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꽤 오랜 시간, 2주동안 내 손에 꼭 쥐어진, 그 긴 시간만큼 읽는 것 또한 느릿한 거북이 마냥  활자를 읽어나간다. 공선옥 작가에 대해서도, 영란이라는 제목의 소설책에 대해서도 크게 감흥이 없던 것 또한, 계속되는 무미건조함의 메마른 감성 때문이겠지. 그런 감흥없이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책 한권, 처음 몇 페이지는 느닷없는 사투리에 그리고 왠지 옛스러운 문체 덕분에 더욱 책 읽는 속도에 느릿함을 더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것 또한 잠시뿐, 오랜시간 느릿하게 읽긴 했지만, 한 페이지 ,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책 속 인물들의 매력에, 정겨움에 나 또한 함께 웃고 함께 가슴 아파 미어지기도 한다 . 그 이유가 무얼까? 도대체... 책 표지에 한 여인의 쓸쓸함이 잔뜩 베어나오는 뒷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여인이 아마 영란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겠지, 딸랑 이름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책을 덮은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 여인, 영란. 이 여인의 이름은 영란이 아니였다. 이름없이 '나' 라는 명칭으로 시작되는 그 여인, 사고로 아들과 남편을 잃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삶에 대한 어떠한 의욕도 가지질 못하던 어느날 남편이 유일하게 인세를 지급하지 못한 사람, 남편의 선배이자 소설가인 이정섭을 만나게 된다. 엉망이 된 집안의 그녀가 안쓰러운 정섭은 몇일을 그녀를 챙겨주던 어느날 친구 비보를 듣게 되고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기에 마음이 불편하여 그녀를 데리고 친구의 장례식장인 목포까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렇게 장례를 치루고 정섭은 그녀를 목포에 두고서 홀로 서울로 돌아온다. 그녀가 혼자 남게 되고 그곳에 자신도 모르게 터를 잡게 된다. 그곳에서 지내던 그녀와 그리고  '목포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듯 하다.

 

삶에 대한 희망도 의욕도 없던 그녀가 우연히 영란 여관이란 곳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여관집 주인 할머지는 그녀에게 '영란' 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조금씩 삶에 대한 자신이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삶의 좌절 앞에서 찾아온 그 '숨'의 가느다란 끈을 잡을수 있었던 것 또한 영란 여관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함으로써 작은 빛을 띄우는 거겠지.

 


 

가수는 노래 하나로 세상을 보듬아분단다. 존 것만 취하지 말고 아픈 것도 다아 니 품 안으로 보둠어부러라.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마는 노래도 목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부르는 것잉게. 세상 아픈 것 짠헌 것 다아 보듬어 불면 큰마음이 될 것이다. 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그 얼매나 니 노래를 사랑하겄냐. 다들 좋다고 허제 싫다고는 안 헐 것이여 _ P 88



 

한번 가버린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이제 산정동 성당 소나무 숲 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종소리를 듣던 그 저녁의 행복 또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을 알기에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현실에서의 행복은 떠나갔지만 내 마음속 행복은 영원히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_ P 132


 

책을 읽는 동안 등장하는 어느 인물하나 마음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 하나같이 자신들의 아픔을 숨기고 그 아픔을 또다른 사랑으로 이겨 내려 하는 그들, 그들의 사투리의 정겨움도 그리고 삭막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든 정겹고 따뜻한 마음들도, 영란에게는 아마 그런 그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삶의 또 다른 의욕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이정섭 또한 자신이 책임감 없이 영란을 두고온것이 죄책감이 들었던걸까? 목포를 다시 찾은 정섭 또한 그 이유만이 아닌 또 다른 알수 없는 '얻음'이라는 선물이 있었겠지. 참.. 정겹다. 그냥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목포에 사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정겹고 따뜻할까?'라는 궁금함과 나 또한 단지 '목포' 라는 지명만 알고 있을뿐 그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그곳에 한번쯤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힘은 없어도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까

누가 상 줄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나 자신을 탓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미워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원망하면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자신을 자기가 예뻐해 주는 것, 그것 뿐이더라고 _ P 200


 


 

나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의 마음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써 많이 기쁠 것이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처음의 무관심히 읽기 시작했던 책한권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 마음속에서 따뜻한 등불을 켜놓는듯 괜시리 베시시 지어지는 미소는 어떤 이유일까? 어쩌면 조금은 공감을 했고,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괜한 동질감에 내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 그랬을꺼라고, 그냥 자연스럽게 믿고 싶어진다.

