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했던 책들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외국소설 7편을 골라 묶은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에 이어 빨간책방의 오프닝 에세이 모음집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이 출간되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방송 중간중간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에 대한 예고를 했었기 때문에 이 책의 출간 소식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허은실 작가의 오프닝 에세이 모음집이 출간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더욱 반가웠다. 


얼마 전에도 빨간책방을 듣다가 '짓다'라는 제목의 오프닝이 좋아 블로그에 받아 적기도 했었는데, 허은실 작가는 작고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발견'과도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강풀 만화가가 추천사에서 "몰랐거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똑똑한 발음으로 읽게 하는 책"이라고 표현하셨던데, 허은실 작가의 글을 이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는 문장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기대하는 부분은 3부 '책, 머물러 머금다'와 4부 '독서, 흘러 닿다'. 목차의 소제목만 봐도 마치 한 편의 시집을 읽은 것 같다. 















글 쓰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여행 에세이. 단순히 자신이 다녀온 여행기를 담은 책이 아니라, 여행에 필요한 아홉 단어를 중심으로 밥장식 여행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그가 여행에서 찾은 9가지 키워드는 행운 기념품, 공항+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


일반적으로 여행과 관련된 책을 살 때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라나 도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읽는 가이드북과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대리만족을 위해 읽는 에세이. 물론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책이지만, 뭐랄까.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대리만족을 위해 읽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밥장의 여행 키워드를 통해 자신의 여행은 어땠는지 되돌아보고, 그렇다면 내가 꼽은 여행에 필요한 단어들은 무엇인지 정리하게 만드는 책이랄까.

해외여행을 세 번 정도 다녀온 지금에야, 이 책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단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첫 해외여행 때는 너무 긴장해서 공항을 즐길 여유도 없었거니와 비행기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면 좋은지, 기념품은 어떤 걸 사오는 게 좋은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내가 단 한 번의 해외여행 경험도 없이 이 책을 보게 되었다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몇 번의 해외여행 경험이 쌓이고 어느 정도 나만의 여행 방식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이 책을 만난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여행을 좀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밥장식 힌트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파리에 산다. 길을 지나가다 문득 아름다운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넣곤 했다.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건축가로부터...' 간혹 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초대를 받았고, 그 집에 숨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수년간 수많은 파리의 저택에 발길이 닿았고... 그 이야기를 여기에 모아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평소 건축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리는 이 책에 마음이 뺏겨 출판사 리뷰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백희성 건축가가 파리에서 8년 동안 아름다운 집, 오래된 집을 찾아다니며 집주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원래 에세이로 엮으려고 했지만 인터뷰를 해주었던 집주인들의 반대로 가명과 약간의 픽션을 가미해 팩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저자가 어떤 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중 나무 바닥에서 삐거덕하는 소리가 들려와 얼른 그 바닥을 고쳐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절대로 안 된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생전 이 의자에 앉아 창가의 햇볕을 벗 삼아 책을 읽었어요. 그 오랜 시간 동안 의자를 뒤로 젖히는 버릇 때문에 바닥이 상해서 삐거덕하는 소리가 나게 된 거예요. 지금은 그이가 없지만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영혼이 아직 이 집에 같이 숨 쉬고 있음을 느껴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저자는 세상의 불편한 것들에, 부족한 것들에 어쩌면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거기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것과 그때서야 비로소 건축이 완성된다는 것까지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동안 낯설고 딱딱하게 느껴지던 건축이,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따뜻하게 다가올 것만 같다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제목과 표지에 반해 선택한 책. 인생의 중심이 흔들릴 때 나를 지켜준 이, 어이없게도 국수.

 

추억이 깃들었거나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음식을 뜻하는 '소울푸드'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엄마가 차려준 갓 지은 쌀밥과 김치찌개, 실연 당한 날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 다 털어넣고 양푼에 쓱쓱 비벼먹는 비빔밥 등 삶의 어떤 순간에나 음식의 추억은 존재한다.

 

이 책의 저자는 나이 마흔에 일과 가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가족을 선택하고 홀연히 사표를 던진 전직 워킹맘이다. 회사를 나온 이후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국수를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신의 삶 속에 늘 소중하게 자리 잡았던 국수에 대한 얘기를 풀게 되었다고. <어이없게도 국수>는 국수로 지나온 삶을 추억하고, 국수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국수로 위로받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소울푸드'의 국수편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내 인생의 음식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며 그 과정 속에서 마침내 자기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갑자기 배가 고프다 '0'​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롯해 수많은 청춘 담론이 지나간 후, 이제는 '청춘'이라는 단어만 봐도 지긋지긋 넌더리가 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이 책의 저자, 대학내일 20대연구소 때문이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국내 최초로 20대와 대학생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저자 소개를 보면 '항상 같은 눈높이에서 이뤄진 적극적인 교류와 체계적인 자료 수집으로 20대 관련 인사이트를 다년간 축적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업, 공공기관, NGO 등과 제휴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적극적으로 20대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 강점입니다. 앞으로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미래의 핵심 리더가 될 20대들의 입장을 진실되게 대표하여 기성세대와 20대들의 거리를 한층 더 좁힐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거듭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2030세대를 타깃으로 한 대부분의 청춘 콘텐츠들의 공급자는 사회에서 성공하거나 인정 받은 기성세대들인데, 이 책은 <덕후거나 또라이거나>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기성세대가 아닌 같은 20대가 20대에게 던지는 청춘 담론인 것이다. 스펙보다 스토리를 선택한 20대들의 32가지 인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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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금요일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퇴근 후 몇 시간과 출근 전 몇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다 읽었다. 보통 적게는 두세 권, 많게는 열 권 정도를 왔다갔다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으로 골라 읽는 내게는, (정말 그 책에 빠진 경우를 제외하고서) 한 권의 책을 집중해서 끝까지 읽는 경우가 드문데 이 책은 오랜만에 한 호흡으로 끝까지 읽은 책.

