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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과거의 흔적들을 뒤적이다 보면

내가 지금 떠올리고 있는

기억의 정확한 생성연도를 산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기 따위의 연대기를 기록해 두는 인간은 아니며

더욱이 삶의 사실에 관계된 것들에

그닥 집착하며 살아가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다.

 

사실이란 문득 또 하나의 환영에 불과한 것이어서

사소한 기억들도 때로는 피처럼 생생하면서도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공간은 무너져 있기 일쑤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란

내게 있어선 대개가 그렇게 새벽녘의 창에

형체 없이 어른거리는 물상처럼 보일 뿐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물론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앞으로 생길 일도 내겐 모두가 그렇게 생각된다.

 

때로는 무엇에 집착하고 매달려도 보았지만,

오직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게 다가왔던 것들조차

얼마후면 한결같이 나를 외면하고 멀어져 갔으며

곧이어 또다른 일이 밀어닥치곤 했다.

 

나는 당장에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추스리는데 급급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닥이 뚫린 배에서 정신없이 물을 퍼내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내 가난한 젊은날의 책상 위에는

매양 밀린 숙제들이 잔뜩 쌓여 있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아무도 내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윤대녕, [지나가는 자의 초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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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무살 무렵에 이 책은 출간되었다.

맨처음 작가의 책을 읽은 것은

[은어낚시통신]이었나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였나.

그 후로 오랫동안 윤대녕이란 작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둠을 스스로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책에는 굵게 표시한 곳에

연필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문장들이 당시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여전히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음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윤대녕은 아직도 내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림 : Van Gogh, "S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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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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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9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을 극복하면 사랑은 사라질까요? 더 심화될까요?”

어느 날 미홍이 말했다.

“더 심화되겠지.”

진성이 대답했다.

“하지만 사랑을 극복하면 다른 모든 극복과 마찬가지로 점점 느낄 수 없어지고 유예되는 것이지. 그러다가 너무 깊어지면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잃어버리고 말야. 제 속에 있겠지만 실종되어 버리는 거야. 극복이란 그런 거야. 왜 사랑을 극복해야 하지?”

미홍은 자신의 위태로움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랑을 어떻게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하거나, 거부할 것인가. 더구나 극복하려 하다니.

“사랑은 집착하는 거야. 두려움 없이 집착을 키우고 만에 하나 잃어야 할 때는 태산 같은 집착의 고통을 순순히 치르는 거야. 그게 사랑이지. 사랑을 절약하고 집착의 고통에 빠질까 봐 두려워하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난 지금과 같은 사랑을 원해. 마음껏 사랑하는 사랑을. 만질 수 있고 당신 가랑이 속에 파고들 수 있고, 수없이 혀를 감고 당길 수 있는 이런 사랑을, 행위가 분명히 존재하는 매우 성적인 사랑을.”

“일주일에 두 번만 와요. 새벽엔 안 돼요. 밤 10시 이전에 올 수 있을 때만 내 방에 와요. 그리고 전화는 하루에 두 번만 하도록 해요. 저도 이제 일을 해야 해요. 사람을 만나러 다녀야 하고, 자료를 수집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죠. 그러니까 생활을 해야만 하는 거예요.”

 




진성이 말이 없었다. 그는 실은 바쁜 사람이었다. 그는 대체로 일주일에 두세 번쯤 11시경에 돌아오고 다른 날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진성은 일주일 내내 미홍을 방문했다. 늦게 들어온 날은 눈을 붙인 뒤 새벽에 미홍의 벨을 누르곤 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심장이 칼에 베이는 듯 내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와······. 난 실은 너무 바빠.”

그는 어린 남자애처럼 거의 울먹거렸다. 미홍은 이내 그 말을 취소했다. 심장이 베인 듯한 피 냄새가 그녀의 목 안에서도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일 같은 건 차차 어떻게 되겠지. 당분간 그를 사랑하고 남는 만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이 삶의 예외가 되는 때도 그저 시작의 한 시기일 뿐일 테니까. 어떤 사랑도 결국 일상의 틈 속에 스며들고 생활이 될 테니까. 그때엔 더 많은 일을 감당할 능력이 저절로 생길 테니까.



- 전경린, <열정의 습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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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만드는 넋굿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상처란 그 넋굿의 자리로서

그것을 현재 속에 간직하는 흔적이라고나 할까.

다시 볼 때마다,

그 아픔의 과거가 ‘여기’에 살아나고

미래인 다른 하늘이 ‘지금’ 속에 가득 펼쳐지는 곳.

시간의 직선적인 흐름이 무너져 솟구치며 소용돌이치는 곳.

상처를 통해,

마침내 우리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이인성  <낯선 시간 속으로> 중에서

사진 :  영화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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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란····.
살아 남은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히 느끼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형벌이기도 하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존재한다.
축복과 형벌은 이 빛과 어둠의 관계다.
그런데 예술가는 축복보다 형벌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형벌을 견뎌야 한다.
견디지 못하는 자는 단언하건대 예술가가 아니다.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강의 있음을 일깨우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예술가는 볼 수 있는 자다. 그 눈은 강의 흐름을 본다.
예술가는 들을 수 있는 자다. 그 귀는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한때 나는 아방가르드의 진창 속에 빠져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 혼돈 속에서 살아왔고,
혼돈의 공포에 눈이 멀어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이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빛은 슬픔의 강 너머에 있다.
이제 내가 당신들한테 질문하고 싶다.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정찬, <슬픔의 노래> 중에서


사진 : 제주 삼양해수욕장 쓸쓸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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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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