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만, 우리는 아픔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잘 모른다.” 류시화 시인의 말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어떤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아픔을 일반화해서 말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아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그 상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상처는 영혼의 일이므로 각각의 상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상처에 대한 존중이다.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 그 고통 내가 잘 알지”라 말하는 사람은 이타주의자가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지금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서 “당신 말이 옳아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 도취이다. 우리는 아픈 사람이 아픈 이야기를 하도록 내버려두고, 그의 이야기를 잘 들기만 하면 된다. 상대는 자신이 느끼는 아픔을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기억으로 공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이야기 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좋은 삶의 지혜이다. 교사의 교사로 불리는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의 말이 답이다. “인간의 영혼은 조언을 듣거나 바로잡아지거나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 주고, 들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뿐이다. 우리가 고통받는 사람의 영혼에 깊은 절을 할 때, 우리의 그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날개는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알지만
우리는 아픔을 겪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잘 모른다.
누군가의 아픔이 어떤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 아픔을 일반화시켜 말해서는 안 된다.

심리학 서적에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해도
저마다의 아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경험이다.

봄의 주머니에서 꺼낸 이름들로 꽃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같은 종족의 사람이라도 저마다 이름이 있듯이,
같은 부족의 제비꽃일지라도 얼굴과 표정이 제각기 다르기에
그저 제비꽃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상처마다 그 상처의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그저 상처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상처는 영혼의 일이므로 각각의 상처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상처에 대한 존중이다.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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