그래,공선옥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했듯이 나 또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의 마음의 얻음이 있었으니 그녀도 기뻐하지 않았을까?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나처럼 무언가의 얻음이 없더라도, 무미건조하고 우울함으로 부터 잠시마나 위로가 되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작은 반창고 같은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믿고싶다. 현대의 이야기 속에 옛스럽고 촌스럽다는 문체라고 느껴졌던 것도 작가만이 가질수 있는 매력적인 무기 였을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왠지 오랫만인것 같아, 히가시노 게이고님의 책을 손에 든건.. 반가움도 잠시 또 한편의 단편집이라는 것을 알고선 가벼운 실망감 또한 찾아들어왔지만 그래도 오랫만인 그의 소설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수 있을것 같아. 아마 내가 유독 쉽게 빠져 들지 못하는 단편집이긴 하지만 그의 이름만큼, 그리고 명성만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란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를 믿을래요. 또한 그의 수많은 책들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가장 가슴 아팠던 <방황하는 칼날> 만큼은 아닐지라도 가볍게 시작할수 있을거란것을 알기에.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니 다섯 편의 차례가 나온다. "위장의 밤, 덫의 내부, 의뢰인의 딸, 탐정 활용법, 장미와 나이프" 히가시노 님 답게 제목에서부터 왠지 추리의 느낌이 폴폴 뭍어 나는거 같아, 일반 단편들보다 오히려 추리소설을 단편으로 쓰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 사건의 동기, 풀어가는 단계, 그리고 독자들에게 감탄과 놀라움을 선사할수 있는 반전 또한 꼭꼭 집어 넣어야 하니까, 이 소설은 제목답게 탐정클럽에서 사건들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탐정이란 인물은 왠지 사건의 주위를 맴도는 해결사 같은 느낌이 든다.

 

현관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키 큰 남자와 같은 색깔의 재킷을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30대 중반이고 도저히 일본인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 윤곽이 뚜렸했다. 여자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새카만 머리칼이 어깨까지 늘어졌고 위로 길게 찢어진 눈에 입술을 꼭 다물고 있다. _ p46 <위장의 밤>

"사건의 결말은 당신이 정하는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자료를 보면 아마 당신도 우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결론을 가지고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_ p81 <위장의 밤>

내가 느끼는 책 속의 탐정은, 무뚝뚝한 감정없는 말투, 그리고 함께 활동하는 조수 여인 또한 왠지 베일에 가려진 느낌에 묘한 매력까지 가진 느낌이 든다. 그것이 어쩌면 그들의 설정일수도 아니면 말그대로 사건을 맡아 처리하다보니 어떠한 감정을 표현할수도 없었던게 아니었을까? 어쩌면 조금은 무심하게 표현되고 쓰여진 설정의 설정이 5편의 사건들을 더욱 돋보이고 그 사건에 몰입할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유층만이 가입할수있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탐정클럽. 그만큼 일어나는 사건들은 모두 자신들의 부(富)를 위한 것이겠지,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야기의 전개가 만약 탐정을 중심으로 쓰여졌다면, 어쩌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보조 역할을 하게 되고 또한 진부하고 지루한, 감흥없는 소설이 됐을수도 있으니까 , 그렇지 않았기에 나 또한 추리를 해가는 재미에 빠져 조금은 천천히, 그리고 앞 페이지를 다시 뒤적이며 퍼즐을 맞추듯 읽었던 듯 하다. 하지만 많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름을 기억하는데에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더욱이 일본 이름들은 너무 어려워!) 이 단편들중 그래도 <탐정활용법>이라는 4번째 이야기를 읽었을때 나름 범인을 맞추었다고 확신했는데, 역시 내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가고 말았어(좌절).하지만 그런 좌절감도 잠시! '내가 사건의 해답을 맞출 정도로 짜여진 소설이라면 너무 평범 했을지도 몰라(큭큭)'라며 혼자 내심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한다.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교묘하게 위장하면 간단히 세상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당신들이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일은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탐정 클럽의 회원 수준이 너무 낮아지다 보니 이런 일에 휘말려 들고 만 겁니다"

