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년대에 사내라는 게 그리도 부끄러웠다

동일방직 쪼깐이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걔들에게 똥을 퍼먹이는 것이 사내들이었거든

회사마다 여자들은 정의를 외치는데

사내라는 것들은 기업주들의 앞잡이였거든

드디어 사내들도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걸 보며

가까스로 사내라는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있었는데

나는 오늘 네 사진을 보면서

사내라는 게 또 부끄러워지는구나

이 얼굴에 침을 뱉어라

- 문익환, <인숙아> 전문, 1989. 6. 9.

사내라는 게 부끄럽다는 건,
그래도 남자가 옳은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
앞장서야 할 남자가 뒤처진 게 부끄럽다는 의미 아닐까.
어쨌든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 하나.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흔히 남성이 절대 다수인 대기업 노조를 떠올리지만,
6.25 이후 남한에서 노동운동은 70년대에 여성이 절대 다수인 중소 규모 기업에서 일어났다.
70년대 노동운동은 여성의 것이었다. 이 시대 남성이 한 일은 주로 구사대.
여성노동자들을 때리고 끌어내고 모욕하는 짓.

고 문익환 목사의 시를 어제 처음 보았다.
사계절에서 나온 문익환 전집 중에서 시집 제2권인데,
목사님은 생전에 마음 쓰는 일 하나하나를 다 시로 남기셨나 보다.
시를 평소 즐기지 않고,
또 격하고 선동적이라 거리 집회에서 울려 퍼질 법한 시는 더욱 좋아하지 않지만,
이 시집을 쭉 넘기는 동안 괜히 눈물이 났다.

그래서 계훈제 선생은 꾸부정한 몸으로
당신 앞에서 나는 가짜구나고
일생일대의 고백을 했던 거군요
물론 이 문익환이도 당신 앞에서 죄인일밖에
그러자 당신이 내 속에서 속삭이는군요
뭘 하고 있어
뭘 하고 있어
그렇군요 우리의 입을 아예 꿰매 버리는 게 좋겠군요
당신 앞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 문익환, <나의 조국 나의 사랑> 중에서, 시집 《두 하늘 한 하늘》


한 노동자의 뒤통수를 함마처럼 내려친
졸리움에 함마처럼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함마처럼 뒤통수를 내려치는 졸리움
상상할 수 있니

- 문익환, <성근아> 중에서, 1989. 7. 13. 한겨레 신문 최대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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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8-26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에 갔다가, 문목사님께서 당신의 시를
직접 낭송해주시는 걸 들은 적 있어요. 눈물이 났었지요.
시 낭송이라는 것이 이런 힘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문목사님 성성한 백발을 보면서 마음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고
문목사님 읽어주시는 음조가 너무 좋아서 가슴이 시큰하면서도 포근해졌었지요.

가랑비 2006-08-28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직접 낭송을 들으셨군요. 낭송 듣기보다는 종이에 인쇄된 것 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시는 분명 낭송되었을 때 특별하게 따라오는 것이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