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각종 경제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하는 등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나빠진데다 이달들어 금융시장마저 요동쳤다. 물가급등은 서민 가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투자자금을 회수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국내 경제학계의 대표적인 논객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사진)는 지난 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길(대외 여건)은 울퉁불퉁하고, 차 성능(경제 체질)도 나빠졌는데 과속주행을 하려다 사고직전 상황에 몰린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총외채가 4000억 달러를 넘어서고, 가계부채도 심각한 수준에 이른 점을 들어 “우리 경제가 빚더미 위에 올라 앉아 있다”며 “‘제2 외환위기’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유 교수는 “경제상황을 호전시키려면 강만수 경제팀의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경제팀은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꾸려져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 내에 그럴 만한 인사가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MB노믹스’가 6개월을 맞은 지금 각종 경제지표가 추락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아우토반이라는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통일 이후 동독의 형편없는 차들이 아우토반을 질주하다 사고가 많이 난 뒤 속도제한이 생겼습니다. 길이 널찍하고 차가 좋으면, 고속주행을 해도 탈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는 길도 울퉁불퉁하고, 차의 성능도 나빠졌는데도 고속주행을 하고 있는 격입니다. 대외적으론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있고, 글로벌 경기도 둔화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있습니다. 총외채는 2005년말 1878억달러에서 올해 3월말 4125억달러로 급증했습니다. 이처럼 길도, 차도 나빠지면 수리를 한 뒤 안전운전을 해야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성장주의 정책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습니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통해 부유층과 대기업을 위한 감세를 단행한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세제개편안의 특징은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감세를 통해 소비확대와 투자증대를 이끌어내자는 게 정부의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소비 진작효과를 기대하려면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줘야 합니다. 음식점 폐업이 속출하고 있고, 마지 못해 문만 열어둔 곳이 부지기수인 상황에 부유층을 위한 감세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감세는 서민들을 위한 재정 지출 감소로 이어질 게 분명합니다. 세금이 많이 걷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시적인 세금환급이면 몰라도 소득세·법인세·양도소득세를 영구적으로 낮추는 것은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됩니다.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자연스레 재정수요가 늘어나게 되는데 정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한번 내린 세금은 다시 올리기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재정 건전성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됩니다.”

 -최근 다소 진정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금융시장에 ‘9월 위기설’이 나돌 정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9월 위기설’이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만기가 돌아오는 것과 관련이 있긴 하지만 외화유동성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시장의 의구심을 풀어줘야 합니다. 한국은행은 미국 페니매이와 프레디맥의 채권을 몇 백억 달러 어치 갖고 있습니다. 선순위 채권이라 걱정할 것 없다고 하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현재 단기외채가 전체 외환보유액의 90%를 넘고 있는 만큼 수백억 달러의 돈이 (페니매이와 프레디맥에) 묶이게 되면 우려할 만한 상황이 빚어지게 됩니다. ‘실탄’(자금)과 확실한 계획만 있으면 환투기 세력과 싸울 수도 있습니다. 시장개입은 최소화해야 하지만 비합리적인 투기세력에 대해서는 초강력 개입을 해서 퇴치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필요도 있습니다. 1990년대 프랑스나 동남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도 홍콩이 환투기 세력과 싸워 이긴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그럴 능력이 있을 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요.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을 시장 흐름과 거꾸로 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팔고 나가는 외국인 투자자는 노잣돈을 두둑하게 챙겨나가게 된 것이지요.”

 -우리 경제에 대한 처방으로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제시해 왔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계부채 증가가 심상치 않고, 지방 아파트 미분양 사태 등으로 금융부실도 커지고 있습니다. 땅을 비싸게 사들여 높은 분양가로 팔려고 하니 미분양이 생기는 것입니다. 건설회사도 부도가 나면 돈 빌려준 금융기관도 손실을 봐야 하는 게 시장경제 원리에 맞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금융기관에 채권 회수 대신 만기연장을 종용하고, 경인운하 등을 통해 건설회사에 돈을 줘 연명토록 하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도대체 외환위기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럽겠지만 금리인상으로 구조조정을 촉진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야 외환시장도 한국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간다고 평가하게 됩니다. 환율이 급등하는 것은 정부가 경제안정을 꾀하면서 부실을 떨어내야 할 시점인데도 그 반대로 가고 있는데 대한 시장의 우려가 반영된 것입니다. 다만 금리를 올리려면 그와 동시에 사회지출을 늘려 구조조정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하는 재정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감세정책을 보면서 이 역시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를 추진한다면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지분 49%를 매각키로 한 것에 대한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 전 세계은행 부총재가 연금 민영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가 미국 재무부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결국 부총재직을 사퇴했다고 합니다. 재무부 뒤에 있는 월 스트리트와 민간 보험자본으로선 연금 민영화가 새로운 이익창출 기회가 되기 때문이죠. 인천공항 민영화도 자본의 이해가 반영돼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면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되기 보다는 소비자에게 돈만 뜯어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책실패의 책임을 물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쿠바와의 야구 결승전 9회말에 포수 강민호가 퇴장하면서 위기로 치닫던 경기의 흐름이 끊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도 악화돼 가는 흐름을 끊어줄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면서도 실력을 갖춘 인물이 여권 내에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요즘 금융당국이 외환딜러의 불법매매를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국민연금으로 주가 떠받치기에 나서는 것 보면 관치도 이런 관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돈으로 사랑을 사지 못하듯 협박으로 시장의 믿음을 살 수는 없습니다. ‘MB 물가지수’를 만들고, 강 장관이 재래시장에서 쇼핑카트 끌고 다닌다고 물가가 잡힙니까.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안정을 중시하는 인물이 경제팀을 맡는다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재벌개혁을 하지 않아 지배구조 투명성이 더 나빠질 것 같고, 배임한 재벌총수들도 모두 사면해 주니 시장주의에 역행한다고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있다는 것이죠. 일찌감치 이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고 “이 나라는 안되겠다”며 철수한 외국자본도 있다고 합니다.”

 -올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한·미 FTA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는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입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공익을 위해 사익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헌법정신에도 어긋납니다. 한·미 FTA는 국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도 노무현 정부가 업적을 내겠다는 조급함으로 서두르면서 미국에 너무 많이 양보했습니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은 FTA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비준을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유종일 누구인가

 1958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미국 노트르담대, 중국 베이징대에서 조교수와 부교수, 초빙교수를 지냈다. 세계은행,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시절 ‘경제 가정교사’로 불릴 정도로 경제관련 공약을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의 강한 개혁 성향을 우려한 관료들의 견제로 처음부터 참여정부와 거리를 둬 왔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에 주력하고 있다. 유종근 전 전북지사의 동생이기도 한 유 교수는 서울대 재학시절 운동권 노래패 ‘메아리’의 창립 멤버였고, 학생운동으로 두 번이나 퇴학을 당한 전력이 있다. 2006년 10월부터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고 있다.

200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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