탐정은 등을 돌렸다. 여자 조수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럼 또"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_ p259 <탐정활용법>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는 다른 어느 일본 작가보다는 무언가 다른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추리로만, 그리고 재미로만 독자를 끌어들이려는 것보다는 추리 속에 무언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세지가 분명히 스며있다는 것(?), 내 스스로는 그런 느낌이 절대 나만이 가지는 것이 아닐꺼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절대 쉽게 그 추리를 풀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임에도 분명하다는 것 또한. 여전히 책 읽는 것에 대한 정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오랫만에 가볍지만, 강하게 무언가 가슴에 남는 추리한편을 읽음으로 괜시리 마음까지 뿌듯함이 베어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단편 소설 한권이 제 품에 안기게 되었어요, 두껍지 않은 318페이지의 책 한권을 읽는데 꼬박 2주가 걸린것 같아요. 9월과 함께 시작된 저의 정체기는 10월에도 여전히 제 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 더욱이 단편이라는 점에서 더욱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단편집은 별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늘 누누히 말하지만 문맥이 끊기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음, 아마 그럴꺼에요. 책을 읽는 시간동안 책 속에 파묻혀 그대로 느끼고 그대로 몰입되고 싶은데, 단편집은 아마 그러기 힘들꺼에요, 몰입되는가 싶은 순간, 한 가지의 내용이 뚝 끝나 버리니까요. 아마 그래서, 짧은 이야기가 싫어서 괜시리 미루고 미루고, 자꾸 다른 장르의 책을 고르는것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든 내 품에 안기게 된 책이니 읽기는 해야겠지요.

 

작가 기시 유스케. 추리소설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검은집> 이라는 유명한 책을 아실꺼에요,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황정민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검은집"의 그 유명한 작가가 맞아요. 저 또한 영화로 먼저 접한것 같아요, 추리, 스릴러물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 눈에 띄는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정도니까요, 제 기억으로도 꽤 영화가 소름 돋을 정도로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그 이후, 아주 오랜뒤에 이 영화가 책이 원작이라는걸 알았지요, 그리고 <검은집>이라는 책 또한 우연히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미 모든 내용을 알고있는 터라 딱히 책의 끌림성은 없지만,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영화보다 책을 다시 읽어보라고... 아마 그 무서움이 배가 될거라며.. 저에게 안겨준 책이에요,

 


 

그는 일어서서 형광등을 끄고 살며시 거실 문을 닫았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천장 주위에서 숨을 죽이면서.

이 집에는 분명한 무엇인가가 있다. 불행을 부르는 무엇인가가.

그 날도 그러했다. 그날도 하루 종일 무엇인가가 지켜보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_ P100 <도깨비불의 집>



 

세상 사람들은 타란튤라에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작자들이 위험하다는 둥, 낌찍하다는 둥 함부로 말합니다. 더구나 도망치기라도 하면 날리도 아니에요. 경찰이 출동하고, 시청에서는 도랑에 살충제를 뿌리고요! 그 일대 주민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타란툴라 주인은 범죄자 취급을 당합니다 _ P178 <검은이빨 >


 

이 책은 4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요 "도깨비불의 집 / 검은 이빨 / 장기판의 미궁 / 개는 알고있다/" 이렇게 4편인데,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이야기는 '도깨비불의 집' 이 아닌가 싶어요, 남은 3가지의 이야기 또한 비슷비슷하지만, 유난히 첫번째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단편이다 보니 자세한 책  속 이야기는 빼도록해요, 자칫 잘못하면 스포일러가 될수도 있거든요.

 

4편의 이야기에는 모두 미모의 변호사 '준코'와 방범 상점 시큐리티 숍 경영자이면서 전.현직 도둑 '에노모토 케이' 가 등장해요 두 사람이 사건을 파헤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여요,  4편의 모두 생각 없이 주르륵 읽어 내려가게 되지만, 결말은 무언가 우리에게 어떠한 가족애, 그리고 인간의 욕망등을 살며시 경고 하는듯한 느낌을 들게 해요,

 

