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참치여자 NFF (New Face of Fiction)
사비나 베르만 지음, 엄지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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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제목인것 같습니다. <나, 참치여자>는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불완전한 사람들>에 이은 NFF(NEW FACE OF FICTION) 세번째 소설입니다. 사실 NFF 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입니다. 독특한 제목만큼, 이번 세번째 소설은 어떤 이야기 일지 내심 궁금해 지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원제는 "세상의 중심으로 잠수해 들어간 여자" 라 합니다. 사실 왠지 <나, 참치여자> 보다는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의 원제인것 같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제목을 곰곰히 되집어 생각해보면 , 왜 이렇게 제목을 지었는지, 깊은 의미를 약간은 이해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유산으로 받게된 참치회사를 맡아 운영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이모(이사벨)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사벨(이모)은 어느날 지하실에서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아오던 어린 카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육체에 깊은 상처를 새긴채 세상과 단절되고 어두운 지하에서 살아온 카렌을 위해 이사벨은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가르치며 조금씩,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비록 자폐증이 있지만, 카렌은 몇몇 지능 분야에서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천재적인 두각을 보입니다. 카렌이 성인이 되면서, 이사벨과 함께 참치회사를 경영하며 좀더 넓은 세상을 보고 겪게 되지만, 또한 참치 회사의 경영난과, 많은 고난, 힘든 역경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독특한 (스탠더드한 인간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 입니다.

 

이 소설은 카렌의 시선을,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들의 표현들을 따라 읽다보면, 비록 완벽하게 자폐증에 대해 모든것을 흡수하듯 다 알수는 없지만, 일부분(어쩌면 저에게는 아주 조금의..)은 그들의 행동 패턴과 삶을 느낄수도 있었던것 같기도 하네요. 소설 속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카렌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대해 반감적인 의사를 표현 합니다. 꽤나 유명한 명제이지만 저는 단 한번도 그 명제에 대해 깊이 생각히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 소설을 읽으면서 뜨문뜨문 등장하는(아니,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존재'라는 단어에 저도 모르게 골똘히 생각에 잠시 잠겼습니다. 생각을 하므로써 존재한다는 그 의미가 당연한듯 받아들여지지만, 카렌에게 있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것들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이렇게 되풀이 하지요 "나는 존재한다, 고로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물이 의당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라면 그런 것들을 애써 떠올릴 필요가 있을까? 바다는 바다고, 태양은 태양이다. 그리고 나는 나일 뿐이다. 이 세상에 기적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11쪽)

 

카렌은 비유와 완곡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짓말과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오롯이 보이는것 "존재"하는 것만이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함일 뿐이지요. 그녀는 "스탠더드한"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지상에서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며 그 여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선 "정복"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현재의 우리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세계와 그 외부의 다른 자연적인 세계의 단절된 벽과 같은 단단한 선명한 경계선을 카렌은 허물고 싶었던 것일지도요. 카렌이 끊임없이 자연과 소통하려 하며, 스탠더드한 인간들의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해 동물을 학대하고 고통을 주며, 언어적 비유와, 폭력, 고통을 주며 인간들만의 가질수 있는 특권(?)을 누리려 함을 비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스탠더드한 인간들로 부터 언어로 인해, 모든것들이 지배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 폭력, 기계, 비유, 생각,거짓,상상 등 , 말이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이야기들이 딱히 틀린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의 현 자본주의 사회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말이지요.  그녀는 우리에게 이러한 "존재"와"언어"라는 올가미에 씌여, 거만해질 대로 거만해진 "스탠더드한 인간들"에게 충고를 하는 것일지도요.

