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꽤 오랜 시간, 2주동안 내 손에 꼭 쥐어진, 그 긴 시간만큼 읽는 것 또한 느릿한 거북이 마냥  활자를 읽어나간다. 공선옥 작가에 대해서도, 영란이라는 제목의 소설책에 대해서도 크게 감흥이 없던 것 또한, 계속되는 무미건조함의 메마른 감성 때문이겠지. 그런 감흥없이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책 한권, 처음 몇 페이지는 느닷없는 사투리에 그리고 왠지 옛스러운 문체 덕분에 더욱 책 읽는 속도에 느릿함을 더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것 또한 잠시뿐, 오랜시간 느릿하게 읽긴 했지만, 한 페이지 ,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책 속 인물들의 매력에, 정겨움에 나 또한 함께 웃고 함께 가슴 아파 미어지기도 한다 . 그 이유가 무얼까? 도대체... 책 표지에 한 여인의 쓸쓸함이 잔뜩 베어나오는 뒷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여인이 아마 영란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겠지, 딸랑 이름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책을 덮은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 여인, 영란. 이 여인의 이름은 영란이 아니였다. 이름없이 '나' 라는 명칭으로 시작되는 그 여인, 사고로 아들과 남편을 잃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삶에 대한 어떠한 의욕도 가지질 못하던 어느날 남편이 유일하게 인세를 지급하지 못한 사람, 남편의 선배이자 소설가인 이정섭을 만나게 된다. 엉망이 된 집안의 그녀가 안쓰러운 정섭은 몇일을 그녀를 챙겨주던 어느날 친구 비보를 듣게 되고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두기에 마음이 불편하여 그녀를 데리고 친구의 장례식장인 목포까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렇게 장례를 치루고 정섭은 그녀를 목포에 두고서 홀로 서울로 돌아온다. 그녀가 혼자 남게 되고 그곳에 자신도 모르게 터를 잡게 된다. 그곳에서 지내던 그녀와 그리고  '목포 사람들'이 하나 둘 등장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듯 하다.

 

삶에 대한 희망도 의욕도 없던 그녀가 우연히 영란 여관이란 곳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여관집 주인 할머지는 그녀에게 '영란' 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조금씩 삶에 대한 자신이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삶의 좌절 앞에서 찾아온 그 '숨'의 가느다란 끈을 잡을수 있었던 것 또한 영란 여관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함으로써 작은 빛을 띄우는 거겠지.

 


 

가수는 노래 하나로 세상을 보듬아분단다. 존 것만 취하지 말고 아픈 것도 다아 니 품 안으로 보둠어부러라.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마는 노래도 목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부르는 것잉게. 세상 아픈 것 짠헌 것 다아 보듬어 불면 큰마음이 될 것이다. 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그 얼매나 니 노래를 사랑하겄냐. 다들 좋다고 허제 싫다고는 안 헐 것이여 _ P 88



 

한번 가버린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이제 산정동 성당 소나무 숲 속에서 추위를 견디며 종소리를 듣던 그 저녁의 행복 또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것을 알기에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현실에서의 행복은 떠나갔지만 내 마음속 행복은 영원히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_ P 132


 

책을 읽는 동안 등장하는 어느 인물하나 마음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 하나같이 자신들의 아픔을 숨기고 그 아픔을 또다른 사랑으로 이겨 내려 하는 그들, 그들의 사투리의 정겨움도 그리고 삭막한 도시 사람들에게는 보기 힘든 정겹고 따뜻한 마음들도, 영란에게는 아마 그런 그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삶의 또 다른 의욕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이정섭 또한 자신이 책임감 없이 영란을 두고온것이 죄책감이 들었던걸까? 목포를 다시 찾은 정섭 또한 그 이유만이 아닌 또 다른 알수 없는 '얻음'이라는 선물이 있었겠지. 참.. 정겹다. 그냥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목포에 사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정겹고 따뜻할까?'라는 궁금함과 나 또한 단지 '목포' 라는 지명만 알고 있을뿐 그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그곳에 한번쯤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힘은 없어도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까

누가 상 줄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나 자신을 탓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미워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원망하면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자신을 자기가 예뻐해 주는 것, 그것 뿐이더라고 _ P 200


 


 

나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의 마음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써 많이 기쁠 것이다 _ <작가의 말 중에서>


 

처음의 무관심히 읽기 시작했던 책한권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 마음속에서 따뜻한 등불을 켜놓는듯 괜시리 베시시 지어지는 미소는 어떤 이유일까? 어쩌면 조금은 공감을 했고,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는 괜한 동질감에 내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 그랬을꺼라고, 그냥 자연스럽게 믿고 싶어진다.

그래,공선옥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했듯이 나 또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무언가의 마음의 얻음이 있었으니 그녀도 기뻐하지 않았을까?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나처럼 무언가의 얻음이 없더라도, 무미건조하고 우울함으로 부터 잠시마나 위로가 되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작은 반창고 같은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믿고싶다. 현대의 이야기 속에 옛스럽고 촌스럽다는 문체라고 느껴졌던 것도 작가만이 가질수 있는 매력적인 무기 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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