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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평점 :
안재성 작가의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북한 정권의 고위관리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10년간 수감된 실존 인물 정찬우(1929~1970)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자녀가 50년간 꼭꼭 숨겨둔 육필원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팩션'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정찬우의 자녀는 안재성 작가와 친분이 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인물이라고 한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정찬우는 1935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한다.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은 수재로 이름을 날리다 독립군인 조선의용군에서 활약했다. 해방 후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평양제일여자고급중학교 교사로 부임한다. 한국전쟁에 교육위원으로 투입된 정찬우는 사회주의 교육의 당위성을 전파하는 연설 일을 맡았다.
하지만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을 뚫지 못하고 결국 국군과 유엔군에 밀려 퇴각하며 갖은 고초를 겪다가 포로가 된 정찬우는 국방경비대법 위반죄로 10년을 복역한 뒤 출소해 10년을 더 살다 죽는다.
정찬우가 겪은 전쟁은 '참혹' 그 자체다. 그의 곁의 수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가거나 미쳐갔다. 강경 좌익이던 인민군 고급장교들이 포로수용소에서는 악마로 변해 동료들을 괴롭힌다. 전쟁이 인간성을 얼마나 쉽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의 관념적인 작전명령과 실제 전선에서 전쟁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들간의 괴리가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고 했다. '어떤 전쟁은 옳다'고 하는 이에게 정찬우는 말한다. '정의의 전쟁 따위는 없다'고. 섣불리 전쟁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권하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