 

<나, 참치여자>는  책장이 잘 넘어가는듯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심심치 않게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흥미와 재미를 떠나서, 조금은 쉽게 읽히기도 ,때로는 읽히지 않을수도 있기도 하고요, 어쩌면 조금은 난해하다(?)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런 다양하게 느낄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은 신선하기도 했습니다. 완벽히 100% 이 소설의 이야기(의미)를 흡수하진 못한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카렌의 시선에서, 그녀가 모든 감각으로 느끼며 풀어나간 이야기가 독특했습니다. 자폐증이라는 세상속 편견과 난관을 이겨내며 '그녀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저도 느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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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0 - 50/5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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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잦은 약속에, 점점 늘어나는 작업실의 일의 양이 많아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말보다 평일이 더 바쁜 '나' 이기도 합니다. 되도록이면 영화는 평일 , 퇴근시간 이후에 보려고 하지만, 요즘 같은 나날들을 보내면서 조금의 시간도 여유를 주지 않는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차일피일 미루던, 영화를 주말(토요일)에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북적이는 홍대, 낮 시간에 말이지요. 역시 북적입니다. 하지만 , 영화를 봐야겠다는 강한 끌림을 뿌리칠수는 없으니 , 사람 많음을 개의치 않기로 합니다. 11월의 끝자락을 향해가고 있지만 요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 연말의 기운을 물씬 느끼지 못해 안타깝기도 합니다.(사실 저는 겨울을 미친듯 싫어하니, 오히려 따스한 나날이 더욱 저에겐 행복의 하루하루일 뿐이지만 말이지요. - 추위를 엄청나게 타선.. -)

그렇게, 3시쯔음의 상영 영화를 보았습니다. 역시 맨 끝자리, 사이드에서의 영화관람은 방해를 받지 않기에 참으로 좋은 자리이지요. 홍대 롯데시네마 건물이 새롭게 탄생한듯 , 많은 매장과, 볼거리, 구경거리, 먹거리, 등등 많이 들어와 있네요. 그동안 매 층마다 , 아무런 상점이 들어서질 않아, 휑하다 싶었는데, 말입니다. (이러다간 이 건물 아예 없어지는게 아닌가..) 여튼, 한동안 홍대 롯데는 잘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무래도 종종(자주) 갈 듯하네요. (지하에 '리브로' 서점도 생겼어요!)  


 

 

영화 <50/50>은 27세의 혈기 왕성한 아담(조셉 고든 레빗)이 어느날 희귀성 암인 '척추암' 판정을 받습니다.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며,  꾸준히 운동하던 아담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수 없지요. 만약 여러분이 이와같이 지독히 공포스러운 결과를 듣게 된다면 , 어떠한 삶을 살아갈수 있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고, 자신의 미래가 캄캄할 뿐이겠지요. 그래요. 영화는 이렇듯 아담이 척추암에 걸린 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이니 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꽤나 무겁고, 묵직하고, 어둡고, 고통스럽게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할수도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 하지만 영화 <50/50>은 오히려 반대의 흐름을 선택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벼운 웃음과 그들의 밝은 모습들을 끊임없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억지스러운 신파적인 흐름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더욱 현실적인 , 사실적인 이야기에 더 많이 공감을 할수 있었던 것일지도요.  50 대 50.. 이 단어의 뜻은 희망과 좌절의 경계선 일까요?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은 제목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생존률이 50/50의 난치병이란 이야기를 듣는다면, 희망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지요? 아니면 좌절과 공포, 불안한 미래가 먼저 떠오르는지요? 아마 대부분 희망보다는 어두운 자신의 불안한 미래가 먼저 떠오를 겁니다. 하지만 아담은 참 ,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듯 합니다. 어쩌면 암에 걸린 이후, 자신에겐 누군가가 소중히 남고, 누군가는 떠남에 있어, 뚜렷히 선이 그어지는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믿었던 여자친구는 , 아담이 암에 걸린 후, 바람을 피우며, 오히려 자신의 힘들었음을 아담에게 토해내지요. 또한 절친한 친구 카일은, 그렇게 병에 걸린 자신을 이용해 여자를 꼬시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런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도 불평이나 불만을 토하지 않습니다. 지독한 병에 걸린 후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지요. 

