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광대 이야기 -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청춘스럽게
우근철 글.사진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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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년전 <어느 젊은 광대 이야기>라는 에세이가 출간되었을 당시, 꽤나 읽어 보고 싶었습니다. 출간 당시 몇 몇곳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에도 응모를 해보았지만 저와는 인연이 없었는지,계속 미끄럼을 줄기차게 탔던것 같네요. 결국, 이 에세이는 나와는 인연이 없나보다 하며 마음에서 잠시 비워 두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라고 어렴풋이 마음의 작은 기억상자에 담아 두었었지요. 그리고 얼마전 우연히 친구따라 방문했던 카페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카페 주인님에게 살포시 빌려 오게 되었습니다. 2권짜리 소설을 지지부진하게 끌며 읽기를 마친 후 곧 도착할 서평 도서를 기다리며 , 가볍게 읽을 책을 고르다 이번 에세이를 집어들었습니다.  이틀, 삼일 정도 계획하고 집어 들었던 책인데, 하루만에 다 읽고 말았습니다. (웃음)

 

오랫만에 집어든 여행 에세이는, 한동안 잠잠했던 제 심장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늘 비슷비슷한 여행이야기, 늘 독자들에게 해주는 그들만의 일기같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젠, 지겹고, 진부하다고 생각할만도 한데, 왜이리 제게는 질리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갈증어린 두 손을 내밀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것이 제가 하지 못한, 겪지 못한, 소심하고 당당하지 못한 성격 덕분에 여행자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었는지도요,

 

 

그는(우근철), 대학 졸업후 1년이 조금 넘는 사회생활을 하던 어느날, 불현듯 자신의 찌들고 피폐한 모습을 거울속에서 발견하고, 느닷없이 떠납니다. 오랫동안 계획한 것이 아닌, 우발적(?)이였을지도 모를 그 결심이 확고해지자, 2년동안 모으던 적금 160만원과 게임기 , 자전거등을 팔아 9만원을 모았습니다. 돼지 저금통을 털어 8마넌을 토해내게 했고요, 그의 여행지의 목표와 목적은 '산티아고 순례자' 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하염없이 걷는 길을  따라가면 마지막엔 세상의 끝을 볼수 있다" 라는 글귀와 함께 실려있는 어느 순례자의 사진을 우연히 보았던 그날.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서도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 최소한의 여행 준비로 시작한 순례자의 길.

 

첫 해외여행이 순례자 라니, 한편으로는 그의 무대뽀 정신에 감탄했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결단력과 정신력에 놀랍기도 했습니다. 혼자였지만 자신이 힘겹게 한발 한발 내딛는 순례여행은 그 길을 함께 내딛고 있는 또다른 순례자라는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혼자가 돼서야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립기만 한 오늘, 이라는 그의 단상 속에서 내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무엇인가가 있었는지,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결국, 지독히 모자랐던 여행 경비마저 똑 떨어져 앞으로의 여정이 까마득히 , 암흑으로만 보일 때, 그는 여행준비를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방에 챙겨 넣었던 분장 크림통을 꺼내 들었습니다. 구걸 할수도 없었고, 그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값 조차 없었던 그에게 최선의 선택이였던 것이지요. 꽤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희귀한 분장을 하고, 거리로 나서서 어쩌면 아무도 봐주지 않을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공연을 할수 있을지, 심장이 터질듯한 긴장과 떨림은 그는 힘겹게 거리로 나와 판토마임을 시작하며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모자에 동전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근근히 힘든 순례여행길. 어느날, 그런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어느 한 봉사자가 그에게 써준 편지 한장, 어떤 내용인지 알수 없었던 그는,  이 편지로 인해, 그는 조금은 편한 여행을 하기도 했지요. 그는 여행을 하면서,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리고 낯선 여행자들에게서 뜻밖의 자신의 틀에 박혀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를 얻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둘이 만나 아무것도 모른채 함께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둘은 조심스레 서로를 경계하는 대신 같은 길을 걷는 동행이 되기도 했다. 내일은 북쪽의 맥그로드 간즈에 가자고 동의하고 기차표를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 어둑하고 눅눅한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곤은 그제야 내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는 음식을 삼키며 무심하게 말하길.

