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 솔출판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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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에 모든 것을 걸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일러두기에서 이야기의 소재와 대강의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과연 바둑 두는 것만 가지고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을지, 관전기가 어떻게 줄기가 있는 이야기가 될지 궁금하다. 한창 인터넷 바둑에 재미를 붙일 때여서 책장에 꽂혀 있던 이 책이 눈에 들어온다. 책의 맨 뒤를 보니 기보도 실어놓았다.  
  하지만 이 책을 반도 읽지 못했다. 두 대국자가 바둑판 앞에서 고심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주된 서술이어서 지루하기만 했다. 바둑이라면 정말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면 모를까, 나 같은 이는 못 읽겠다. 장고인 상대를 만나 빨리 두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괴롭다.

  책 말미에 신경림 시인이 작품 해설을 했는데 더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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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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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는 다릅니다
 

은퇴 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 위해 외딴 지방으로 이사 온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 그들 앞에 <이웃>이라는 한 남자가 찾아온다. 매일 오후 네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네>, <아니오> 대답밖에 하지 않으면서 두 시간을 버티는 이 남자 앞에서 노부부는 신경과민 상태에 빠지는데……’ - 표4글 가운데
 

   이 소설은 표지글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여 사건은 줄곧 반복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현실과는 달리 에밀의 내면은 점점 혼란스러워집니다. 그저 그렇겠거니 여겼던 일은 뜻밖에도 중대한 사건이 되고 결국 뜻밖의 사실로 치닫게 됩니다. 시간에 따른 에밀의 심리 묘사는 집요하고도 정연합니다. 질려버릴 정도입니다.

   이 소설 읽어보세요. 당신은 우리가 결코 같아질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같아질 수 없다는 게 비극이고 우리 사이의 한계라고 결론내리면 좀 곤란해집니다. 의도와는 벗어나게 되니까요.

   이 책을 다 읽던 날,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의 권유로 심리 검사를 받았습니다. 대개가 그러하듯 질문을 받으면 그 대답이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대충 짐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도 모르는 혹은 규정하지 못한 나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색다른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말이 있지만, 잘 안다는 것이 정확하게 안다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이야기 속 에밀은 어쩌면 정말 순진한 노인네일지 모릅니다. 황혼이 되기까지 줄곧 자신은 교양 있고 예의바른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믿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자기 안에 숨어 있던 다른 자아가 고개를 내밀 때 미칠 듯이 혼란스러웠겠지요. 아니, 내 안이 나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정했어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겠군요.

   나는 내 본질이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제까지 환경에 길들여진 자아와 본능적인 자아 중 어느 것이 내 본질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를 모른다니 약간은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합니다. 그래서 심리 검사에 관심이 쏠리기도 하는 모양일 테지요. 그래서 이야기 속 화자는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지는 것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별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자아들이 뭉쳐진 나 역시 나입니다. 하나의 인격만 가진 이는 드물 겁니다. 서로 다른 인격들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문제겠지요.

   나라는 한 개체의 속도 이렇듯 복잡한데, 나와 당신은 오죽 복잡하고 다르겠습니까. 에밀과 쥘리에트가 아무리 유치원에 다닐 때 만나 노인이 될 때까지 같이 살았다지만 - 이 사실은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엄연히 다른 존재들이고 둘 사이에는 분명 존재의 벽이 가로놓여 있을 겁니다. 낮든지 높든지 간에.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이 벽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담의 높낮이나 둘 사이의 거리를 잘 조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하지요. 이 간극을 무시하면 오히려 더 큰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는 결국 파탄과 불신, 그리고 헤어짐이 있겠죠. 너무 멀리 있어서 애초부터 만날 수 없는 사이도 있겠죠. 그리고 만났어도 조율할 수 없어서 헤어질 수도 있겠죠. 이해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릴 줄 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달라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자기합리화해야죠.

   당신과 나 사이에 객관적인 것은 없습니다.
   당신 아니면 나, 자기합리화 아니면 이해일 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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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 1 - 제1부 대망 - 출생의 비밀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 솔출판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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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대망大望 - 전9권  

 1권 출생의 비밀 
 2권 인질
 3권 호랑이의 성장
 4권 첫 출전
 5권 갈대의 싹
 6권 미카타가하라 전투
 7권 불타는 흙
 8권 폭풍우
 9권 혼노사의 변
 

 

도쿠가와의 출생, 오다의 허망한 최후

 

   일본 센고쿠戰國 시대를 마지막에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한 인간의 출생을 둘러싼 정세로부터 소설은 시작하고 있다. 이에야스의 성장을 줄곧 지켜보면서 각 시기의 주변 정세와, 관련된 인물들을 같이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전후前後에 해당하는 일본의 시기인 만큼 그 시대적 배경이나 분량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 문화,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그들 국민성의 단초도 찾게 될지 모른다.

