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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ㅣ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나는 포항에서 태어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쭉 살았다. 대입을 준비하던 고3 시절, 친구들은 포항이라는
시골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가깝게는 대구나 부산으로, 멀게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달리 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서울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나는 집 근처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4년을 보냈다. 실패도 없었지만 발전도 없었던 나날. 그러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편집자가 되고 싶었고, 지방에는 출판사가 없었던 터라 취직을 위해 자연스럽게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회사는 역삼역 근처에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나가보면 다들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외국은커녕 포항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내게 테헤란로는 심정적으로 뉴욕과 같은 곳이었다.
p.10
서문 중에서
‘자귀 짚다’라는 말이
있다. 짐승을 잡기 위해 그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나라는
짐승은 무슨 먹이를 찾아 어떤 발로, 어떻게 걷고 있을까. 어떤
길을 다니고, 어떤 풀의 냄새를 맡고, 어디서 물을 먹으며, 가끔씩은 멀리 보기도 할까. (중략)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어느덧 서울로 거취를 옮긴 지도
5년이 넘어간다. 그 사이 나는 왕십리 – 건대입구 – 수유 – 합정을
오가며 네 번의 이사를 했고, 출판사 편집자에서 서점 매니저로 이직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남자와 결혼을 했고,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과 자주 시간을 보낸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서울의 곳곳을 누비며 이곳에서만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만끽했고, 지금의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을 서울에서 배웠다. 나라는 짐승의 자귀를 짚어본다면 분명 그 배경은 서울일 것이다. 이곳에서 보낸 5년이 내 인생의 변환점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은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
『나의 사적인 도시』는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간 저자가 뉴욕에서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정리해나간 아주 사적인 뉴욕기다. 그녀가 느낀 뉴욕은 5년 전 내가 느꼈던 서울과 매우 흡사했다.
p.75 이방인
뉴욕은 나에게 어떤 곳일까. 어느 쪽이라 말하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는 뉴욕에서 미학적으로 훨씬 만족하고 있고, 그 이유 때문에 어쩌면 나는 고향보다 뉴욕에 더 끈끈한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붕 뜬 이방인 신세인 것도 그리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상처가 될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말과 관련된 이유일 것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
나 역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으로 상처를 입을 때가 많았다. 내가 취직했던 출판사는 주로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책을 만들던 곳이라 그런지 일반 출판사와는 다르게 패션 업계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다들 옷도 잘 입고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 제품만 쓰니까 알게 모르게 주눅이 많이 들었다.
작가들과 미팅 장소를 정하는 것부터가 낯설고 어려웠다. 다른 에디터들은 요즘 핫하다고 하는 장소, 사람을 얘기하는데
나는 도통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땐 사회 초년생이었고, 이제 막 서울에 올라왔고, 서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p.214
공기 속 단어들, 종이 위 시인들
신문 지상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미학적 조화를 쉽게 볼 수 없는 문화에서, 이미지가 가진 의미에 둔감한 사회에서, 독자가 읽고 배울 만한 평론이란 것이 부재한 문화에서, 텍스트의
시각적 미학을 평가하는 능력이 역사적으로 줄어온 문화에서 온 나에게 뉴욕타임스는 그동안 많은 자극과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나 내게 서울은
상처의 기억보다 성장의 기억을 더 많이, 더 자주 선물한 도시였다. 그녀는
로버트 크릴리 같은 시인과 인사를 나눌 수 있기에 뉴욕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나에게도 서울이 그랬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작가들의 강연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서점과 영화관과 미술관은 나에게 많은 자극과 즐거움을 주었다.
p.138
재즈 인 뉴욕
모국을 떠나 산다는
건 나를 구성하는 상당 부분이 그 의미를 상실함을 뜻한다. 이를테면 어떤 음악을 즐겨들었다는 일 따위가
그렇다. 롤링스톤스나 루 리드를 들은 것은 그렇다 해도, 산울림이나
동물원을 들으며 자랐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외국 생활 초기엔 대개 ‘취향의 공황’을 겪게 된다. 그
공황은 현지 문화에 대한 관심과 탐색을 통해 서서히 메워지는데, 내 경우에 그 공황의 틈을 타고 스며든
것이 재즈였다.
서울 사람이 아니었기에
쉬는 날이면 잡지에서 본 예쁜 가게를 찾아 부지런히 낯선 동네를 찾아다녔고, 서울 사람이 아니었기에
보고 싶은 전시가 있거나 관심 있는 저자의 강연이 있는 날이면 빼놓지 않고 다녔다. 덕분에
나는 서울 생활 초기에 겪었던 ‘취향의 공황’을 나만의 관심과
탐색을 통해 서서히 메워갔고, 그런 시간이 5년쯤 쌓이자
물건이나 옷을 살 때, 책과 음악을 고를 때, 사람을 사귈
때 실패하지 않는 나만의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p.22
좁게 살기
사는 방법엔 넓게 사는
방법과 좁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피카소는 넓게 살았지만 모란디는 좁게 살았다. 어떤 사람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두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두 명의 친구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하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만
하고 산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큰 집에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좁은 집에 산다.
좁은 집에 살려면 집에
두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불필요하고 탐탁지 않은 것은 과감히 내다버리는 것이 좋고, 그보다 좋은 건 애초부터 안목을 가지는 일이다. 그래서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곁에 두고 ‘크게’ 보며 살아야 한다. 그 방법만 잘 터득하면 좁은 집에 사는 게 그리 답답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난 지금 그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p.246
비싼 ‘여자들’
한 사람의 컬렉션을
들여다보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다. 허구한 날 카탈로그로 주문한 옷만 입어도, 맛없는 치즈를 내놓아도, 벽에 걸려 있는 게 흥미롭다면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벽에 걸린 게 부실한 이유가 돈이 없어 그렇다는 건 설득력이 별로 없다. 돈이 없다면 눈이 있으면 된다. 아이가 어쩌다 잘 그린 그림이나
잡지에서 본 사진을 오려 걸어놓을 수도 있고, 길거리에 흥미롭게 찌그러진 타이어라도 골라다 놓을 수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이라는 책에서 인상적으로 읽었던 글귀가 있다. "파리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를 품고 키워줄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진 도시를 선택하여
살 권리가 있다. 여행을 통해 낯선 도시를 적극적으로 느끼고, 그
가운데에서 자신을 품어 키워줄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나는 서울을 떠올렸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나를 품고 키워줄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진 도시. 나에게 그 도시가 서울이었다면 저자에게는 뉴욕이었다. 『나의 사적인 도시』는 뉴욕보다는 되려 나에게 ‘사적인 서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자신을 품고 키워줄 수 있는 도시를 이미 만난 사람에게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도 이 책은 근사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미 그런 도시를 만난 사람이라면 나처럼 이 책이 그간의 경험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사적인 도시를 찾아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게 만들어 줄 테니.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