  

 "별로 중요한건 아니지만 내 이름은 곤이 아니라 론이야.

   직업과 나이와 결혼유무 등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때, 비로소 우린 여행자로 떠도는 거야." (174쪽).

 

 

 

 

그에게 이번 순례여행이 비록 힘들고, 고통스럽긴 해도, 자신과 함께 그 끝을 향해 걸어가는 낯선자가 곧 피를 나눈 진한 형제와 같은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서투른 영어로, 온몸으로 표현을 해도, 알아듣고 함께 웃어주는 여행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힘겨울때 , 부족하지만 선뜻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친절함과 다정함이 있기도 했고요. 힘겹고 고난한 순례여행을 하는 그들을 위해 앞서 떠난 많은 순례자들은 자신의 물건들을 숙소에 남겨두는 배려심도 있었습니다. 우유와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경비를 아끼고 아끼는 그에게 , 선뜻 음식을 내어주던 어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도 있었고요, 또한 기타연주를 하던 어느 악사옆에서 판토마임 공연을 하던 그에게 다가와 자신이 오늘 벌었던 전부를 그의 모자 속에 쏟아붓고 그를 살며시 안아주며 "Buen Camino"(좋은 여행이 되길, 축복받은 순례길이 되길.. )라고 말하던 악사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 여행의 길에서 어쩌면 모든것을 홀가분히 털어버리고 , 싶은 마음에 고통스럽고 힘든 여행길을 선택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 오히려 이번 순례여행은 깨달음과, 많은 여행자들, 친구들, 추억들, 그리고 틀에박혀있던, 자신의 고정관념적인 생각들을 모두 깨울수 있었던 아주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지 않았나 싶네요.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화살표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일말의 의심없이 화살표를 따라 걸을수 있다면 순간순간 갈피를 못잡고 고민하며 방황하지도 않을 거고, 인터넷 창만 열었다 닫았다 하며 무의미하게 하루를 낭비하지도 않을 텐데. 환경을 탓하고 부모를 탓하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위안 삼는 비겁하고 나약한 나와 마주하진 않을 텐데.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이쪽이 더 좋은 길인지, 지금 내가 제대로 가긴 하는 건지, 언제나 갈림길 앞에서 주변을 살피고 망설이며 주저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다수가 걷는 길을 쫄레쫄레 뒤쫓게 된다.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며 바른 길로 간다는 건, 내 발걸음을 믿어야 하는 건데, 나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믿어보지 않은 것 같아.

 

 

 

읽는 내내, 여행의 갈증이 더욱 깊어갔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설레임보다는, 다시 보지 못할지라도, 그 순간 함께 하고 , 추억을 나눌수 있는 여행길에서의 여행자들을 만나는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기도 했고요, 문득 . 내 스스로에게 가슴 답답함의 조여옴을 느껴집니다. 수순대로 나의 삶을 돌아보지 않은채 , 안정된 길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로는 끝없이 이어져 있는 그 곧은 길에서 잠시 옆을 돌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늘, 그렇지 못함은 아마 두려움과 소심함이 먼저 내 가슴을 옥죄고 있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발 한발 내딛는 지금의 내 삶, 인생의 길을 제대로 선택한 것인가, 문득 두려움이 급습하기도 하고, 망설이다 끝끝내 손을 놓아버린 몇번의 인생의 어느날의 후회도 스물스물 떠오르던 1월의 끝자락에서 쓴웃음만 ,

 

