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71쪽
무엇이 성폭력인가 하는 성폭력 정의(定義)의 배제와 포함의 원리를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반(反)성폭력 담론이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계 가족 보호라는 남성 공동체의 이해에 더 기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9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 여성(성 전환 여성)을 남성 3명이 길거리에서 승용차로 납치하여 집단 강간한 사건에 대해, “피해자를 여성이라고 볼 수 없고, 생식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제1심과 제2심 판결에 이어 무죄를 판결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의 정의뿐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의 시각에 부합하는 ‘진짜’ 여성은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현행 성폭력 특별법, 가정폭력 방지법은 여성운동의 성과물이긴 하지만,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여성 자신의 것이라는 인권의 시각에서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가족주의의 규범과 통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성폭력 특별법에서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라 ‘임신 가능한 부녀자 보호’라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남성 간 성폭력, 성 전환자에 대한 강간, 여성 성기에 이물질 삽입 등은 강간이 아니라 추행죄가 적용되어 강간보다 형량이 낮다.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 전환자든, 성기 삽입이든 이물질 삽입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인권 침해이고 성폭력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임신 가능한 부녀자’만을 ‘여성’으로 볼 때, 성폭력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니라 남성 각자가 소유한 ‘임신 가능한 부녀’에 대한 침해죄―‘사유재산권’ 침해―가 된다. 이러한 문화적 규범 때문에 성폭력 특별법이 있어도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강간은 처벌하기 어렵다. 자기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다른 남성의 ‘가임 가능한 부녀자’가 아니므로 남성 연대의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171-172쪽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범죄나 인권 침해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명예나 도덕과 관련한 문제로 인식하게 되면, 여성은 피해 사실에 분노하기보다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피해 여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힌’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당한 폭력을 거론하는 여성은 공동체 내부의 치부를 폭로한 ‘배신자’로 간주된다. 성폭력 피해를 문제화하려는 여성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자 앞길 망친 여자’라는 비난이다. 폭력 피해 여성들도 자신의 고통과 피해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가족이나 직장, 조직, 학교 등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명예를 먼저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피해 여성의 고통보다 가해 남성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178쪽
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 이제까지 양성 평등은 ……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은 ‘공적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그만큼 ‘사적 영역’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179쪽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두 발로 걷는 비장애인에게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기 경쟁을 하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207쪽
성판매 여성은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다. 성판매 여성은 인간의 성 활동이 남성 성기 중심 섹스로 환원되고, 상업화된 성과 이성애 가족 제도 내부의 성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범주다. 사회는 “‘사창가’라는 집단적 공간에서 평생 전업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성판매자로 생각하고, 여성주의 진영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판매 여성을, ‘그들도 우리처럼’,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유목적 주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11쪽
한국의 성매매는 인신매매, 여성의 가족 부양, 소비 자본의 욕망, 입시 제도, 강력한 가족주의, 학연, 가족 내 성폭력, 전무하다시피 한 사회복지 등으로 인한 남성과 여성, 여성과 여성의 계급 차이가 성판매 여성의 ‘선택’으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227쪽
‘윤락’은 이 문제를 사회적 · 정치적 사안이 아닌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로 보아 낙인을 전제하는 성 보수주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매춘’은 사는 사람, 수요자인 남성이 가시화되지 않기에, ‘매매춘’은 성(性)을 봄(春)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비유하여,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생물학적 본능’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그러나 현재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성매매 여성’이라는 용어도 문제적이다. 여성은 성을 매매(賣買)하지 않는다. ‘팔기만 한다’. 여성이 남성의 성을 사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이 여성의 성을 구매해 온 역사와 규모에 비할 수는 없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말은, 가정폭력, 배우자폭력, 부부폭력이란 용어가 아내폭력의 성별 권력 관계를 은폐하는 중립적 용어이듯이, 성매매의 명백한 남성 권력을 안 보이게 한다.
여성은 성을 사는 집단이 아니라 주로 파는 위치에 있으므로,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성판매 여성’ 혹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는 말은 더욱 논쟁적이다. 이 용어에 성매매에 대한 모든 논쟁이 함축되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29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파는 것은 몸이지 성이 아니다. 그러나 여성의 몸은 그 자체로 성으로 간주되며, 여성의 성은 팔거나, 팔리는 상품이 된다. 남성 노동자가 파는 것은 성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남성 노동자는 노동자일 뿐 팔리는 노예가 아니다.


252쪽
군사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할 적, 지키는 주체, 보호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보호자 남성, 피보호자 여성’이라는 전형적 성역할은, 이 세 가지 요소의 모델이다. 군대의 존재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남성이 군대에 복무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남성다움을 검증할 수 없다고 느끼도록 해야 하고, 그들의 경험은 여성에 대한 지배와 보호, 여성들의 고마움에 의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적과 피보호자를 상정하는 군대가 존재하는 이상, 여성이 군 복무에 남성과 평등하게 참여한다고 해서 시민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성별에 상관없이 전 국민 징병제인 이스라엘이나 북한의 경우를 보면, 군대 자체가 성별화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병역을 이행하려면 여성성을 부정해야 하고, 배제되면 2등 국민이 되는 이른바 ‘같음과 다름의 딜레마’가 반복된다. 평등의 기준 자체가 남성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때 평등은 공정함(fairness)이라는 정의(justice)가 아니라, 남성과의 같음(sameness)을 강요하는 남성 동일화(identification)이다. 때문에 여성의 ‘평등한’ 군대 참여는, 역사상 어느 국민국가에서도 채택된 적이 없고, 어떤 여성해방 이론에서도 주장된 일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