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책은 초등학교 아이들과 수원화성으로 소풍이나 체험학습 가기 전 꼭 읽어보고 갈 만한 책입니다. 왜 수원화성을 계획했을까? 수원화성은 어떻게 건설했을까? 화성 성곽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화성행궁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조는 수원호성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 이후 화성의 모습은 어땠을까? 여섯 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화유산이나 역사를 공부하면서는 유홍준 선생님의 말이 계속 떠오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뵈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유한준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박물관이라고 하면 유물들을 모아 놓은 곳,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토의 전체가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민족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며,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 머물러 이런 문화유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볼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아 정약용이 설계를 맡아 하게 됩니다. 정약용은 <성설>이라는 화성 성과 계획서를 만들어 정조에게 올립니다. 여기에는 성의 치수와 재료를 비롯해 성을 쌓는 방법, 성벽의 모양이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성곽의 장단점을 연구하고, 중국와 일본 성광의 장점을 받아들이기도 했답니다. ‘성역소’가 설치되고 채제공이 최고 책임자가 됩니다. 성곽을 쌓으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빨리 서두르지 않는다, 화려하게 하지 않는다, 기초를 단단히 쌓아야 한다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수원화성은 성벽, 성문, 대, 돈, 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원화성은 아름다우면서도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수원화성을 쌓을 때 ‘거중기’를 사용하였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쓰는 기구로 무거운 돌을 높이 올리는데 수고를 덜었습니다. 이 외에도 유형거, 대거, 평거, 발거 등 여러 기구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수원화성이 복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데에는 [화성성역의궤]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화성 공사 보고서를 정리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사생활을 기록한 일기에서부터, 개인 간의 주고받은 편지와 같은 사적인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당시의 생활사, 문화사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그러니 공공기관의 기록물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한국 전쟁과 오랜 세월로 손상된 수원화성은 이 의궤 덕분에 기록에 따라 정확히 복원될 수 있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더 추워지기 전에 직접 가서 수원화성을 다시 보면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나다.
지난 6월 가족들과 수원화성 다녀온 모습 / 플라잉 수원이라고 헬륨기구도 탑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