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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교차로, 경적소리, 불법유턴과 끼어들기, 골든 아워, 아슬아슬한 신호위반, 접촉사고, 신경질적인 버스 기사, 그리고 계속되는 정체현상. 매연과 담배연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달궈진 거리를 메운 노점상들, 빌딩, 스타벅스. 작렬하는 태양과 어지럽게 명멸하는 광고판들.
BMW시리즈의 최신형으로 보이는 중형차가 왼쪽 깜박이를 켜고 1차선으로 끼어든다. 끼어들었던 차는 파란불을 신호로 다시 직진한다. 비켜주었던 차들이 경적을 울린다. 갈 지자로 애매하게 비켜선 차들도 아우성을 친다. 애초에 직진할 예정이었던 것인지, 좌회전을 하려다 마음을 바꾸어먹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때로 자동차 한 대의 변덕 덕분에 길은 더욱 막히기도 한다.
은희경 신작 소설집의 제목을 보고, 방향전환을 하려던 그녀가, '은희경이 돌아왔구나' 하는 예감을 확신했다. '비밀과 거짓말'을 내놓고나서 생전 처음 겪어보았을 패배감에 대한 분풀이랄까. 이번엔 자신의 주특기인 '성장소설'을 들고 2년 만에 그녀가 링에 올랐다. 반응은 좋은 것 같다. 제목 덕이다. 내용에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예전에 균등했던 작품의 완성도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고르지 않다는 단점이 보인다. 표제작과 <지도 중독>,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용기있게 조금 지겹다, 라고 말한다. 깜박이를 켰으면 한 번 가보기라도 하지. 독자들의 환호는 오래가지 않는다. 소설의 여운이 오래가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