오랜 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시간이 조금은 아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참 .. 무언가 조금 부족한 느낌의 책이에요, 아무래도 깊이있는 무언가를 얻기에는 추리라는 장르도, 그리고 단편이라는 것, 그 이유도 있겠지요, 서늘해진, 이제는 쌀쌀해지는 가을에서 겨울사이에 오싹해지는 추리물 한편이 끌리는건 왜일까요? 아마 이 책에서 얻지못한 그 무엇을 다른 책에서 얻고싶어하는 욕구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여러분들도 선선해진 가을, 추리소설 한편 어떠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잠
이란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리뷰를 쓰려하니, 막막함이 먼저 밀려온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할지, 손가락 하나하나에 무거운 쇠뭉치를 달아 놓은듯, 쉽게 키보드를 두드리지 못하겠다. 무언가 강하게 나에게 남았다면, 무언가 내 머릿속을 울리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면... 혹시 그랬다면 쉽게 미친듯 날아갈듯 손가락을 쉴새없이 움직여 주었을텐데, 이 책을 일주일 넘게 잡고있었으면서도 , 그리 오랜시간 내 곁에 머물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은걸까?'하는 생각이 이 책의 스토리를 모두 기억해 내지 못하는듯 하다. 달콤한 느낌의 책표지에 끌려, 어여쁜 표지의 여인의 묘한 매력에 끌려, 시작했던 책이였는데, 처음의 설레임이 책을 덮은 이후, 계속 이어지지 못함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것 같아,

 

광해군과 혁명가 허균, 그리고 기생 매창의 삼각관계를 그린 역사 로맨스 라고 책소개에 고스란히 나와있다, 두껍지도 않은, 얇은 300페이지 안팎의 이 책 한권에 얼마나 '로맨스'라는 장르를 잘 표현했을까? 하지만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아서, 어쩌면 익숙치 않은 표현과 문체에 , 역사에 조금은 무지한 탓에 , 내게는 큰 감흥이나 그렇다고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나의 가슴을 애태우지도 못한 듯 하다.  그 시대 최고 바람둥이 허균도 모든 사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매창은 지켜주고 싶은 한 여인이였을까? 그리고 기생 매창 또한 어느 한 사람만을 사랑할수 없는 모든 사내의 정인이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와 현실에 허균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해야만 했던 것일까?. 또 한명,  먼 발치에서 그 두 사람을 질투심으로 지켜 보아야 했던, 안타까운 광해군 까지도, 말이다

 



거문고를 뜯음으로써 봉황도 법도를 따라 춤추게 하고 사악함을 씻어 자연과 하나가 되어라. 거문고 여섯 줄을 쓰다듬으면서 소리 없음을 듣고, 형체 없음을 즐겨라.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조선 팔도에 거문고를 신들린듯 연주하는 기생은 많으나 다들 요란한 재주만 있을뿐, 영혼을 담지는 못한다. 거문고는 소리가 아니라 영혼이다. 진정 마음을 담지 못하면 죽은 소리란 뜻이다 _ p 82


 

나는 광해군도, 허균도 매창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느끼지 못한듯 하다. 오히려 매창의 '이름뿐인' 기둥서방인 '장이'를 보면서 그녀를 위한 진정한 사내가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창을 위해 평생 뒷바라지를 한 반쪽 사내, 고자라는 세인들의 짓궂은 놀림에도 장이는 매창을 묵묵히 지켜주었다. 겨울밤이면 방이 찰세라 군불을 지펴대고, 여름이면 모기떼에 잠을 설칠까 솔가지로 모깃불을 피워주던 그런 그 '장이'말이다. 매창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그녀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던 장이 였다.  아쉽게도 내 생각과는 달리 장이는 책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중 한명이였을뿐, 크게 빛을 발하는 인물이 아니였다는게 꽤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활자들이 계속 내 머리와 마음속을 겉도는 느낌이 든다. 깊이가 없는 것이었나? 그들의 사랑 표현이 세세하지 못해서였을까? 무엇 때문이였을까? 조금더 깊은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해줄 무언가가 있을줄 알았을까? 조금은 답답함까지 밀려온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느낌의 '나비잠'이 아니였는데, 생각보다 표현, 감정,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평범한 활자로만 표현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말 그대로 글로만 표현한로맨스 라는 단순한 느낌, 아무리 가상속 인물일지라도 그리고 가상 속 사랑일지라도, 읽을때 만큼은 진실된 사랑이 내 심장을 뜨겁게 달궈 주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냥  아쉬울 뿐, 또 다른 어떤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여자친구는 여행중
이미나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심끝에 여행길에 함께하기 위해 선택한 3권의 책 중  한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여행길에 가볍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건 꽤 고민스러움의 연속이었다,몇번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고른 책들 ,가장 나에게 그 시간, 그곳에서 잘 어울리는 책일것 같아 선택한 책. 비록 제목처럼 나를 '여자친구'라고 불러주는 연인은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쨌든 난 여행중임은 분명하니 그것으로 된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한다. 소설인가? 에세인가? , 후루룩 훑어 봤을때 이런저린 귀여운 삽화들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한편으로는 유치하지않을까? 나랑 맞지 않을까? 하는 반쪽 마음도 한켠에 자리잡았지만,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읽을수 있을것 같은 느낌의 기운을 폴폴 풍겨주기까지 한다.



