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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526/pimg_758447196762996.jpg)
뒤척뒤척, 한 권의 에세이를 끝내고선, 어느 책을 읽어야 할까, 책장에 빼곡한 책들 중에, 문득 시선을 끄는 한권의 산문집이 있었습니다. 사실 작년 홍대 와우북 페스티발에서 덥썩 주저없이 집어들어 구입해 놓고는, 고스란히 먼지와 함께 캐캐 묵혀 놓았던 책이지요. 딱히 끌림이 있는 표지가 아니였어요. '언젠가는 읽어야지' 라고 생각만 했었던, 그런데 요즘 참 , 모든 텍스트들이 쉽게 읽히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소설과 에세이, 산문집 등의 여러 책들 중, 저는 이 책에 유난히 마음이 끌렸어요. 그리고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지요. 어쩌면 얇기도 했지만, 김연수. 라는 작가가 궁금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작가의 책은 저에게는 처음이니까요.
문득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청춘의 문장들> . 이 이야기는 작가의 유년기, 청년, 그리고 30대의 삶, 그의 치기어린 시절,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시절의 그 어떠한 것, 시간,추억,사람,기억이라는 것들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어요. 단지 김연수, 자신의 '청춘'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지만, 어쩌면 타인의 삶인 이 이야기는, 때로는 제게 강한 저릿함을 주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옛 것' 에 대한 내음이 물씬 풍겨나오는듯 해요. 아무래도 8~90년대 그 시기 , 그 시간을 추억여행 하듯, 조근조근, 때로는 건조하게 읽혀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싫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춘'을 보았고 때로는 그 안에서 저의 지나간 '옛 청춘'을 슬쩍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요, 요즘 나이 듬에 있어 문득 문득, 아니 근래에 들어 자꾸 옛 적 그날의 추억들이 편린들이 순간 순간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곤 해서는, 지난 흔적들을 찾으려 불현듯 때가 묻은 옛 물건들을 뒤적이며 한참을 빤히 들여다 보며 아쉬워 하기도 하지요. 나이가 든다는건 , 어쩌면 지나간 시간의 되돌릴 수 없음에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추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어느날은 긴 생각만으로 하루를 꽉 채워버린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는 충동적인 느낌이 들때면 , 버스 안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몽상과 단상에 한없이 빠져서는 멍하니 시간 죽이기 놀이를 하며 하루를 완전히 소멸해 버리기도 합니다.
<청춘의 문장들> 에서는 지나간 청춘에 대한 아쉬움, 돌이킬수 없는 나날들, 아련함 , 사라진 것들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들을 직설적인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들려 줌으로해서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내리듯,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받아 들이고 느끼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그래서 참- 좋습니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 저와 비슷한 시대와 시기의 삶을 자신의 이야기로 추억을 몽글몽글 이끌어 내어 주기도 했으니까요, 작위적이지 않아 읽는 동안 마음의 불편함도 저는 느낄수 없었고,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현실적이며, 꽃내음이 나는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까지 한 순간도 돌아볼수 있는 잠시의 숨돌림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 왔구나 .. 라는 느낌이 참 많이 들기도 했습니다. 작가 김연수의 이야기에는 분명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 내가 차마 느끼지 못했던 생각의 차이, 사물과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느낌의 차이. 그러니까 왠지 나는 기계처럼 살기 위해, 오직 살아가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그래서 작가의 그 '여유'가 느껴져선 때로는 그것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추억의 편린들이 아쉽고 후회 되었을지도요. 가끔씩, 가끔씩 내 청춘의 문장들이 그리울때면 곱씹듯 꺼내 읽으면 좋을듯 합니다.
* 나도 언젠가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 라고 웃으며 이야기 할수 있는 시간이 올까요
> 공 감 글 귀
앞으로도 만날 기회 있음을 알지만, 이 밤에 헤어지기는 참으로 힘들다.
옛 친구가 권하는 이 술잔이 뱃길을 막는 돌개바람만 못하랴 _ p 62
나는 밤을 사랑한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검은 얼굴을 지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그 눈들은 저마다 빛을 낸다.그 빛 속 하나하나에 그대들이 있다. 외로운 그대들, 저마다 멀리 떨어진 불빛처럼 멀리서 흔들린다.문득 바람이 그대 창으로 부는가, 그런 걱정이 든다. 하지만 그건 멀리 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빛이다.한때 우리는 너무나 가까웠으나, 그리하여 조금의 흔들림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_ p 93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눈빛을 다시 만닐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발을 동동거리며
즐거움에 가득 차 거리를 걸어가던 그때의 그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어떤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_ p 123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스구리는구나.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_ p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