2년 전, 팟캐스트 빨간책방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의 대화를 그냥 듣고 흘려보낼 게 아니라 녹취 풀듯이 기록으로 정리해놓고 꼼꼼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막연했던 생각이 진짜 책으로 나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값을 9900원으로 매겼다고. 330페이지에 다다르는 볼륨감 있는 책치고는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존의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옮겨 다듬고 보충해서 만든 책이고 특별히 제작 과정에서 들었을 만한 품이나 요소도 없어 순전히 제작 단가가 놓고 봤을 때는 이 정도 가격이 적당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안에 든 내용, 무려 7권의 대단한 소설을 담았고, 거기에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가 각자의 해석을 곁들인 이 지적 가치를 생각하면, 게다가 이 책을 평생 소장해서 간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책값 만 원은 저렴하다 못해 거의 공짜로 얻은 듯한 느낌이다. 카페에서 먹은 커피 한 잔, 케이크 한 조각보다 저렴한 책이라니.

무튼, 내가 빨간책방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는 독서를 다양한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판을 짜주었기 때문인데, 만약 진행자가 책-영화-음악 등 콘텐츠의 스펙트럼이 넓은 이동진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 재미가 가능했을까 싶다.

빨간책방이 생겨난 후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많은 책 관련 팟캐스트들을 다 들어봤지만, 빨간책방만큼의 풍성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동진 평론가만으로는 약간 부족하달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김중혁 작가가 기가 막히게 채워낸다. 둘이 함께 책을 얘기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호흡도 좋지만, 김중혁 작가는 책의 세계를 만드는 제작자 입장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책을 세계를 감상하는 독자 입장에서 각자의 견해를 내놓으니 책을 이해하는 시각이 훨씬 더 다채로워진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을 읽으면서 또 한 번 느낀 건, 빨간책방의 장점 중 하나가 책과 영화, 두 가지 콘텐츠를 융합하여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바로 이동진 평론가가 있기 때문인데, 어떤 책을 소개할 때 비슷한 맥락의, 혹은 비슷한 서사의, 비슷한 구성의 같이 보면 좋을 영화를 덧붙여 소개해준다.

P.120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아까 무지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우스꽝스럽게 저는 두 영화가 생각났어요. 하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고 하나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에요. 일단 제가 <괴물>의 프롤로그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도입부에 일종의 돌연변이로 태어난 작은 괴물을 낚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옆에서 친구가 말리고 있는 와중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강을 내려다보다가 괴물을 목격하게 되죠. 옆의 사람은 못 보고요. 저기 뭐가 있다고 해도 옆 친구들은 ˝어디, 어디?˝ 그러죠. 그러니까 싸늘하게 웃으면서 한마디 남기고 한강으로 뛰어내리죠. ˝둔해빠진 새끼들.˝ 이게 어떻게 보면 이 소설 속에서 베로니카가 한 말이거든요.

P.123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 <올드보이>의 아주 인상적인 대사를 인용해볼까요. ˝조약돌이든 모래알이든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결정적인 불행과 비극에 빠뜨린다고 하면 그게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정도의 엄청난 일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올드보이> 식으로 이야기하면 남의 험담을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번 한 거죠. 심지어 자기는 그 험담한 사실도 잊어버리고요.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서 끔찍한 일을 당하죠.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것은 가라앉는다는 점이죠. 그것이 조약돌인지 모래알인지가 아니라요.

P.234 <파이 이야기>
마지막으로 <파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영화 <더 폴>이나 <판의 미로> 또는 <빅 피시>를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소설로는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도 권하고 싶구요. 화자와 그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관계가 흥미롭고 그 둘 사이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의미를 즐길 수 있거든요.


대체로 이런 식이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그 작품 안에서만 곱씹고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작품, 또 다른 이야기를 가져와 좀 더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해준다. 단순히 해당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영화를 만나게 되고, 하나의 작품에서 뻗어나간 생각의 가지들은 다른 작품의 가지들과 만나 종으로 횡으로 마구마구 뻗어나가게 된다.