그는 말합니다.  가장 좋은 때는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때다. 20대든, 30대든, 40대든, 50대든, 내가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가 이팔청춘이다. 무모하고 대책 없던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무작정 배낭을 들춰 멜 수 있는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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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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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얼핏 대형 서점에서 스치듯 표지만 힐끗 보곤 고개를 돌렸던 책이였고, 또 한번 찾은 서점에서는 유심히 스르륵, 넘겨 보았던 책입니다. 결국 , 잠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 끝에, 제 손에 쥐어지게 된 에세이 집이지요. 익숙한듯, 낯설은 영화평론가 이동진님의 에세이. 그렇게 첫번째 책인 <밤은 책이다>로 질긴 인연의 끈을 단단히 잡았습니다.  처음엔 그닥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욱 선뜻 손이 가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이상하게 책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언가 참 마음에 듭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촘촘히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책으로 둘러싸인 벽에 기대어 가만히 사색에 잠기듯, 혼자만의 그 시간을 보내는 한 남자의 모습이요. 참 무언지 모른 따스함이 몸안으로 스며드는 기분이랄까.

 

느린 책읽기의 습관이 몸에 베인 제게 , 잠시 토끼처럼 빠른 뜀박질을 보여주듯, 이동진님의 에세이는 손에 잡은지 단 이틀만에 제 손에서 다시 벗어났습니다. 오랫만이네요, 최소 일주일, 최대 한달 가까이를 늘 한권의 책을 읽기까지 지지부진하게 참 오래 품에 안고 지냈는데 이런 제게 이런 현상은 '기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요일,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 무렵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열이가 메일로 잔뜩 보내 주었던 애정스러운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플레이 하고선 말이지요.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반드시요. (웃음)

 

 

 

아,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덕지덕지 플래그잇을 붙이기도 오랫만이고요, 왠지 모를 찡함에 코끝이 시려 오기도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이 에세이는 76권의 적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책 이야기들이 짧막하게 담겨 있습니다. 인문, 교양, 예술, 문학, 과학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지요. 저와는 벽을 만든채, 친해지지 못한 분야들에게선 살짝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 책은 단순히 책 소개가 아닌, 책 속의 일부분을 이야기 하면서 그 속에서 또다시 얽힌 저자 자신의 이야기, 또는 우리들의 일상, 삶, 어쩌면 익숙한 지금의 시간 속에서 잠시 그 존재들을 잊고 사는 소소함의 어떠한 것들로부터 소중함에 있어 깨우침(깨달음)을 주고 있어요.

 

  제게 밤은 한 권의 거대한 책입니다. 곧 밝아올 새벽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짙은 어둠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은 오전 세시. 고요한 한밤의 서재에서 여러 권의 책을 뒤적이며 읽다가, 계속 미루기만 했던 이 서문을 씁니다.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장 내밀하게 이어지는 통로이겠지요.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된 책들은 보다가 멈추어 고개를 드는 순간 제게로 변형된 채 틈입해 들어오던 그 깊은 밤의 상념들을 이제 당신에게 보냅니다.   이 책을 읽다가 당신도, 문득, 수시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프롤로그)

 

소근소근, 자장가를 들려주듯 참 조용하고 , 속삭임 같은 같은 책입니다. 나른하게 또는 , 부드럽게 곁에서 이야기를 해주듯, <밤은 책이다>는 그런 느낌의 텍스트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프롤로그 에서처럼,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잠시 고개를 한 번, 두 번, 세 번, 어쩌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번 들기를 반복하며 단상에, 상념에 몽상에 빠져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잠이 들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유독 새벽이 길었던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 잠들지 못한채 라디오를 켜고 책에 고개를 파묻혔습니다. 문득 라디오에서는 "이동진의 꿈꾸는 다락방 (am 02:00 - am 03 : 00)"이 흘러 나오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이동진님의 목소리가 왠지 참,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마지막 모습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했던 행동,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이 긴 시간 동안 마음의 우물에서 계속 울려대는 것이지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을 통과하고 있는 그때, 우리는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감사와 사랑의 말이 있다면, 가능한한 매순간 하고 살아가야 하는게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게 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존재니까요. (60쪽)

 