 

 

 

영화는  희극과 비극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억지스럽게  비극으로 몰아넣음이 아닌, 현실적이고 객관성을 띄고 있어서인지, 아담의 시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유머러스하고 저속한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도 마냥 웃을수 없는 묘한 영화입니다. 문득 영화를 보는 동안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 그 사람 역시 암환자 이지만, 전혀 자신의 암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건강했던 자신의 그 전 삶과 다름없는 ,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오히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주변 지인들에게 "너, 괜찮아?" 라는 말을 듣는게 정말 싫습니다" 그냥 아무말 없이 평소처럼 자신을 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 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는 암이란 병은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일 뿐이라고 말합니. 어쩌면 우리들도 이러한 모습을 보였겠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 이라는 병에 대해선 긍정적인 생각보단 먼저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생각을 하는것일까요? 우리의 삶 속에는 늘- 확률이란 것이 존재하지요. 이 영화 제목처럼 '50/50'처럼 말입니다. 

 

아담의 처한 상황, 그의 삶을 통해, 또다른 주변을 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제 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또한 그 모습이 어쩌면 현실적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0%의 삶,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문득 영화속 '카일(세스 로건)' 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웃음), 정말 그런 친구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소중한 존재 입니다.(영화를 보신분들만 이해하시려나?) 영화를 보는내내 어둡고 비극적인 소재이지만 참 , 잘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평이 좋았던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지 못했는데, 이번 <50/50>을 보면서 '조셉 고든 레빗'에 반해 조만간 꼭 챙겨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겐 참으로 많은 의미와 생각의 변화를 안겨준 영화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해 드리고 싶기도 하네요. (시간 되시면 한번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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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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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부진하게  한권의 책 읽기가 참으로 어렵고, 더디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나날들입니다.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며 방황하던 저의 손끝들에서, 이 에세이 또한 한참 긴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읽히지 않음에, 재미없음에, 흥미없음이 아니였어요. 단지 책이란 자체가 제게는 요즘 이상하리만치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우연히 SNS 이벤트 응모에서 당첨된 책이기도 해요, '위로'라는 책 제목이 왠지 삶에 지쳐있는 제게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 신청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서른살을 넘어서면서 헛헛해진 마음에 그리고 점점 위축되어가는 제 스스로의 삶에 한번쯤 돌아볼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도, 뒷걸음질 치기에도 고민스럽고 갈피를 못잡는 방황하는 내 발걸음에 용기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득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내 스스로 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어쩌면 제가 이 에세이를 읽음으로 해서 조금은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참으로 얇고, 얇은 책이네요, 활자들도 많지 않지만, 그림으로 온통 책 한 페이지를 빼곡히 장식하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아니, 집중만 한다면 한시간내에 몽땅 읽을수 있는 분량 입니다.<연탄길>로 유명한 작가 이철환님이 직접 그림까지 그리셨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잘 그린 그림이 아니지만, 참으로 몽환적이면서도 강한 색채감, 그리고 알록달록 무지개빛 느낌의 그림들이 단순한 그림이 아닌 어떠한 메세지를 전해주기 위함으로 비쳐 집니다. 이야기는 반쪽 붉은 나비가 되기 위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마음속에 핀 꽃을 따 먹은 파란나비 '피터'의 여정을 그린 것입니다. 파란나비 피터는 그토록 원하던 '붉은나비'가 되지만, 그의 생각만큼 그를 대하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 그리고 친구들은 그를 비난하고 그를 멀리 하지요, 그는 그래서 더욱 외롭고 , 우울했고, 괴롭습니다. 그는 그런 괴로움의 고통을 떨쳐 버리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많은 생명들을 만나지요. 사마귀, 판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키 큰 나무, 분홍나비 등, 말이에요. 피터는 그들을 만나고 헤어짐을 순간순간 겪으면서 조금씩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건 '비교'야. 나를 다른 것과 비교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 하거든... , 네가 무엇을 하든, 네 모습이 어떻든, 너를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마. 네가 아름다운 날개를 갖는다 해도, 너는 더 아름다운 날개를 갈망하게 될 거야. 비교는 아래쪽을 바라보지 않고 항상 위쪽만 바라보려고 하니까... 너의 아픈 그늘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성장을 향한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거야. (76쪽)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 마. 너도 내가 두 얼굴을 가진 욕심 많은 나비라고 생각하니? 착각 하지 마. 너희들 모두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존재의 욕망을 이해할수 없다면, 존재를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존재의 이중성을 이해할 수 없다면, 존재를 이해할수 없는 거라고.(표범나비)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피터)/우리의 욕망이나 이중성을 함부로 깔보지 말라는 뜻이야. 욕망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이중성이 없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불편해질지도 몰라. 욕망이나 이중성을 깔보는 것들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야. 자신에게도 욕망이 있고 이중성이 있는데, 남의 욕망이나 이중성을 깔본다는 건 말도 되지 않잖아... 내 말 이해할 수 있겠니?(피터, 96쪽)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 때가 많대.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그렇게 변덕스러울 리 없잖아..(144쪽)

