼례를 치르는 장면부터 시작되는데, 옥고로 숨을 거둔 순애의 영혼이 정섭과 윤숙과 함께 한다. 이후 윤숙은 계몽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나고 순애의 삶을 떠올리며 그녀를 위한 기도를 시작한다. 윤숙이 올리는 기도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이면서 존재하는 것을 위한 기도였다.
김말봉의 소설은 대중적이며 통속적인 삶을 보여주면서 여성의 지위 신장과 인권 보호라는 소신을 굳건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박솔뫼의 소설과 에세이는 김말봉이 겪었던 것들과 겪었을지 모를 가능성을 현재에 와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간 두 작가의 글을 통해 '지금'을 바라보고 어디선가 스쳐 지나갔을 인연을 떠올린다.
'소설, 잇다' 기획이 좋은 건 좋은 소설과 작가를 또 한 명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낯선 근대 소설을 읽는 재미가 조금씩 쌓이는 것만 같다. 또 어떤 작가를 알게 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