눈으로 음미하듯, 마음으로 다시 되새김질 하며 아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중, <세월/ 마이클 커닝햄 지음>이란 소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이동진님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 부분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옴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텍스트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또다시 상념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진짜의 나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것이 위선이나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꾸며 보이고 거짓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일은 나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작위'라는 말을 알게 된 뒤부터 그런 의혹은 사라졌다. 나의 분리법은 위선이 아니라 작위였으며 작위는 위선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부도덕한 일은 아니었다. (302쪽. 책 속의 책 '새의선물/은희경')

 

<밤은 책이다> 이 에세이는 많은 분야의 책들을 소개하고 이야기 하지만, 전혀 지루함이나, 지겨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힘이 되었고 비타민이 되었던 것 같아요.  편향 되어있는 저의 책읽기에 작은 기틀을 만들어준 셈이죠. 참으로 세상에 다양한 책이 있음을 새삼 느끼기도 했고요, 살며시 책 속의 책들을 가만히 메모해 놓기도 합니다. 영화평론가 이면서도 책에 관한한 이동진님의 박학다식함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진정으로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깨알만큼 알수 있었고요.

 

이 책은 잠이 오지 않는 늦은 새벽의 시간과,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음악을 함께 , 살며시 천천히 읽으시길 권해 드리고 싶답니다. 그래야 책 속의 오묘한 그 맛을 느낄수가 있거든요. 시끄러운, 혼잡한 곳에서 읽는다면, 오롯이 텍스트를 눈으로 훑어 내리는 행위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러면 또한 감흥도 당연히 느낄수 없는 것이겠지요. 참으로 오랫만에 두고두고 , 가끔씩 들춰보고 싶은 에세이가 한권 생겼습니다. 덕분에 저의 Wish List는 조금 더 풍성하게 빵빵해 졌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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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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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의 첫 번째 소설 <변호 측 증인>을 집어 들었습니다. 1월 1일의 시작과 함께한 책이지요. 하지만 이제서야, 열흘이 가까워지는 지금에서야, 책의 마지막장을 겨우 덮고,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저보다 발빠르게 읽으신 분들의 단평들을 보면 하나같이 "대단하다" 라는 호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완벽하고 철저하게 속을 수밖에 없는 '반전' 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심심치 않게(하지만 제겐 가끔) 일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즐기는 저이기에, 매번 이렇게 서술트릭으로 오묘하게 독자를 속이는 소설들을 제대로 한번도 통쾌하게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지 이번 소설에서도 크게, 꼭 반전을 확실히 맞추겠다는 강한 의욕 보다는, 그냥 물 흐르듯이 소설 속 이야기에 파묻혀 읽어나가야지, 하며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재벌가의 방탕한 외아들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 스트립 댄서 미미 로이는  행복한 신혼생활을 위해, 그리고 남편의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며느리이자 가족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 합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하면서 지극히, 소소한 그녀의 꿈은  시아버지가 살해되면서 철저히 짓 밟히고 말지요.  시아버지가 살해 되던  그날 밤, 결혼을 반대했던 시아버지에게 남편은 폭언을 내뱉고. 남편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 어쩌면 용의자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위증을 하게 됩니다.

 

늘 그렇지만, 트릭이 있는 소설을 읽을때면 다른 책을 읽을때와는 다르게 2배는 더 집중하며, 텍스트 하나하나를 세심히 , 집요하게 읽어가는것 같습니다. 가볍게 읽어야지 마음을 비웠으면서도, 읽은 독자인 저에게는 내심, 약간의 승리욕구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소설 역시, 늘 그랬듯, 책의 내용 보다는 우선 "서술 트릭"이란 점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물 흐르듯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이하게 흘러가는 소설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어찌보면 타 추리 ,미스터리물에서 볼수있는 복잡하고, 각종 장치, 또는 화려한 스토리로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는 반면, 이 소설은 그에 비해 참으로 단순함이 느껴지지요, 살인이 일어났고, 범인들이 지목되고, 취조를 하고, 아주 고전적인 형식으로 하나씩 범인을 추스려 갑니다.