 

사실, <위로>에 이런 동화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조금더 내면 깊숙히 감성적인, 조금은 어른들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읽혀지길 , 그리고 좀더 짙은 감성의 표현들을 원했던 것인지도요. 첫 페이지를 넘기며, 동화책의 삽화들을 보면서 저는 단정을 지었던 겁니다.'아, 유치하고 재미없는 짧막한 메세지들이구나' 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것 또한 저의 고정관념 그리고 '생각의 차이'가 아니였을까요? 슬슬 가볍게 읽어내려 가려던 저의 시선이 조금씩 한 페이지를 넘기는데 꽤나 더딤을 느꼈습니다. 문장 , 문구, 피터와 대화하는 모든 생명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글귀의 의미가 무엇인가 곱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어떠한 부분에선 아찔할 정도로 마음에 콕 와닿는 메세지도 있었고요,

 

네, 저에겐 단지 모든 사물과 모든 생각과 모든 판단, 그리고 마음의 잣대가 모두 저의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롯이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것들을 판단했으며,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이 차이가 꽤나 크다는걸 말이지요.그래서 어쩌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지도 모르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피터도 자신이 소유하지 못함에 그들을 우러러 보며 부러워했겠지요, 하지만 화려함으로 보여지던 붉은 나비는 그만의 고통와 시련과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였던 것이지요.

 

동화스럽게 파란 나비 피터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긴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생각과 마음은 자라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피터의 여정을 따라 말입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그렇지 않다는게, 눈으로만 읽는다면 쉽게 읽히긴 하겠지만, 결국은 그렇게 읽혀진 <위로>는 어느 독자에겐 여느 평범함으로 치부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에세이는 꽤 가볍게 보이지만 , 여러번 곱씹어 읽어야 마음에 담을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기도 해요. 갑작스런 추위에, 더욱 몸은 움츠려 들고,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겨울날, 여러분에게 조금더 따스하게 다가갈수 있는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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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처 라이프
다카하시 아유무 글 사진,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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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한권의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결국, 오랜 시간 손에 쥐고 놓질 않았던 지지부진한 한 권의 책을 완독하기를 포기(잠시 접어두었다고 합시다!)하고 조금은 가볍게 읽을수 있는 에세이집을 말이지요. 이 또한 우연히 형제 분이 운영하는 단골카페를 방문했다가, 그들의 추천으로 살짝 빌려왔습니다. 하지만 빌려온지 2주 후가 지난 지금에야 읽기를 시작했네요.  왠지 책 제목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저도 <어드벤처 라이프> 같은 삶을 살고 싶어지기도 하네요.

 

다카하시 아유무. 알고 보니 <LOVE & FREE>을 쓴 작가였네요, 뭐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꽤 눈에 자주 띄였던 책이였던 것 같습니다. 살짝 구매를 할까.. 란 생각에 손에 들었다 놨다 했던 기억도 어렴풋 나기도 합니다. 그에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꽤나 자유스럽고 , 유쾌해 보입니다.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 그런 그가 참으로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에게 삶은 어쩌면 "도전" 이란 하나의 단어에만 중점을 두지 않았나 싶을정도로, 때로는 무모하다, 아니면 대책없음. 이라든가, 라는 생각이 저와 같은 소심하고 계산적인, 생각에 치우친채 도전하지 못하는 삶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정말 버라이어티 함이 가득합니다. <어드벤처 라이프>는 다카하시 아유무의 자서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에세이 집입니다. 얇은 이 에세이 집에 그의 10대에서 지금을 살고있는 30대까지의 삶을 꾹꾹 눌러담아 놓은듯 보입니다. 다카하시 아유무는 10대 때부터 남들과 달라보입니다. 남들과 같은 삶의 패턴으로 살아가는 수순의 인생에 태클을 걸듯이 말이지요.