모든 순간을 나를 꼭 기억해요.

잊지 말아요 ,언제든 전화해도 된다는 걸, 벌써 지겨워졌냐고 놀리지도 않을 거란 걸,아무때나 돌아와도 된다는 걸...

당신은 계속 신나다 가끔 내가 보고 싶겠지만 나는 내내 당신이 보고 싶을 거라는걸 _ p 9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관계를 정리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실제로 그런 관계라는건 누가 정리를 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던 거지요, 사실 제일 마음 아픈건, 헤어지자는 말을 들을 순간이 아닐 겁니다. 그 사람에게서 더이상 사랑을 못 느낄때, 모르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알아질때, 그때가 사실은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지요, 그때가 사실상 헤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고요, 부정하고 있을수도 있지만... _ p 21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는 행아, 이름이 참 독특하기도해 '행아' (행복을 주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풀이로는 참 이쁜데, 그냥 이름으로는 좀 ... 그녀의 일상은 늘 다른사람과 다를것 없는 많은 스트레스와 일상의 무미건조함, 그리고... 그녀가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 이라는 또하나의 힘겨운 마음속 전쟁, 어쩌면 이런 답답한 현실속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 떠났을지도 모른  행아는 우연히 아일랜드 여행길을 오르게된다. 그녀의 일상에서 그리고 떠나기 일주일전, 그리고 여행중 여러가지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득 묻어있는 활자들이 내심 , 부러움이 한가득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녀의 입사동기인 절친 태희도, 까마득한 신입 후배 은수도 , 모두 다른 성격에 제각기 현실에서 자신을 그곳에 맞춰가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과격한 표현과, 까칠한 태희도, 내심 어느 누구보다 더 따뜻한 심장을 가졌다는걸 행아 역시 알고있으니까, 행아는 우연히 갑작스럽게 여행길에 오르지만,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무겁게 짓눌렀던 자신의 사랑 '경우'와의 힘겨운 사랑 또한 그 여행길에 살포시 내려놓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여행'이라는 두 글자 속에 나는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비록 책 속의 행아는 아일랜드, 나는 고작 국내여행을 전전하는 것 뿐이지만, 무엇이 다를까? 나 또한 무언가를 내 가슴속에서 비워 버리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곳으로  꼭꼭 버려두고 나 홀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아마,,,, 확실히 그랬을 것!

 



좋아하는 것이 한가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순간이 늘어나는 것. 자식 생각을 하면 힘이 나는 부모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내내 히죽거리는 것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순간 여행으로 인해 힘이 나고 즐거워진다. 여행은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도,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행복한 순간들을 선물해 준다 _ p 127


 

여행길에 괜한 책 욕심에 무거운 짐에도 불구하고 책을 3권이나 꾹꾹 담아 갔다가 결국 여행길에 시작해서 돌아오는 날까지 이 책 한권을 읽은것이 전부이지만,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 것에 대한 후회도 , 힘들다며 내심 혼자 투덜투덜 거리며 입이 댓발 나오는 투정도 하지 않았다. 이 책 한권이 내 여행길에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지루하고 무료했을 , 어쩌면 기차안에서 몽땅 잠으로 채워버렸을, 그렇게 지겹게 보냈을듯한 3시간의 긴 시간을 나름 나의 귀에 조잘조잘 속삭여주듯, 책과 함께 하는 그 시간속에서 나도 모르게 풉! 하고 터지는 웃음에 놀라 여행길 나의 옆좌석을 함께 해준 낯선 아주머니와, 돌아오는길에 함께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눈치를 힐끗힐끗 보기까지 했으니... 막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동시에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괜시리 뿌듯함도,  그리고 베시시 지어지는 미소도, 그리고 행복했던 여행속 시간들도, 모두가 참 좋았던 , 꼭꼭 숨겨놓고 나혼자만 꺼내보고 싶게 만들었던 그런 시간들이다. 어쩌면 적절한 타이밍에 읽게된 책이여서 일까?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일지도 ,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든 내 감정이 그러했고, 내가 느낀것이 그러했고, 읽는내내 내 마음도 즐거웠으니, 그것으로 된거다, 안 그런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