 

그렇게 이야기의 전개는 어찌보면 진부하고 식상한듯 하지만, 묘하게 끌림이 있습니다. 자꾸만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은 은근한 충동이라고 해야 할지요, 쉽게 읽히기에 그리고 이 평이한 이야기를 가지고 어떠한 결말을 안겨줄지에 대한 오묘한 기대감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책의 텍스트를 따라, 시선도 함께 그 뒤를 쫓다보니, 어느덧 결말 부분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지요, 하지만 오히려 저는 , 도대체 어느 부분이 반전이라는 말인지,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그냥 책을 읽었을뿐, 옳곧은 방향으로  결말이 된 이 소설이 어디서 반전인건가요? 다른 독자분들의 호평속에서 "속을수 밖에 없다"라는 단평들을 보며 , 잠시 제가 이 소설의 반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당황스러움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저의 당황스러움은 다른 분들의 서평을 잠시 읽어보면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독자들이 착각 할수 있는 트릭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부분에서 있는그대로 보았나 봅니다.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이 소설의 결말을 보고도 무덤덤히 책 장을 덮었던 이유도, 이 소설을 읽은 다른 독자분들처럼 앞 페이지를 다시 뒤적여 보지 않았던 것 또한, 텍스트들이 그려주고 있는 그림을 그대로 보았던 때문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하~! 저에게 이런 경우도 있네요, 이 소설 뒷부분에 있는  소설가 미치오 슈스케의 해설을 읽다보니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그 그림은 당신 자신이 그린게 아닌가요?" 라는 질문에서도 알수있듯, 소설을 읽다보면, 그 상황들을 머릿속에 자신만의 이야기로 그림을 그려 나갑니다. 밑그림을 그린후, 점점 또렷한 색채를 넣고, 그리고 완성해 갑니다. 결국 어떻게 그림의 기초를 잡느냐에 따라 독자는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거지요.

 

결국 <변호 측 증인>은 저에게 단순히 법정 스릴러, 추리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지지부진 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흥미롭게 읽히는 가벼운 추리소설임에는 분명한듯 하네요. 1963년 이란 50여년전에 출간된 고전 추리라는 점을 고려해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이 얼마나  디테일 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잘 쓰였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많은 양의 책을 읽은 것도, 더욱이 추리 분야를 많이 접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서술 트릭면에서 가장 감탄했던 소설은 아마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이 아니였나 생각이 듭니다. 그에비해 <변호 측 증인>은 어떠한 대단한 반전이나 감탄을 느낄 정도로 쾌감을 느낄 수 없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는 소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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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여우 발자국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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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 단정짓고 읽는 고전동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 <모던 팥쥐전>은 제가 조선희님의 소설을 처음 접한 첫번째 이야기 였습니다. 그 단정이라는 것이, 가끔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하고, 뜻밖의 이야기의 흐름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아마 <모던 팥쥐전>이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고전동화를 현대 소설의, 현대물로 조금의 변화를 주었을 뿐일 거라며, 책을 펼치기도 전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내용의 소설은 정말 때로는 섬뜩함과, 때로는 뒷골이 땡기는 전율을 제게 주었지요, 극도의 공포심도, 흥분의 스릴감도 아니였지만, 스물거리며 올라오는 찌릿한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을 잊을수 없어, 조선희님의 두번째 소설을 집어 들었습니다. 유난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조선희님의 판타지는 또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줍니다. 그녀만의 매력적인 오묘한 소설의 이야기가 제 눈을 즐겁게 해주니 말이지요. 이번 소설 역시 판타지의 느낌이 다분이 들어가 있지만,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음에, 아주 재료들이 잘 섞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 대로 믿을래? 들은 대로 믿을래?  소설이 시작되기 전,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이 문구는 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야, 어떠한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수 있습니다. 소설의 이야기는 30년차를 둔 과거와 현재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반복되듯 교차되며 보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현실이 아닌 환상속 이야기를 현실로 불러내는 묘한 목소리를 가진 여인 우필과, 실체를 환상으로 , 환상을 실체로 보는 태주를 통해서 말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발자국'이란 공통된 의문을 가지고 있지요.