 

다카하시 아유무는 우연히 톰크루즈가 나오는 영화 <칵테일>을 보곤, 바텐더가 되면 멋지겠구나, 라는 단순한 하나의 생각 하나는, 그를 바텐더로 만들었고, 결국 친구들과 칵테일 바 까지 차리는 큰 성공을 하게 되지만, 그는 또다시 그 모든것을 버리고 , 다시 백수로 돌아오지요, 그리고 "무언가 재미있는것이 없을까?"라는 새로운 목표를 찾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출판사'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지식없이 직접 출판사를 차립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도전에는 수많은 실패가 뒤따르기 마련이지요,여러번의 출간책들의 실패로 끝나지만 , 결국 그의 끈기가 , 끊임없는 노력이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출판사 또한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또다시 그 모든것을 버리고 백수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보면 왠지 그에게 모든 것들을 쉽게 이루는듯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목표와 도전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했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어려운 손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성공'이라는 이면에는 수없는 실패와 감당할수 없는 부채(빚)이 생겨나기도 했지요, 그는 그렇듯 자신의 목표를 이루면 또다른 목표와 도전을 만듭니다. 끊임없이!

 

역시 참되게 폼 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나 자식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확실하게 큰 사랑을 쏟아주며 살더라. 가족, 형제, 친구, 연인, 신세를 진 사람 등등.. 내게 소중한 사람을 확실히 소중하게 여기는 거, 그게 의외로 어려운 건데 말이야.(215쪽)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 한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나는 선택할 용기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 (222쪽)

 

나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야. 내 어떤 부분을 키워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는 변하게 되겠지? '나를, 그리고 내 인생을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 그런 시점이 좋더라 (225쪽)

 

다시 백수로 돌아온 다카하시 아유무는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 후 , 그동안 모은 자금으로 어떠한 목적없이 몇년간의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오로지 모은 돈을 다 쓰고 나면 돌아오자 , 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런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 책 제목 그대로 'Adventure Life'가 아닐수 없단 생각이 드네요. 늘 느낍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요, 이런 분야의, 아니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담아낸 에세이나 책을 읽다보면, 제가 감히 꿈꾸지 못하는 , 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그들을 바라보면서 자괴감과 괴리감이 동시에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막연히 나에게도 이런 삶을 살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과연 .. 나도 가능할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말이지요.  어찌보면 다카하시 아유무의 삶이 참 , 무모하고 대책없는 철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처럼 자신의 앞날의 미래를 생각하며 인생을 설계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하려는 정도(正道)만이 정답인듯 그 길을 향하는 우리같은 인생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의 이런 무모하고 모험적인 삶을 이해할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안정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 속에 과연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과연 지금 ,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도요. 어쩌면 이들 모두가 이렇게 어드벤처 라이프를 꿈꿀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마 우리에게는 이렇게 도전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거대한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쉽지 않습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쳐 수없이 고민을 하고, 저울질 하며 결국은 꿈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막연한 '꿈'만 있을 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수는 없는 없습니다. 그러나 원한다면, 간절히 원한다면, 그 꿈을 위해 과감히 '포기'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하네요.

 

참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유스럽고 모험적인 삶을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대리만족이겠지요, 이런 모험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듯, 자신감, 용기, 도전 이란것, 그 단어들의 생각만으로도 점점 움츠려드는 저에게 질책을 하듯, 마음으로는 모든걸 수용하고 공감하면서도 결코 섣불리 용기를 내보지 못함에, 위축 되어버린 자신감이 결국.. 씁쓸함으로 남을 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내게도 그의 삶은 잠시의 휴식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잠시의 일탈을 꿈꾸게 해주었고요,  삶의 회의를 느끼거나,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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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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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충동 구매.

