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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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에는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중반부로 넘어가서, 주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나오게 된 뒤로는 굉장히 진부 했다. 후반부에는 그냥 대충 넘어 가도 상관 없을 정도로 별 내용이 없었다.전반적으로 작가의 생각을 주장 하는데, 작품을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굉장히 불쾌 했다. 재미가 있었으면은 좀 괜찮을까? 아니, 재미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주장에 대한 평가는 독자가 해야 되는 것이지 그거를 작가가 나서서 나대는 거는 굉장히 불쾌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왠지 모르게 불쾌하다. 무언가에 대한 시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작품 내적인 면보다는 작품 외적인 면에서 평가를 하게 된다. 그것은 작가가 어떤 주제를 주장 하기 위해서 작품을 이용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장르 소설은 가벼운 게 좋은거 같다. 무거워지면 오히려 이상한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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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쥐 부족이 천적인 고양이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고양이가 오는 것을 미리 아는 방법을 찾기를 원했다.

그동안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두려워 밤낮으로 쥐구멍에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대책이 꼭 필요했다. 쥐들은 많은 꾀를 쏟아 냈지만 좋아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침내, 아주 어린 쥐 한 마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단순하지만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이 생각났어요.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겁니다. 우리의 적이 다가오면 방울이 울릴 테고, 그러면 우리는 때맞춰 몸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쥐 부족 모두는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며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는 와중에, 늙은 쥐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우리 젊은이가 아주 좋은 계획을 세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좀 물어봅시다.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거요?"

해야 할 일을 말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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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나절, 늑대 한 마리가 마을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말라깽이 개 한 마리를 만났다. 평소였다면 냄새도 맡지 않았을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먹잇감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달리 굶주림에 시달렸던 늑대는 말라빠진 개에게 다가갔다. 말라빠진 개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늑대의 이빨 가는 소리에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나리, 지금 저를 드시면 많이 불쾌하실 겁니다. 제 갈빗대를 좀 보세요. 가죽과 뼈밖에 남지 않았잖습니까. 그래서 긴히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며칠 후면 제 주인이 하나뿐인 딸을 위해 혼인 잔치를 연답니다. 그러면 저도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겠지요. 그때 저를 드세요."

늑대는 말라빠진 개의 말에 살지고 맛 좋은 개를 잡아먹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린 배를 부여잡고는 개를 잡아먹으러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며칠 뒤, 늑대는 약속대로 개를 잡아먹기 위해 돌아왔다. 그는 주인의 뒤뜰에 있던 개에게 이리 나와서 잡아먹힐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개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리, 잘 알겠습니다. 문지기가 문을 여는 대로 나가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지기’는 바로 늑대 여럿을 괴롭힌 적이 있는 큰 개였다. 늑대 자신도 그에게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그는 기다리기는커녕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대를 속이려는 자의 약속에 기대지 마라.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때 얻어라.

49. 주인의 저녁 식사 도시락을 나르던 개

어떤 개 한 마리가 매일 저녁 그의 주인에게 식사를 가져가는 법을 배웠다. 이 개는 물고 있는 도시락 안의 맛있는 음식 냄새 때문에 가끔 흔들리기는 했지만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같은 동네에 살던 개들이 그가 도시락을 문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몇 번이고 도시락 안의 음식을 훔치려고 했지만 도시락을 나르던 개는 충성스럽게 주인의 저녁 식사를 지켜 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도시락을 문 개가 길을 가는데 동네 개들이 모두 나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시락을 문 개는 도망치려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는 동네 개들과 말다툼을 시작했고, 동네 개들은 도시락을 문 개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주인의 도시락을 떨어트려 그 안에서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꺼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이건 내 거야. 나머지는 알아서 나눠 먹으라고."


언제나 유혹과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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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노름꾼 열린책들 세계문학 9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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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당신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환한 대낮에도 별을 보게 될 거야et je te ferai voir des etoiles en plein jour. 당신이 본 적도 없는 그런 여자를 보게 된단 말이야… … … 그까짓 것에 놀라긴! 천한 노예 같으니Ah, vil esclave! 잘 들어. 그렇게 한 달 사는 것이 당신 인생 전부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모르겠어?“

「전 20만 프랑을 땄습니다.」[23] 나는 마지막 돈뭉치를 던져 놓으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러시아인들은 돈이 생기면 하나같이 파리로 갑니다.」 미스터 에이슬리는 마치 책을 읽는 듯한 목소리와 말투로 설명을 했다.

「자,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면 당신은 뭘 해줄 거야Eh bien, que feras-tu, si je te prends avec? 우선 난 5만 프랑을 원하니까Je veux cinquante mille francs 당신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내게 그 돈을 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는 파리로 가서Nous allons a Paris 그곳에서 함께 살겠지.

그럼 당신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환한 대낮에도 별을 보게 될 거야et je te ferai voir des etoiles en plein jour. 당신이 본 적도 없는 그런 여자를 보게 된단 말이야. 이봐…….」

그리고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아니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난 당신 집에서 살 생각이야. 물론 우리는 그 15만 프랑으로 두 달 동안을 사는 거야. 알겠어que sais je? 난 좋은 여자라고je suis bonne enfant. 그리고 미리 말해 두지만 대낮에 별을 보게 된다니까mais tu verras des etoiles.」
「뭐라고요? 두 달 동안에 그걸 다 쓴단 말입니까?」
「어머나! 그까짓 것에 놀라긴! 천한 노예 같으니Ah, vil esclave! 잘 들어. 그렇게 한 달 사는 것이 당신 인생 전부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모르겠어? 한 달, 그 다음엔 될 대로 되라지 뭐et apres, le deluge. 아마 당신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겠지, 어림도 없는 일이야Mais tu ne peux comprendre, va! 에이, 꺼져. 꺼져 버려. 당신한테는 이럴 필요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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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만, 우리는 아픔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잘 모른다.” 류시화 시인의 말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어떤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아픔을 일반화해서 말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아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그 상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상처는 영혼의 일이므로 각각의 상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상처에 대한 존중이다.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 그 고통 내가 잘 알지”라 말하는 사람은 이타주의자가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지금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서 “당신 말이 옳아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 도취이다. 우리는 아픈 사람이 아픈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의 이야기를 잘 들기만 하면 된다. 상대는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기억으로 공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이야기 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좋은 삶의 지혜이다. 교사의 교사로 불리는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말이 답이다.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 주고, 들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날개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만
우리는 아픔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잘 모른다.
누군가의 아픔이 어떤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아픔을 일반화시켜 말해서는 안 된다.

심리학 서적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해도
저마다의 아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다.

봄의 주머니에서 꺼낸 이름들로 꽃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같은 종족의 사람이라도 저마다 이름이 있듯이,
같은 부족의 제비꽃일지라도 얼굴과 표정이 제각기 다르기에
그저 제비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상처마다 그 상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상처는 영혼의 일이므로 각각의 상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상처에 대한 존중이다.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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