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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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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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시가 아직 살아 있는 덕이지만 병원에서 들은 대로 허공처럼 텅 빈 시야의 범위가 중앙에서부터 점점 확대되고 있기는 하다. 선글라스도 없이 수시로 골프도 치고 요트 타기도 즐기긴 했다만 ? 수면에 반사된 자외선 양은 일반 자외선의 두 배다 ? 그 시절에 누가 그런 걸 조심했겠나? 햇볕을 쬐는 것이 좋은 줄로만 알았던 시절이다.

그 느릿한 부패의 냄새와 불수의적으로 배출되는 분비물의 베이스노트를 숨기기 위해 여자들은 은은한 꽃향을, 남자들은 상쾌한 향신료 향을 덧바른다. 만발하는 장미나 무뚝뚝한 해적의 이미지를 여전히 각자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뉴스는 아기 얼굴 가면을 쓴 폭도가 처음에는 시카고 외곽의 양로원, 두 번째로는 조지아주 서배나 인근의 양로원, 세 번째로는 오하이오주 애크런의 양로원에 불을 질렀다는 소식이다. 그중 하나는 공립 양로원이지만 나머지 두 곳은 자체 경비를 갖춘 사립 양로원이다. 사립 양로원 거주자 중 일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 버렸는데 빈곤 계층도 아니라고 한다.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진행자가 말한다. 집단 방화입니다. 아르턴이라는 이름을 쓰는 집단이 웹사이트를 통해 범행을 시인했고 당국은 웹사이트 계정 소유자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사망한 노인들의 가족은 물론 ? 뉴스캐스터의 말이다 ?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윌마는 토비아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어쩌면 윌마의 존재 덕분에 지금 토비아스는 전보다 더 외모를 가꾸고, 더 어려 보이고, 덜 허약해 보이고, 더 민첩해 보일지도 모른다. 정수리에 숱도 더 많아지고.

"자기들 차례래요. 그래서 팻말에 우리 차례라고 써 넣은 거래요."
"아." 아턴(Artern). 아우어 턴(Our Turn). 잘못 들었던 것이다. "무슨 차례를 말하는 건데요?"
"삶. 삶에서의 차례요. 어떤 사람이 텔레비전 뉴스에서 말하는 걸 들었어요.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하고 있더라고요. 들어보니까 우리, 우리 노인들 차례는 지나갔대요. 우리가 다 망쳤대요. 탐욕이며 뭐며로 지구를 파괴했대요."

"맞는 말이네요. 우리가 망쳤죠.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사회주의자들일 뿐이에요." 토비아스는 사회주의자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죄다 속을 들춰 보면 사회주의자라는 식이다.

토비아스가 자신의 과거 금융 생활에 대해 털어놓는 일은 좀처럼 없다. 국제 무역 회사를 몇 개 소유했고 건전한 투자를 했다고만 할 뿐, 자기가 부자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부자들은 절대 자기가 부자라고 하지 않는다. 넉넉한 생활을 한다고 하면 모를까.

"우리한테 뭘 원한대요?" 윌마가 되도록 신경질적이지 않은 말투로 묻는다. "팻말 들고 있던 사람들 말이에요. 참 이게 무슨 일이래요.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양보했으면 좋겠다네요. 좀 비켜 줬으면 좋겠대요. 팻말에도 쓰여 있어요. 비켜라."
"죽으라는 말 같네요. 오늘은 롤 좀 있어요?"

"위험해 보여요?"
"여긴 그런 것 같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방화를 저지르고 있대요. 그 무리가요. 국제 조직이래요. 수백만 명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고 하고요."

윌마는 낙상을 당하는 일 없이 샤워까지 해낸다.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고 미끄러운 샤워젤은 과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수건으로 몸을 닦는 일은 어딘가에 앉아서 하는 것이 최선이다. 선 채로 발을 닦으려다가 봉변당한 이들이 많다. 윌마는 발톱을 깎을 때가 되었으니 잊지 말고 서비스 부서에 연락해 미용실에 예약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발톱 깎기도 윌마가 더는 혼자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토비아스가 나간 후 윌마는 간이 부엌에 있는 라디오를 켜고 정보 수집 준비를 한다. 대부분 이미 아는 내용이고 새로운 소식은 거의 없다. 우리 차례는 하나의 운동이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어떤 시위대는 "죽은 나무의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부르고 또 어떤 시위대는 "침대 밑에 쌓인 먼지 더미"라고 부르는 대상을 소멸시키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는 것이다.

당국의 대응은 시답잖고 그마저도 산발적인 대응일 뿐이다. 추가적인 홍수, 방화에 의한 추가적인 산불, 추가적인 토네이도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만드는 더 중요한 문제들을 처리하느라 그렇다고 한다.

카티아가 떠나자 윌마는 발을 질질 끌며 거실로 가다가 책장에서 무언가를 건드려 떨어뜨린다. 나무 막대 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하니 연필통이다. 윌마는 이내 안락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맡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신중히 살펴보고 지금껏 살아온 삶이나 그 비슷한 것을 돌이켜 볼 생각이지만, 먼저 큰 활자가 지원되는 전자책 리더기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한두 문장 읽으면서 찬찬히 할 것이다.

"점심 먹고 나면 우리 다 같이 마음을 다잡고 2열 횡대로 서서 밖으로 행진하죠! 그렇게 하면 당국에 우리 상황을 알릴 수 있고, 사람들이 와서 문을 열어 주고 저 가엾은 사람들을 제대로 된 시설로 옮겨 줄 거예요. 모든 게 정말 눈 뜨고 봐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아기 가면이나 쓰고 있는 저 멍청한 사람들은……."
"내보내 주지 않을 거예요." 토비아스가 말한다.
"하지만 같이 가면 되잖아요! 기자들이 찾아올 거예요.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감히 어떻게 우리를 막겠어요!"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토비아스가 말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전 세계가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 뿐이니까요. 마녀사냥이 벌어졌을 때도, 공개 교수형이 진행될 때도 늘 관중이 많았죠."

사자 장식이 박힌 문 밖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늘 들고 있던 팻말을 휘두르고 있는데 새로운 팻말도 눈에 띈다. 때가 됐다. 먼지 더미를 불태워라. 때가 됐으니 서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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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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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더미 불태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삶의 권리는 생명에서 오는 것인데, 누군가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뺏을 수 없으랴? 마거릿 애트우드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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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때 참 재밌었는데, 그렇지?" 로드가 말한다. "그 낡은 집에서 말이야. 지금보다 순수했던 시절이었지."
"맞아. 정말 재밌었어." 이만치 떨어져서 보면 정말이지 재밌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미는 뭐가 어떻게 끝날지 모를 때나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 책 때문에 나를 찼었어. 나의 진정한 재능을 저버렸느니 어쩌니 하면서."
"책 때문이 아니야. 걔는 널 사랑했어. 몰랐어? 네가 자기한테 프러포즈하기를 원했고 결혼하고 싶어 했어. 이레나 걔, 아주 고리타분한 애거든. 하지만 넌 그럴 낌새도 보이지 않았지. 걔는 완전 거절당한 기분을 느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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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여 페이백] 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 황금가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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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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