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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그마니 홀로 남겨진 집..
자정미사를 앞두고 연락을 주신 어머님의 대모님 전화에 괜히 마음 한켠 쓸쓸해집니다. 며칠 전, 병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보이더군요. 조그맣던 눈썹달이 어느새 반달이 되고, 그렇게 동그마니 높이 떠 있던.. '달이 차오기 시작하는구나..' 핸드폰으로 달력을 찾아 눌러보고 알았습니다 이달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보름이네요. 달도 뜨고 눈도 올까...... 그랬지요. 그 달... 보았는지 모르겠어요... # 소파에 누워 있다 나도 모르게 선잠이 들었는지 깨어나보니, 어느새 자정을 넘긴 시간. 서너시간째 제 혼자 돌아가던 TV 앞에서 일으킨 몸은 푸석하고 영 개운치가 않고. 조용히 혼자, 그렇게 마주하고 있어야지 했는데.. 보름달, 마중도 못했네요.
부스스 몸을 움직여 창에 기대 서 봅니다. 창틀 꼭대기로 바짝 붙은 달이 보입니다. 보름을 넘긴 환한 달.. 조금씩 기울기 시작할, 달입니다. 거실의 불을 끄고 돌아서니 식탁 위에 떨어져내리는 부엌등의 불빛.. # 매듭달... 물끄러미 책상 위의 달력을 보니 12월은 매듭달이라고 써 있네요.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끄트머리 달... 늘상 익숙해있던 단어들이 어떨 땐, 아주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내 입으로 흘러나왔을 때 문득 깨닫게 되는 단어의 어감이라든가, 아니면 종이 위에 새겨진 그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서 얻게되는 시각적인 느낌들에서.. 새삼 그 단어의 뜻을 자꾸 되집고 곱씹게 되곤하는... 날짜감각도 요일감각도 무뎌져가고 있는 요즘에 연말이라는 느낌도 신년이라는 느낌에도 무감해지는 나에겐 그 말은 저만치 외따로 멀리 떨어져 있는 단어처럼 보입니다. 매듭, 매듭달... 좀처럼 잠들긴 힘든거 같고... 성탄절..
눈은 없지만 달빛 참 환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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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crois entendre encore, Caché sous les palmiers, Sa voix tendre et sonore Comme un chant de ramier! O nuit enchanteresse! Divin ravissement! O souvenir charmant! Folle ivresse! doux rêve! Aux clartés des étoiles, Je crois encore la voir, Entr'ouvrir ses longs voiles Aux vents tièdes des du soir! O nuit enchanteresse! Divin ravissement! O souvenir charmant! Folle ivresse! doux reve! Charmant souvenir! Charmant souvenir! .
. Je crois entendre encore Bizet, <Les pêcheurs de perles> Acte 1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 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봐요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한대수
그 밤, 저녁 찬비를 맞으며 병원으로 가는 길이 쓸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곁을 지켜봐주는 이가 말없이 바라봐주는 이가 있다는 믿음...
아프지만...아프지만은 않아요 슬프지만 슬프지만은 않아요...
나눌 수 있는 풍경이 있어 감사해요 머리로.. 가슴으로... 행복하길 바래요..당신이... 고마워요, 그대...
가지에 깃드는 이 저녁 고요한 색시 같은 잎새는 바람이 몸이 됩니다. 살금살금, 바람이 짚어내는 저 잎맥도 시간을 견뎌내느라 한 잎새에 여러 그늘을 만드는데 그러나 여러 그늘이 다시 한 잎새 되어 저녁의 그물 위로 순하게 몸을 주네요 나무 아래 멈춰서서 바라보면 어느새 제 속의 그대는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요 한 사람이 한 사랑을 스칠 때 한 사랑이 또, 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진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될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그러나 그럴 연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견디어내면서 둘 사이의 고요로만 수수로울 수는 없는 것을, 한 떨림 으로 한세월 버티어내고 버티어낸 한세월이 무장무장 큰 떨림으로 저녁을 부려놓고 갈 때 저 멀리 길 잃은 개의 짖는 소리조차 마음의 집 뒤란에 머위잎을 자라게 하거늘 나또한 애처로운 저 개를 데리고 한때의 저녁 속으로 당신을 남겨두고 그대,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 그때 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 슬금 산책이 오래 아프게 할 이 저녁 - 허수경,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잘 지내시죠...?
저도....잘.....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