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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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 문학동네

익숙한 부조리를 낯설게 보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보다 칠십 리 장화를 인상적으로 보았다. 어쩐지 농담 같은 이야기가 앞 작품보다 썩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에 선명하게 주어진 환상이 어찌할 수 없는 아이의 천진함을 조명하여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154p 아이는 찬란한 아침햇살 다발을 어머니의 작은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 빛이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피곤이 덜어지리라고 생각했다.

 

책에서 기상천외한 설정을 걷어내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상황 또는 감정이 드러난다. 특이한 설정이 평이한 상황을 감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주목 효과는 좋으나 공감 효과까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나에게는 지나치게 유머러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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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의 바이올린 소녀성장백과 4
김효 지음 / 풀빛미디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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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예뻐서 눈길이 갔다. 한지붕 세가족이라니 최근에 본 응답1988이 생각났다. 재능이 있어도 부모들이 쉽게 시킬 수 없는 공부가 예체능이다. 율리는 운좋게 바이올린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약간 씁쓸해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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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누가 정해요? 소녀성장백과 2
김효 지음 / 풀빛미디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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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아직 현재진행중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를 보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딸의 인생계획을 짜놓은 엄마는 비록 극대화된 모습이기는 하지만, 최근 부모들의 양육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 지 씁쓸함을 느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꿈은 누가 정해요?>는 그에 비하면 매우 현실적이다. 꿈을 가지라고 권하지만, 막상 부모가 하는 일(머리핀 제조)을 하고 싶다고 하자 반대를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닌 먹고 살려고 하는 일에 자식을 들여놓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의 비애가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까지 이애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결국 직업 체험관에 가서 다양한 분야에 시야를 열어놓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고정된 꿈을 요구하다 못해 요즘은 그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꿈을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양한 의견을 들어주는 여유가, 아이보다는 오히려 부모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만 개의 가능성을 다 살피기에는 현재 삶이 각박하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마지막으로 결정하는 건 결국 아이의 몫인 것을. 게다가 아이의 꿈이란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니 벌써부터 조바심내지 말자. 


지금 나의 꿈은 진정 나의 것인가. 어른도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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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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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미있었다. 다만 중간에 트릭에 집중하면서 인물 심리를 얕게 다루어 아쉬웠다. 트릭이 지나치게 잘 풀려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가나코의 꿈이었나 싶기도 했다. 문명이라 일컫는 도시에서 존재성을 잃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두 여성의 입장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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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밀란 쿤데라 전집 9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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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속에 갇힌 정체성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쓴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다. 체코에서 태어난 밀란 쿤데라는 사회주의를 비판하다가 출판 금지 조치를 받으면서 1975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1989년 공산 통치가 끝나고 체코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본국에 임시 귀국하여 꾸준하게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정체성199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정체성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연인이 있는 여자가 알지 못하는 남자로부터 연애편지를 받는다는 흥미진진한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실재인지 혼란스러운 결말에 이르면 해석이 난감해지기 쉽다. 거듭 읽어야 다양한 키워드가 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정체성시선은 그 중 주제와 가장 가까운 키워드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줄곧 시선을 강조한다. “우리 발걸음 하나하나가 통제되고 녹화되는 이 세계, 커다란 백화점에서는 카메라가 우리를 감시하고, 사람들끼리 쉴 새 없이 부딪치고, 심지어 섹스를 한 뒤에도 다음 날 연구소 직원이나 설문 조사원으로부터 받는 질문을 피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감시에서 벗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CCTV 같은 기계뿐 아니라 사회제도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평생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현대인에게 타인의 시선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필연적인 요소인 셈이다.


변하지 않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정체성이 유지되는 동안은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 샹탈은 두 번 그런 시기를 맞는다. 첫 번째는 전 남편과 수년간 결혼 생활을 지속한 과거이고, 두 번째는 이혼하고 장마르크라는 연인을 만나 동거하는 현재이다. 그러나 정체성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면 삶은 매뉴얼화되고 사람은 권태에 빠진다. “그녀는 모험도 없고 모험에 대한 욕망도 없는 상태의 행복을 음미했다.” 모르는 남자에게 연애편지를 받으며 새로운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샹탈의 권태는 깨지고, 정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연인인 장마르크는 샹탈을 과거의 존재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샹탈의 변화는 곧 장마르크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시선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이 변하지 않는 일이 가능할까. 샹탈의 변화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현대사회의 또 다른 특징인 관계의 단절을 이 책에서는 가족의 해체(부부), 연대의 상실(친구), 무관심(직업)으로 차례차례 짚어준다. 관계가 단절되면 기존의 시선을 상실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선을 획득한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빠르게 쏟아지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 앞에서 샹탈은 정체성이 흔들리다 못해 급기야 자신의 이름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실종자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정체성이 지나치게 오랜 시간 고정되는 것만큼이나 급격한 변화 역시 존재를 죽음과 같은 권태로 이끈다.


꿈에서 깨어난 샹탈은 장마르크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접촉을 거부한 채 오직 보기만 할 거라고. 신뢰할 수 있는 타인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샹탈의 두려움은, 정체성을 찾으러 애쓰는 현대인들의 절박함과 닮아 있다. 마지막에 샹탈과 장마르크를 들여다보는 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여 틀 안에 가두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듯하다.


상징을 약간만 덜어줬다면 읽기가 편했을 듯싶지만, 복잡한 결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찰이 분명히 소설 속에 존재한다. 특히 체코에서 프랑스로,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큰 변화를 경험한 밀란 쿤데라이기에 그가 말하는 정체성은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서사로만 보면 연애소설로 끝났을 이야기에, 이토록 복잡한 미로를 얹어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밀란 쿤데라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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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2016-12-2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잡한 결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찰이 있다‘ 라는 문장에 어떤 의문이 해소 되었습니다. 깊은 성찰이 담긴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