 

발자국은 다른 발자국을 끌어들이지. 뒤따르는 발자국이 오면 이야기는 앞으로 나가는 법이야. 발자국을 따라와, 그럼 다음 이야기를 들려 줄게.(304쪽) / 자기가 남긴 발자국을 돌아보는 사람은 드물어. 아마 다들 자기가 발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을걸.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이상하다고 여길 필요 없단 거야. 어쩌면 그건 발자국이 아니라 책장을 넘기는 손자국일수도 있지. 우리 눈은 언제나 합리성에 근거해 착각을 일으키니까. 땅바닥에 있어야 하는 건 손자국이 아니라 발자국이어야 하거든 (314쪽) / 나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너의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 들이지 (315쪽)

 

두 사람의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어느 지점에 다다라, 모호한 경계선에서 교차되면서 소설을 읽는 저에게까지 혼란을 안겨 주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허구와 현실을 가려내려고, 이야기속에 스며들어, 판가름을 하려 부단히 신경을 곤두 세우고 읽어내려 갔습니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의 마지막쯔음 다다르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러한 노력과 생각들이 허무감으로 변해 버립니다.

 

소설은 어떠한 해답을 명백히 드러내기 보다는, 독자에게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그것은 역시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생각으로 이 소설을 읽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지기 떄문이지요. 현실과 허구의 판가름의 중요함보다는 , 어쩌면 지금 자신의 삶 또한 어느 한 이야기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며칠전 보았던 영화 <래빗 홀>이 생각 났습니다. 평행우주란 세계에서 현실의 나 처럼, 또다른 내 자신이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던 그 한 장면이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도, 각자의 삶에서 , 스스로가 세상에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그렇듯 세상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니 말이지요.

 

마지막의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소설 속, 때로는 영화 속 등장 인물에게, 배우들에게 자신을 살며시 대입해 보며, 어쩌면 소설과 영화속의 이야기들을 환상으로, 상상으로 만들어가며 이야기 자체 속으로 자신을 개입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의 또다른 자신만의 이야기가 만들어 지는 것이지요. 책을 덮으면서 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 어떻게, 어떤 평범하고, 루즈하고, 단순한, 어쩌면 보편적인 스토리로 마침표를 찍을지 말입니다. (웃음).

 

<거기 여우 발자국> 이 소설은 참, 잘 읽힙니다. 물 흐르듯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 몽환적인 판타지 요소를 담고있으면서도 독자들의 시선을 오묘히, 은근히 놓치지 않으려는 매력적인 끌림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벼운 소름을 느낄수도 있고, 때로는 기묘한 목소리 , 어쩌면 모호한 음성을 가진 우필의 음성이 실제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 발자국을 따라가면 그 끝은 어디일지, 궁금증이 과하게 증폭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마침표는 독자의 몫일 뿐입니다. 저 또한 이렇듯 확실한 결말을 내리지 못했지만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 졌는지, 궁금해 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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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벰버 레인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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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그녀에게서 이 소설을 선물 받은지 딱 한달 만에, 나는 이제야 리뷰를 쓰려고 합니다. 사실, 책을 집어든지 2주, 그리고 한 페이지도 들춰보지 못한 채, 2주가 지난 어느 휴일, 가벼운 열감기와 함께, 침대속에서 잉여스럽게 이 책을 집어든채, 꼼짝없이 모든 텍스트를 읽어 내려 갔습니다. 마냥 이재익 이라는 이름이 반가웠을뿐, <압구정 소년들>이후, 두번째 내게 읽힌 소설, 그 뿐입니다. 단지 '몰입이 강한 그의 문체에 반했을 뿐이다.' 라고 하면 .. 이유가 되는지요. 어찌보면 도톰해 보이지만, 책 속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사진들이 , 어쩌면 이 소설을 읽는동안 속도를 배가 시켜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첫 장을 넘기기 전 , 표지 뒷면에 적혀 있는 카피글이 강한 유혹과 의문을 만들어 냅니다. "한 여자와 두 남자, 그리고 작은 방에 관한 이야기 . - 사진이 있는 연애소설" 이 카피글을 보면서, 오롯이 저만의 상상만으로, 책 속을 빼곡히 채우는 이야기를 만들어 봅니다. 그렇지만 한 여자, 그리고 두 남자, 작은방... 이란 단어들의 부조합스러움에 결국, 짧은 단상은 사라져 갑니다. 첫 페이지의 프롤로그 . 그녀가 단지 '프롤로그'만을 쓴채 더이상  채우지 못한 그녀의 이야기들을 이재익 작가는 , 고스란히 그녀의 기억과 추억을 대신해 한권의 책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이렇듯 텍스트로 써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요?)그 미련이, 그 추억이 그렇게, 미친듯 그리웠는지요.

