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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 다 빈치 코드의 비밀
마가렛 스타버드 지음, 임경아 옮김 / 루비박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때 한때의 유행처럼 교회에 다닌적이 있다. 나는 성격상 쏠림 내지는 몰입현상이 심한 편이어서 당시 기독교에 꽤 빠져들었다. 교회가 가장 부정적으로 미친 영향을 꼽으라면 죄책감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게 마련이라는 점. 이 죄는 반드시 기독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등이 내 뇌리속에 깊게 새겨졌다. 사춘기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그 때문에 고뇌했던 적도 적지 않았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철없다는 생각 뿐이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서 언더써클(당시엔 동아리란 말이 없었다)에 가입하게 됐다. 사회과학책을 열심히 읽으며 때때로 가두시위에 동원되곤 했는데 2학년이 됐을 때 이 조직이 공개써클(당시엔 오픈이라고 했다)의 한 줄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공개써클 이름은 기독학생연합회였다. 기독교를 표방하긴 했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이름뿐인 기독교써클이었다. 신학에 대해 한줄도 모를 뿐 아니라 공부도 하지 않았고, 그냥 하던대로 스포츠에 집중했다.
3학년인가 딱 한번 예배를 본 적이 있다. <시국기도회>란 것이었는데 1학년인 1984년에 학원자율화 조치에 따라 학교바깥으로 철수했던 사복들이 때때로 들어와서 학내시위조차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런 이완(?)된 분위기를 틈타 보수 기독교 써클들이 학교 도서관앞 광장에서 밴드를 동원해 선교를 하는 오만방자한 일이 횡행하면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시기였다. 그해 5월 문익환 목사가 시국강연을 할 때 한 학생이 학생회관 4층에서 분신한 채 투신하는 일까지 있었고(당시 현장에서 온몸을 떨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비장한 학내분위기에서 <시국기도회>는 나쁠게 없는 이벤트였다.
그런 와중에 읽었던 책이 어느 일본인이 쓴 <예수라는 사나이>와 <신학과 실천>이라는 정기간행물, <숨은 신> 정도였다. 이런 저런 일들이 얽히면서 기독교에 대한 내 감정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종로 5가의 기독교 방송 건물에 자리잡은 한국기독학생연합(KSCF)에 가끔갔다가 그 건물 주위를 맴돌며 “WCC는 빨갱이”라고 확성기로 떠드는 가두선전 차량을 보며 혀를 차던 기억도 새롭다. 한국교회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빈치 코드>를 최근에 본 뒤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를 보며 기독교에 결핍된 게 뭔가 어렴풋이 잡히는 것 같았다.(이 책의 주된 타깃은 물론 로마 카톨릭이겠지만) 고교때 여학생을 동경하며 동시에 가져야 했던 죄의식은 기독교의 불완전성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남녀의 문제를 외면해 버려야 종교로서, 대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기독교의 숙명도 이해가 됐다. 거세된 기독교, 화석화된 기독교, 신자들을 한없이 괴롭게 하는 ‘인간의 굴레’로서의 종교가 원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제시된 내용들 - 여성이 기독교 이야기에서 누락된 이유, 그 상실이 서구 문명에 가져왔던 파괴, 회복될 수 있는 방법 등은 반드시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개연성이 높은 내용들이다. 만약 이 가설들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면? 기독교는 이 이설들을 끊임없이 부정할 것이고, 되도록이면 근절하고 싶어할 것이다. <다빈치 코드>에서 오푸스 데이 같은 보수 카톨릭 집단들과 시온 수도회 등 성배를 수호하려는 집단간의 물밑 갈등이 지금 이 시간에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다빈치 코드를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면 기독계열 출판사들이 낸 수십권의 반론서적들이 뜨는 것에서도 이런 개연성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