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82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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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혁명 직전의 프랑스. 이제까지 세상에 없었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아무런 죄의식 없이 26명을 살해한 천재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그루누이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생선 잔해 더미에 버려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어떠한 체취도 풍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삶, 그것이 그루누이로 하여금 모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향수를 만들게 한 동력이 되었다. 결국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 사람을 살게 하기도, 죽게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소설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이 생각났다.

그루누이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향수보다 먼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인간 냄새'였다.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하는 이유였던 무취의 존재라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만들려는 것은 바로 인간 냄새였다. 물론 지금 만드는 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냄새가 달랐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냄새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기본적인 냄새. 사람들의 원시적 악취 속에 있을 때만 편안해 했고, 그 속에서만 안전하다고 느꼈다."(226)

이 대목에서 사람들 속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고자는 주인공의 절실함을 잘 느낄 수 있다.

또 주인공이 냄새에 집착하는 이유가 잘 나타나 있는 대목도 있었다.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냄새가 자신의 형제와 함께 그들 사이에 나타날 때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인간의 가슴 속에 들어간 냄새는 그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바로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236)

향수의 완성을 마무리지을 마지막 여성을 살해한 뒤 목격자의 증언으로 결국 그루누이는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려던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루누이가 완성된 향수를 뿌리고 등장하자 그가 처형되는 걸 보기위해 모인 사람들이 증오를 벗고 사랑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목격한 주인공의 감정변화가 역시 그도 상처받은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는 자신의 승리가 무서웠다. 왜냐하면 자신은 단 한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 그 일이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359)

살해당한 여성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향해 달려와 복수를 하기는 커녕 격렬하게 안기는 순간 그루누이는 형언할 수 없는 증오심에 휩싸이게 된다.

소설의 엔딩은 정말 최고였다. 그루누이가 다시 나타나자 사랑에 빠졌던 사람들이 그루누이를 만지고자 벌떼 처럼 모여들었다. 그의 일부분이라도 갖고자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루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소설의 엔딩이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은밀히, 잠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379)

공허함과 쓸쓸함을 쓰나미처럼 몰고 오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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