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친구는 여행중
이미나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심끝에 여행길에 함께하기 위해 선택한 3권의 책 중  한 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여행길에 가볍게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건 꽤 고민스러움의 연속이었다,몇번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고른 책들 ,가장 나에게 그 시간, 그곳에서 잘 어울리는 책일것 같아 선택한 책. 비록 제목처럼 나를 '여자친구'라고 불러주는 연인은 없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어쨌든 난 여행중임은 분명하니 그것으로 된거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한다. 소설인가? 에세인가? , 후루룩 훑어 봤을때 이런저린 귀여운 삽화들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한편으로는 유치하지않을까? 나랑 맞지 않을까? 하는 반쪽 마음도 한켠에 자리잡았지만,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읽을수 있을것 같은 느낌의 기운을 폴폴 풍겨주기까지 한다.



모든 순간을 나를 꼭 기억해요.

잊지 말아요 ,언제든 전화해도 된다는 걸, 벌써 지겨워졌냐고 놀리지도 않을 거란 걸,아무때나 돌아와도 된다는 걸...

당신은 계속 신나다 가끔 내가 보고 싶겠지만 나는 내내 당신이 보고 싶을 거라는걸 _ p 9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관계를 정리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실제로 그런 관계라는건 누가 정리를 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던 거지요, 사실 제일 마음 아픈건, 헤어지자는 말을 들을 순간이 아닐 겁니다. 그 사람에게서 더이상 사랑을 못 느낄때, 모르고 싶지만 어쩔수 없이 알아질때, 그때가 사실은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지요, 그때가 사실상 헤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고요, 부정하고 있을수도 있지만... _ p 21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는 행아, 이름이 참 독특하기도해 '행아' (행복을 주는 아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풀이로는 참 이쁜데, 그냥 이름으로는 좀 ... 그녀의 일상은 늘 다른사람과 다를것 없는 많은 스트레스와 일상의 무미건조함, 그리고... 그녀가 축복받지 못하는 '사랑' 이라는 또하나의 힘겨운 마음속 전쟁, 어쩌면 이런 답답한 현실속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 떠났을지도 모른  행아는 우연히 아일랜드 여행길을 오르게된다. 그녀의 일상에서 그리고 떠나기 일주일전, 그리고 여행중 여러가지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득 묻어있는 활자들이 내심 , 부러움이 한가득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녀의 입사동기인 절친 태희도, 까마득한 신입 후배 은수도 , 모두 다른 성격에 제각기 현실에서 자신을 그곳에 맞춰가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과격한 표현과, 까칠한 태희도, 내심 어느 누구보다 더 따뜻한 심장을 가졌다는걸 행아 역시 알고있으니까, 행아는 우연히 갑작스럽게 여행길에 오르지만,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무겁게 짓눌렀던 자신의 사랑 '경우'와의 힘겨운 사랑 또한 그 여행길에 살포시 내려놓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여행'이라는 두 글자 속에 나는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비록 책 속의 행아는 아일랜드, 나는 고작 국내여행을 전전하는 것 뿐이지만, 무엇이 다를까? 나 또한 무언가를 내 가슴속에서 비워 버리고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머나먼 곳으로  꼭꼭 버려두고 나 홀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아마,,,, 확실히 그랬을 것!

 



좋아하는 것이 한가지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한 순간이 늘어나는 것. 자식 생각을 하면 힘이 나는 부모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내내 히죽거리는 것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순간 여행으로 인해 힘이 나고 즐거워진다. 여행은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도, 여행이 끝난 후에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행복한 순간들을 선물해 준다 _ p 127


 

여행길에 괜한 책 욕심에 무거운 짐에도 불구하고 책을 3권이나 꾹꾹 담아 갔다가 결국 여행길에 시작해서 돌아오는 날까지 이 책 한권을 읽은것이 전부이지만,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간 것에 대한 후회도 , 힘들다며 내심 혼자 투덜투덜 거리며 입이 댓발 나오는 투정도 하지 않았다. 이 책 한권이 내 여행길에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지루하고 무료했을 , 어쩌면 기차안에서 몽땅 잠으로 채워버렸을, 그렇게 지겹게 보냈을듯한 3시간의 긴 시간을 나름 나의 귀에 조잘조잘 속삭여주듯, 책과 함께 하는 그 시간속에서 나도 모르게 풉! 하고 터지는 웃음에 놀라 여행길 나의 옆좌석을 함께 해준 낯선 아주머니와, 돌아오는길에 함께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눈치를 힐끗힐끗 보기까지 했으니... 막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동시에 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괜시리 뿌듯함도,  그리고 베시시 지어지는 미소도, 그리고 행복했던 여행속 시간들도, 모두가 참 좋았던 , 꼭꼭 숨겨놓고 나혼자만 꺼내보고 싶게 만들었던 그런 시간들이다. 어쩌면 적절한 타이밍에 읽게된 책이여서 일까? 지극히 주관적인 시점일지도 ,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든 내 감정이 그러했고, 내가 느낀것이 그러했고, 읽는내내 내 마음도 즐거웠으니, 그것으로 된거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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