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 - 거리를 두면 알게 되는 인생의 이면
조미정 지음 / 웨일북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 에세이 # 혹시이세상이손바닥만한스노볼은아닐까

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조미정, 웨일북스)

거리를 두면 알게 되는 인생의 이면

눈송이처럼 부유하며 살아도 괜찮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내 삶을 조망하는 법

183 쓸데없는 잡념이 자꾸 불어날 때 이 거대한 지구가 실은 손바닥만 한 스노볼이라는 상상을 한다. 눈송이보다 작은 인간은 스노볼 바깥 세계가 있다는 걸 모른 채 희미하게 부유한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 같아도 사실은 스노볼이 가볍게 흔들렸을 뿐이다. 스노볼 안 눈송이처럼 우리는 작고 미미한 존재고 사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너무 크게 의미 두지 말자. 심각해지지 말자. 아무 말이나 하면서 그냥 웃다가 가도 괜찮다. 웃을 일이 없으면 좀 울다가 가도 나쁘지 않다.

울고 있어도 밖에서 보면 유리구슬 안의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인생이 눈송이처럼 잠깐 부유하고 나는 것이라면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라는 책은 프롤로그를 읽어보니 퇴사하고 우리나라를 떠나 호주에서 생활을 하며 새로운 경계인의 정체성과 관찰자의 시점으로 쓴 여행 에세이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겠다. 사람들은 퇴사를 했다, 이민을 갔다하면 용기가 있네, 삶을 개척하고 주체적으로 살고 있네, 이렇게 말하기도 할 것도 같은데 저자는 꿈같은 성공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자신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고, 지구를 스노볼이고 인간은 그 속에 눈송이가 아닐까 상상하며, 멀리 떨어져 신이 보는 것처럼 3인칭 의 시점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래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보자 다짐한다. 스노볼의 부유하는 눈송이처럼 호주에서 이방인으로, 소수자로 살면서 저자는 ‘날마다 긴 여행을 떠나온 사람처럼 살면서, 변명 없이 과거를 반성하고 조건 없이 현재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앞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양한 찰나에 행복을 느낄 것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껴안았을 때, 하루 일 마치고 돌아가는 퇴근 길에 노을을 보았을 때, 좋아하는 음반을 발견하고 커피와 함께 음악을 들을 때....나도 언제가 행복한지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89 저자의 동료 J. “우리는 직장 동료이지, 선후배 관계가 아니예요.”

일이나 삶에 대한 충고나 조언을 좀처럼 하지 않았고 뭔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저 태도를 내보이며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을 청소하는 법,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되 그것을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서서히 좋은 가치가 타인에게 스며들게 하는 법, 타인을 배려한다는 시혜적 태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나이 어린 사람을 하대하지 않는 방식, 회사에서 동료들과 유지해야 할 적정 거리감, 개인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공동체를 생각하는 법. 그 모든 방법을 한 번도 말로 설명한 적이 없었다, 그저 자기 인생을 그렇게 살았을 뿐이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저자의 많은 이야기에 공감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확실히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 또한 그것일 수 있다. 그저 저자의 동료 J처럼 우리 안에, 우리 사회 안에서 공동체주의에서 조금은 벗어나 개인주의적인 모습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무엇을 조언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위해서 그렇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 [아무튼, 비건]에서 저자 김한민은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어요?’라는 질문에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지만, 간단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렇게 무엇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가가 돌아오길 바라는 것이 아닌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실히 살아내는 것이다.

148 그동안 내가 생각해 온 진로는 직업의 유사어였다. 청소년기의 진로 상담은 대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할지에 관한 것이었고 대학생의 진로 고민은 사회에 나가 어떤 직업을 위할 것인지에 한정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진로란 ‘앞으로 나아가는 길,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라는 좀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으로 먹고 사느냐의 문제와 함께 어떤 인생을 살지에 관한 포괄적인 성찰이기도 한 것이다. 만일 직업이 곧 진로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미처 선택하지 못한 사람은, 평생 방향을 찾지 못하고 인생길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고, 항상 만나면 꿈은 뭐니? 이렇게 묻는 것도 폭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꿈을 물어보는 것도, 좋은 대학을 포기하고 9급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비난할 수 없는 현실이다. 등록금은 비싸고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면 학자금 대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하고 졸업 후 몇 년을 지나야 겨우 대출금을 갚을 수 있다. 도전적인 일을 해보거나 창업을 해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한 번의 실패로 다시 도전할 기회마저 잃게 되는 낙인이 될 수 있다. 사십이 넘은 지금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좀 더 여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방황해도 좋은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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