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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장면 1. 2009년 6월 27일. 토요일 오후, 「대한늬우스」만 아니었다면 극장에 가서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던 <거북이 달린다>를 보았을 수도 있고, <트랜스포머-패자의 역습>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한 달간은 극장에 가지 않아야 할 모양이다. 인터넷으로 「대한늬우스」 동영상을 보고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안 그래도 자꾸만 늘어나는 광고 때문에 영화 보러 갈 때마다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내 돈 내고, 보기 싫은 정부 홍보물까지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장면 2.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밤. “언니랑 형부한테는 별 일 없는 거지?” 뉴스에서 시국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들 가운데 88명을 추려 중징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구에 있는 큰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큰형부는 서명을 했고, 큰언니는 하지 않았단다. 징계는 주로 간부들에게 떨어질 모양이니까 형부한테는 별 일 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는데, 언니나 나나 동시에 큰 한숨을 쉬고 말았다. 언니가 말한다. “이런 분위기가 될 줄 알았으면 억지로라도 서명을 했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부부 가운데 한 사람만 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언니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 우리 언니, 아직 안 늙었구나’ 싶어 슬몃 웃음이 난다.
장면 3. 1990년. 중간고사가 끝나고 선생님들, 아이들 몽땅 극장으로 몰려갔다. 극장에서 처음 영화를 보게 된 날이었을 것이다. 학교 측이랑 극장 측이 연계해 영화 상영료를 할인해 단체 관람하는 ‘문화교실’ 때문이었다.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어야 했던 불편함이다. 그때는 영화를 보기 전에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저 다들 똑같이, 왜인지 이유도 모른 채 하라니까 해야 한다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반골 기질이 다분했다기보다는 그냥 그게 낯설고 싫었던 중학생의 반항심이었을 것이다. 혼자 일어나지 않고 어정쩡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일어나라고 팔을 끌었지만, 왠지 그러기 싫었다. 당당하게 거부했다기보다는 눈치를 보고 있었던 쪽에 가깝다. 아마, 가까이에 선생님이 계셔서 눈이라도 부라렸다면 당장에 발딱 일어나고 말았을 것이다. 다만,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불편하고 답답했던 마음만 지금도 또렷할 뿐이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 황지우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처음 읽고서야 알았다. 그때 내 마음에 일어났던 파문은, 불편함은 당연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장면 4. 1989년. 어느 날, 아버지가 큰언니가 교사로 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 갔다. 학생이 아닌 교사의 부모가 학교에 불려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은, 큰언니가 전교조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다 큰 성인이 스스로 선택한 일을 가지고 집에 전화해 아버지를 부르는 일도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교장이 아버지를 불러 놓고 전교조 가입을 철회시켜야 한다고, 안 그러면 큰일난다고 협박(?)했다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시골에서 농사 짓다 아이들 공부시킨다고 대처로 나온 우리 아버지 같은 분께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은 큰언니에게도 어렵기만 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학교에 불려갔던 어떤 선생님의 아버지는 딸이 ‘빨갱이’가 되었다는 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던, 그런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 언니는 해직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랬다기보다는 착한 맏딸로, 대학 다니고 고등학교 다니는 동생들 학비 걱정, 어려운 집안 살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몇 해가 지나 전교조에 다시 가입한 뒤에야 해직된 선생님들에게 대한 부채의식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규석의 만화 『100℃』를 읽는 동안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 분명하다는 위기감이 점점 실체를 가지고 구체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 책이 그저 지나간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현재, 혹은 앞으로 다가올 ‘현실’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진심으로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지난 일들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규석의 작업이 지니는 의미가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작가는 6월 항쟁에 대해 문외한인 채로, 공부를 하면서 이 작품을 그렸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더욱 최규석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서 보여 준 비루한 현실에 대한 과감한 애정, 『습지생태보고서』에서 가감없이 그려 낸 바닥 생활에 대한 재치 있는 유머, 그리고 『사이시옷』과 『악!법이라고』를 작업하던 때의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작가이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가 최규석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은 『대한민국 원주민』이라고 생각한다. 최규석이 그런 따스한 작업을 되도록 많이,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까지 멋진 작업을 남겨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최규석이 시대를 외면하지 않는 만화가로 남아 주기를 또한 바란다. 사람들의 머리가 아니라 심장을 건드릴 줄 아는 작가로, 앞으로도 그의 새 만화책이 나올 때마다 기대감에 충만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00℃를 향해 끓어오르는 99℃를 기대하며,
극장에 가지 ‘못’하고 이러고 있는 우리들의 ‘지금’이 딱 99℃일 거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