 

  평일의 휴식은 왠지 모르게 더 특별한 하루를 저에게 만들어 주는듯 합니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오랫만에 서점을 방문했지요, 그리고 몇 권을 구입함으로써 오래된 위시 목록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위시 목록에 없었던 것이지요, 순전히 충동 구매 입니다. 아마, 이 소설을 구입한 이유를 말하라 한다면,지금의 '가을'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요, 그냥 어떠한 잡스러운 이유를 나열하기 보다는 '가을' 하나의 단어가 모든 의미를 담아 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가볍게만 , 신파적인 요소가 강한 지금의 현대 로맨스물에 슬슬 지겨워 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떠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사랑'이라는 단어속에 깊은 고통과 슬픔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고전이라는 두터운 벽은 참으로 어렵고 어렵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내게, 1860년에 쓰여진 <첫사랑>의 사랑 이야기는 깊은 공감과 울림을 일으키기에는 많은 노력과 이해를 필요로 하며, 어떤 면에서는 괴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가난한 귀족의 딸인 스물 한살의'지나이다'에게 , 아직은 어리게만 느껴지는 16세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소년 '블라디미르'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맙니다. 여기서 지나이다는 참으로 강한 매력과 카리스마, 그리고 아름다움을 무기로 많은 청년들을 자신의 하나의 장난감 같은 존재로 여길 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서로 대적토록 만들어 질투를 이끌어 내며, 조롱하고 유흥을 즐길 뿐입니다. 그렇게 지나이다만을 바라보던 블라디미르는 어느날 그녀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면서, 질투와, 분노, 시기를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알게 된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분노와 질투의 감정은 사라지고 아버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갑니다. 어쩌면 블라디디미르에게 있어 아버지는 윤리적 평가나 객관적 판단을 넘어서는 신화화된 존재이기에 , 따라서 '여신'인 지나이다와 '신화'인 아버지의 사랑은 인정할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오래전에 낡아버린 어두운 빛깔의 드레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누가 이 드레스와 앞치마의 주름 한자락이라도 만지도록 해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듯했다. 그녀의 신발 코가 드레스 밖으로 보였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신발에 절이라도 할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물 만난 고기처럼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백 년이라도 이 방을 나가지 않을수 있을 것 같았다. (P.47)

 

이후 한달 동안 나는 많이 성숙해졌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헛되이 억지로 분간해 내고 싶은 아름답지만 준엄한 미지(未知)의 얼굴처럼, 나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사랑 앞에서 나의 설렘과 사랑의 고통은 너무나 어린애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P.147)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 하거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 (P. 148)

 

  사실, 이야기는 마흔살의 중년이 된 블라디미르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써내려간 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하지만 그의 추억 속 첫사랑은 참으로 간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첫사랑에 대한 어릴적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잠시의 불타오르는 듯한 열정과 욕망, 소유욕, 사랑, 질투는 그 잠시 뿐이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요,

 

  얇은 한 권의 고전을 읽으며, 무심한듯 결코 무심히 흘려 버리지 못함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고전이라는 얇고 단단한 벽에 가리워진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서지 못함으로 조금은 답답함에 읽어 내려갔을 뿐입니다. 억지스럽게 공감하려 했고, 무언가를 끄집어 내려는듯 쥐어짜듯 읽었지요, 이 책을 구입했던 그날,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나의 방 침대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속에 함께 묻히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음 이였지요, 무료하고 , 지루한듯 읽어나가던 저에게 이 책의 결말은 참으로 신선하고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결말 때문만은 아니지요. '첫사랑'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또다른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문득 어렴풋한 푸릇한 갓 청춘의 나날들 속에 파묻혀 있던 내 첫사랑도 이반 투르게네프로 인해 또다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또한 한낮 한 순간의 열병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 또한 ! 

 

* 여담. 

한달여 넘게 잡고있던 소설을 결국, 끝내지도 못하고 던져 버린채, 지겹도록 공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냥 계절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습니다만. 결코 그 이유만은 아닌듯도 하네요, 비움으로 가득찬 가슴을 꾸역꾸역 채우기 위해, 미친듯 영화를 보고, 지인들과의 만남을 갖고, 쉴새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오롯이 '혼자'가 되어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비움은 결코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손을 내미는 그 날이 오면, 조금은 채워지겠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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