이 책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먼저 이 책에서 다루는 원작 소설을 하나 읽고 나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속에서 이 소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읽고,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책이나 영화를 감상해보는 것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원작을 찾아 읽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소설의 반전이나 결말을 다 알고서 보게 되니 그 재미가 덜할 것 같다.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가 서로 닮은 듯 다르게 쓴 저자 소개나 서문 읽는 재미도 이 책의 놓칠 수 없는 포인트.

빨간책방은 이제 팟캐스트를 넘어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전에 빨간책방 카페를 다녀와 남겼던 포스팅에서도 썼지만, 이 모든 것은 이동진의, 이동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가 만든 빨간책방은 자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온전히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동진의, 이동진에 의한, 그러나 독자들을 위한 빨간책방. 빨간책방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빨간책방의 매력을 한층 더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몰랐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빨간책방에 빠지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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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마법과 쿠페 빵
모리 에토 지음, 박미옥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올해 출판계 동향을 정리하는 기사에서, SNS에서 유행했다는 북버킷에 대한 내용을 보았다. 북버킷이란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책 10권을 꼽아 소개하고 다음 지목자를 정해 릴레이를 이어간다는 내용인데, 한 번쯤 자신의 독서 인생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슬그머니 내 인생의 책 10권을 꼽으라면 어떤 책이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검은 마법과 쿠페 빵>이었다. 대학교 1학년 말, 첫 실연을 경험하고 실의에 빠져 있던 무렵, 내가 열심히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바로 그 책.

처음엔 제목도 제대로 생각이 안 나서 무작정 일본소설 카테고리를 찾아다니다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한 끝에 '마법? 마녀? 무슨 빵이 들어갔던 것 같은데' 하고 검색하다 찾아냈다. 그래, 검은 마법과 쿠페 빵!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검색해보니 어라, 그 사이 절판이 되었네. 2007년에 처음 이 소설을 접했던 것도 바로 내가 자주 이용하던 우리 동네 공공도서관에서였다. 어렵지 않게 중고책을 주문하고 오늘 하루만에 후다닥 읽었다.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었던 그 무렵의 감정들이 되살아나, 왠지 모르게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노리코가 고등학교 때 첫 실연을 겪고 견뎌내는 장면. 나 역시 노리코처럼 순진하게 영원을 믿고 있다가, 상대방의 일방적인 요구로 사랑이 깨져버린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 노리코처럼 몇 번이나 전화해 매달렸었는지. 지금에야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 하고 넘기지만 그 당시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끙끙 댔었다.

이 책을 읽었던 2007년 스무살의 나로부터 7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여전히 밑줄을 긋게 만드는, 오히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서 문장에 담겨진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지금 더 뭉클하게 다가오는, 내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던 책 속의 구절을 소개할까 한다.

P.116
아무리 아픈 이별이라도 언젠가는 극복되리라는 것을 아는 공허함.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사람도 언젠가는 잊혀지리라는 것을 아는 서글픔. 우리들은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면서 헤어지는 그 순간보다 오히려 먼 미래를 생각하며 이별을 아파했다.


그 시절의 나는 마치 이 책을 통해 확인받고 싶다는 듯이 '그래, 이런 미래가 정말 온단 말이지. 지금은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결국엔 다 잊고 만다는 거지. 근데 난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 하며 나에게만은 끝끝내 오지 않을 것 같은 이별의 끝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는 몇 번의 연애 끝에 완벽히 깨달았다. 아무리 아픈 이별이라도 언젠가는 극복이 되고,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사람도 언젠가는 잊혀진다는 것을.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노리코의 초등학교 시기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을 담은 소설 <검은 마법과 쿠페 빵>. '나의 초등학교 친구들은 어땠지, 나의 사춘기 땐, 나의 첫 연애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그 무렵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 시절, 온 힘을 다해 울고 웃던 내가 그리워지는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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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전하는 가게> 만드는 법 - 배우고, 먹으면서 배우는 가게
나가오카 겐메이 지음, 허보윤 옮김 / Epigram(에피그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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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겐메이가 현재의 디앤디파트먼트를 만들기까지 실제로 체험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소개하는, 일종의 디앤디파트먼트 매뉴얼 같은 책. 그의 본래 직업은 디자이너이지만, 숍의 운영자로서 존경할 점이 참 많은 분이다. 개인적으로 나가오카 겐메이의 저서 모두 밑줄 그으며 열심히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입고되자마자 구입해서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디앤디파트먼트의 운영 방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최근에 읽은 <무인양품의 90%가 구조다>는 무인양품의 업무 매뉴얼 '무지그램'을 통해 무인양품의 운영 시스템을 파악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두 숍 무인양품과 디앤디파트먼트를 다룬 책이라 읽으면서도 서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구체적으로 도움이 된 걸 따지자면 무인양품 쪽.

나가오카 겐메이를 좋아하고, 디앤디파트먼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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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날 때까지
난다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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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스런 일인지,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 엄마도 나를 가졌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내가 엄마가 되면 이런 느낌일까. 여자로 태어나서, 아이를 낳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역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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