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깜짝태그 : []








 

‘화려한 휴가’라는 표현이

그 날의 광주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1980년 5월 18일, 그 날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

 

광주 5·18은 나에게는 언제나

제주 4·3과 함께 연상되는 사건이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무차별 학살.

정치나 권력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매도되어 버리는

이 나라의 대표 불온색.

피를 상징하는 붉은 계열의 것들은 언제나 불편하다.

 

역사의 광풍 속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기구한 것인지, 나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불행(?)하지 않은 시대에 평화롭게 자라난

내 세대의 사람들에게 있어

5·18이나 4·3은

그저 숫자로 기억되는 지나간 역사일 뿐이다.

아무리 지금에 와서 모두가 다함께

명예회복을 진상규명을 외친다 하더라도,

‘나’라는 주체가 빠진 그저 ‘그들’의 이야기로 회자된다.

그래서 어쩌면 더 냉정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어쩌면 더

영화의 멜로로 그들의 이야기를 덮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 전개가 답답하기만 했다.

영화관 곳곳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자극적인 장면들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내 눈은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두드려 맞고,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건 영화잖아라는 안도를 만들어냈다.

역사를 영화로 소설로 어떤 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이 영화에 공감하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우리가 외면한 채 지나온 역사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 된다고 믿는다.

 

그 이야기하기라는 행위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후세들에게 당시의 사건들을

그저 역사 속에서 흔히 일어나는 학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다시 그런 일이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야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외친

“사랑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의 형제자매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기억해 주세요.”처럼

그들을 기억하는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만들어 나갈 것인가가 

 

결정지어질 것이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해 많은 이들이 '연애시대'에 빠져 있을 때,

난 다른 세계에서 다른 것에 열광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열광이라는 말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나다.

 

올해 유난히 많은 것들이 변하고,

스스로 많은 장애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음을 원망했다.

모든 것이 시간 탓이고,

모든 것은 시간 때문에 벌어진 것이며,

시간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은 평화로워 질 것이라고 말이다.

 

과연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나'라는 존재를

외면한

시간 속에 '나'는 없었다는

그 '사실'을

인정할 '나'는 이미

너무 먼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그 '달라짐'을 달리 볼 수 있었던 것은

'연애시대'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가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 캐릭터들 속에서, 그 상황들 속에서

나는 상상하고, 이입하고,

열애에 빠져들었다.

 



뒤늦게 알게 된 이 드라마를 보느라

밤을 새면서, 나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연애시대와의 열애가

나라는 인간을 다시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면 과장일까.

 

모든 사랑은 지나가고, 아프고, 행복하지만,

우리는 매번 사랑에 빠진다.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늘어지는 듯 하면서도

반복해 들을 수록 빠져드는 음악을 구사하는

음악가들을 나는 좋아한다.

 

ego-wrappin,

kings of convenience,

myrra,

eva cassidy,

damien rice,

sean lennon etc.

 

ego-wrappin의 음악 중 특히 좋아했던 곡은

"Bird"라는 곡이었다.

 

앨범을 구할 수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아무리 찾아도

검색되지 않았던 그 곡을

단골술집 사장 언니가 다운 받아 놓은 후,

그 곳에서 술을 마실 때마다,

술집에 들어서자 마자,

술을 마시고 나서 정리하고 나갈 때는

꼭 그 곡을 틀어달라고,

그 곡만 다 들으면 가겠다고,

참 많이도 사람들을 괴롭혀댔다.

 

"Bird"를 부르는 여자 보컬의 목소리는

정말 너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따듯한 위로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의 현실은 네가 겪어 볼 만한 강도의 아픔이라고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곡에서 위로를 받는다.

 

음악이 인간의 삶에 허용하는 감정은 과연 어느만큼일까.

우리에게 음악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행복과 위로를 놓쳤을까를 생각하면

가끔씩은 아찔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운명은 우연의 뒷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장을 어디선가 읽고 기억해 두었다.


그 수많은 우연의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운명"이라는 것은

알다시피 하나가 아닌 복수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운명"이라는 단어를

복수가 아닌 단수로 받아들이는 것만 같다.

 

그저 하나, 단 하나의 운명.

 

그렇게 한계를 지어놓고 희소성을 만들어놓아야

"운명"의 운명이 대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우연히 열어제낀

우연의 뒷문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운명일지도

어쩌면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수없이 얽혀 있는

우리의 운명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금 내 삶의 형태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는가,

그 의심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

결국 찾아냈는가.

 

정미경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의문이 들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인 그녀의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잘 씌어진 소설이었으나 쉽게 읽히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내 일상의 순간순간을 되짚게 만드는

그 무심한 칼날을 가진 말투에,

결코 무심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거짓말은 아름답다. 자신을, 혹은 상대를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구나 거짓말을 하니까.

다만 끝까지 지켜지지 못한 거짓말만이

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자신을, 상대방을 깊이 찌른다." (190쪽)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재이 역시, 그에게 일상의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배신감 같은 걸 느낄 이유도 없다.

그의 감추인 부분을 끝내 모르는 채로

그리고 모르는 체하며 살고 싶다.

너의 외로움이나 공허감까지 껴안기엔

내 것만도 너무 무겁다." (288-289쪽)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계'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무엇처럼 느껴진다.

 

너와 나의 명백한 구분,

상대와 나의 동등한 관계.

결국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폭력을 행사하면서 말이다.

가령, 무관심, 고독, 질투, 집착, 고통 등등등.

 

작가가 말하는 것은 어쩌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각각의 사람들을 통해서

 

"누군가와 함께 지낸다는 건,

서로가 자기의 외로움을 몰래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구나." (188쪽)란 말처럼

 

스스로의 외로움을 끌어안아 줄

누군가를 찾지 말고,

스스로의 외로움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공통적인 외로움

'관계' 속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외로움을 '견딤'으로서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 2006. 10.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유 2007-06-18 0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의 외로움이나 공허감까지 껴안기엔 내 것만도 너무 무겁다"
맘에 와닿는 글귀에요..^^&

겨울집 2007-06-21 15:41   좋아요 0 | URL
가끔은 이기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교통사고가 혼자만 조심한다고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듯,
혼자만 배려를 베풀다가는
결국 제 갈 길을 못가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단 말이지요 ^^;

그러니 더욱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반성해야 할텐데,
어째 갈 수록 자극적인 것들만 보게 되니
왠만한 고독과 슬픔에는
진정이 담기기 힘든 것만 같습니다.

p.s : 배꽃님~ 정말 반갑습니다.
제 페이퍼 첫 댓글을 님이 남겨주셨네요~ ㅋㅋ

2007-06-2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2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