 

서른살의 그녀(준희)는 한번도 자신의 애인에게서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단 한순간도 설레임이 그녀에겐 없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말입니다. 준희는 우연히 혼자 하게 되었던 싱가포르 여행에서의 또다른 인연. 4살 연하의 희준에게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속 북소리를 듣지요, 둥둥둥.... 어찌해야 할까요... 준희, 그녀 말입니다. 준희, 희준 . 두 사람의 사랑은 짧은 인연으로 스치듯 끝날줄만 알았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불륜을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단 한번도 '불륜'이란 단어를 끄집어 내지 않습니다. 오롯이 준희와 희준의 사랑을 , 맑은듯, 순수한듯 , 그렇게 포장하고 표현하고, 이야기 하고 있을 뿐입니다.

 

소설속 이야기라고만 치부 하기에는(실화라는 이야기에 더더욱 그럴지도요) 제 마음의 그릇이 아직 텍스트를 그대로 고스란히 흡수하지 못함에 , 그리고 그 두사람의 사랑에 공감 하기에도, 제 마음은 그리 녹록지 못함에 더욱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하면서도 , 꼭 소설속 이야기만이 아닌, 어쩌면 또다른 그녀들, 또는 그들이 자신의 반려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모습에서, 비난과 비판이 아닌, 왠지모를 그들만의 사랑에 마음이 동요 되기도 합니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할수 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그 뿐입니다. 단지 그뿐! 저의 생각와 심장은  두 갈림길에서 각기 다른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머리속 생각은 이해는 하지만 , 마음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벽을 쌓고 있으니 말이지요.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며 영화 <사물의비밀>에서의 자신의 불륜을 지독했던 사랑이라 이야기 하던 어느 한 여인과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의 수애와 김래원의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는 과연.. 그러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있을까.. 하는 의심의 마음은 늘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말입니다.) 그 이유가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른, 기억 속 한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책을 읽다 멈칫 떠오른 한 사람의 흐릿한 그림자는 다시금 조용히 저 깊은 어둠속 깊은 유리 파편 같은 조각이 된채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심장 깊게 새겨진 생채기는, 기나긴 시간과 함께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 더욱 차갑고 단단한 심장을 갖도록 만들어 버렸는지도요.

 

그래서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느끼지 못했던 , 결국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그들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이해 하지 못함에 있어, 망상이였고, 모순이라고 단정 지어 버립니다.  그들에게는 애틋하고 , 순백같은 사랑이였을지라도, 저에겐 단지 , 받아 들일수 없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더이상은 흡수하지 못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만약, 실화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오롯이 소설속 그들이였다면, 조금 더 있는 그대로 , 그들만의 사랑 방식을 이해 할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답게 꾸며졌으나, 결국은 두 사람의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이였고, 두 사람만의 애절한 마음이였을 뿐입니다.  분명히 가독성은 있지만, 책을 덮은후 무언가 모를 공허함이 찾아오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메마른 가을날의 낙엽처럼, 더이상 두근거림을 느끼지 못하는 저의 심장이 문제 였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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