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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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충동 구매.

 

  평일의 휴식은 왠지 모르게 더 특별한 하루를 저에게 만들어 주는듯 합니다.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오랫만에 서점을 방문했지요, 그리고 몇 권을 구입함으로써 오래된 위시 목록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번 소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위시 목록에 없었던 것이지요, 순전히 충동 구매 입니다. 아마, 이 소설을 구입한 이유를 말하라 한다면,지금의 '가을'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요, 그냥 어떠한 잡스러운 이유를 나열하기 보다는 '가을' 하나의 단어가 모든 의미를 담아 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가볍게만 , 신파적인 요소가 강한 지금의 현대 로맨스물에 슬슬 지겨워 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떠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사랑'이라는 단어속에 깊은 고통과 슬픔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고전이라는 두터운 벽은 참으로 어렵고 어렵습니다.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내게, 1860년에 쓰여진 <첫사랑>의 사랑 이야기는 깊은 공감과 울림을 일으키기에는 많은 노력과 이해를 필요로 하며, 어떤 면에서는 괴리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가난한 귀족의 딸인 스물 한살의'지나이다'에게 , 아직은 어리게만 느껴지는 16세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소년 '블라디미르'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리고 맙니다. 여기서 지나이다는 참으로 강한 매력과 카리스마, 그리고 아름다움을 무기로 많은 청년들을 자신의 하나의 장난감 같은 존재로 여길 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서로 대적토록 만들어 질투를 이끌어 내며, 조롱하고 유흥을 즐길 뿐입니다. 그렇게 지나이다만을 바라보던 블라디미르는 어느날 그녀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면서, 질투와, 분노, 시기를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그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알게 된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분노와 질투의 감정은 사라지고 아버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갑니다. 어쩌면 블라디디미르에게 있어 아버지는 윤리적 평가나 객관적 판단을 넘어서는 신화화된 존재이기에 , 따라서 '여신'인 지나이다와 '신화'인 아버지의 사랑은 인정할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오래전에 낡아버린 어두운 빛깔의 드레스에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누가 이 드레스와 앞치마의 주름 한자락이라도 만지도록 해준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듯했다. 그녀의 신발 코가 드레스 밖으로 보였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 신발에 절이라도 할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물 만난 고기처럼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백 년이라도 이 방을 나가지 않을수 있을 것 같았다. (P.47)

 

이후 한달 동안 나는 많이 성숙해졌다. 두 사람의 사랑은,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헛되이 억지로 분간해 내고 싶은 아름답지만 준엄한 미지(未知)의 얼굴처럼, 나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사랑 앞에서 나의 설렘과 사랑의 고통은 너무나 어린애같이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P.147)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 하거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 (P. 148)

 

  사실, 이야기는 마흔살의 중년이 된 블라디미르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써내려간 수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지요.  하지만 그의 추억 속 첫사랑은 참으로 간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첫사랑에 대한 어릴적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잠시의 불타오르는 듯한 열정과 욕망, 소유욕, 사랑, 질투는 그 잠시 뿐이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요,

 

  얇은 한 권의 고전을 읽으며, 무심한듯 결코 무심히 흘려 버리지 못함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고전이라는 얇고 단단한 벽에 가리워진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서지 못함으로 조금은 답답함에 읽어 내려갔을 뿐입니다. 억지스럽게 공감하려 했고, 무언가를 끄집어 내려는듯 쥐어짜듯 읽었지요, 이 책을 구입했던 그날,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나의 방 침대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속에 함께 묻히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음 이였지요, 무료하고 , 지루한듯 읽어나가던 저에게 이 책의 결말은 참으로 신선하고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결말 때문만은 아니지요. '첫사랑'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되어 있는 또다른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문득 어렴풋한 푸릇한 갓 청춘의 나날들 속에 파묻혀 있던 내 첫사랑도 이반 투르게네프로 인해 또다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또한 한낮 한 순간의 열병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 또한 ! 

 

* 여담. 

한달여 넘게 잡고있던 소설을 결국, 끝내지도 못하고 던져 버린채, 지겹도록 공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냥 계절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습니다만. 결코 그 이유만은 아닌듯도 하네요, 비움으로 가득찬 가슴을 꾸역꾸역 채우기 위해, 미친듯 영화를 보고, 지인들과의 만남을 갖고, 쉴새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오롯이 '혼자'가 되어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비움은 결코 채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손을 내미는 그 날이 오면, 조금은 채워지겠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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