  1부 대망은 센고쿠 시대 미카와 지역 성주의 아들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태어나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최후를 맞이하는 사실로 그 시작과 끝을 이룬다. 오닌의 난으로 일본은 군웅할거의 혼란한 시대에 처한다. 미약한 마츠다이라 가문에서 태어난 도쿠가와는 정략적으로 인질의 처지가 되는데, 이때 도쿠가와는 숙명적으로 오다를 알게 된다. 도쿠가와가 인질에서 넓은 영지 세 곳을 다스리는 다이묘大名가 되는 인고의 시간을 세월의 흐름을 따라 그리고 있다. 그러나 1부는 도쿠가와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흥미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더 있다. 오와리의 멍청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일삼던 오다가 쇼군과 거대한 다이묘들을 하나둘 쓰러뜨리고 일본 열도의 최강자가 되는 과정은 보다 흥미진진하고 다이나믹하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허망하기만 하다. 오다는 교토를 중심으로 일본 열도를 통일할 중요한 반석을 마련해놓고 죽은 것이다.

  이 소설은 도쿠가와를 재해석하고 경영의 모델로도 이해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출생에서부터 시작한 도쿠가와에 대한 서술은 관찰에만 머물지 않고, 그의 생각과 시기에 따른 의식의 변화까지도 세세히 보여주고 있다. 정세 파악, 리더로서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 부하에 대한 태도, 백성을 다스리는 원리 등 마치 실전에 대처해나가듯 시행착오와 반성과 성공이 들어 있다. 때문에 경영과 조직에 대한 이해의 본보기로 이 소설이 텍스트가 될 만하다.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허망한 최후를 맞는다. 내부의 조직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했던 오다가 부하의 모반으로 최후를 맞게 된다. 어려서부터 괴상한 행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던 오다는 옛날 관습과 제도를 부정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행동 양식을 만들어냈다. 구체제?구관습의 타파, 새 인물의 등용, 금은 광산의 경영, 화폐의 주조, 도로?교량의 정비, 관소關所(검문소)의 폐지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책을 냈다. 오다의 저돌적인 추진력과 카리스마는 센고쿠 시대라는 혼란기에 빛을 발할 수 있다. 군웅할거의 시기인 만큼 정답이라고 내려진 통일된 관습과 규범이 있을 리 없었다. 합리적이고 고착된 규범이나 제도보다 우선 운영할 수 있는 통일된 규범이나 제도가 더 필요하다. 리더의 카리스마로 조직의 운영과 통일된 규칙 마련이 가능하며, 오히려 이것이 확고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는 더 이상 통일된 규칙이 힘을 발휘해선 안 된다. 그것은 새는 곳이 보이지 않는 큰 허점일 수 있다. 주요 다이묘들을 제압하고 교토에까지 입성하고 나서 오다는 뭔가 달라진다. 긴장이 풀어지고, 부하에게 지나치게 대하며, 여전히 그의 말이 곧 법이 된다.

  결국 내부의 모반으로 그의 천하제패의 꿈은 수포로 돌아간다. 조직이 초기를 넘어서면 더 이상 통일적인 규칙은 필요치 않다. 이제는 일반적인 규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리더의 카리스마로 조직의 의사를 통일하여 운영하던 시기는 지난 것이다. 이제는 조직 구성원이 유추하여 이해하고 결정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일반화된 규칙이 필요하다. 리더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조직의 구성원은 행동의 잣대가 없으므로 적극적이 될 수 없으며, 늘 변하는 리더의 의중을 파악하느라 괜한 에너지를 소비할 것이다. 그야말로 조직이라면 모반이 일어날 만도 하다. 아니면 배신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안정된 조직은 인간으로 조직이 이루어졌음에도, 동력을 전달하여 전체가 굴러가게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서로의 약속과 신뢰로 만들어진 불문의 규칙일지도 모른다.

  야마오카는 오다의 최후를 그리는 장면에서 이에 대한 평과 그의 죽음 이후에 대한 암시를 오다의 아내 노히메의 머릿속을 빌려 말하고 있다.

  ‘그는 역시 우다이진도 아니고 천하를 손에 넣을 사람도 아니었다. 난마처럼 얽혀 손을 댈 수 없는 전국에 하나의 길을 트기 위해 산을 깎고 나무를 베고 숲을 불태운 파괴자였다. 그 파괴자가 자기 피를 뿌려가며 파헤친 땅에서 열매를 수확할 자는 따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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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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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이 버거운 어느 후배에게...
 

너 고민이 무척 많구나. 늙은이의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럴 나이더구나. 스물다섯 살은 정말 중요한 시기이고, 그러니 만큼 혼란스럽고 힘이 들겠지.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잘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무엇을 하고 싶기는 한데, 나에게 맞는지 모르겠고, 정말 이 길에 만족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나서 고민에 생각이 많을 네가 떠오르더구나. 그래서 이 책을 빌려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려 한다.

변화경영전문가 구본형 씨가 자기 관리에 관한 내용으로 단숨에 읽어낼 만한 적은 분량으로 책을 냈다. 자신에 관해서 또는 자신과 조직에 관해서 아홉 가지로 정리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니? 너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니? 스스로에 대해 더 냉정해져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장단점이나 한계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의 이야기에 너무 솔깃할 필요는 없어. 남들은 나에 대해 나만큼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못하거든. 어쩌면 스스로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그 해석이 가장 적당할지 몰라.

자신의 하루를 곰곰 되짚어가다보면 자신이 두 얼굴을 가졌구나 하고 당황스러워지기도 할 거야. 하지만,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인간에게 일곱 가지 감정이 있다는데, 어찌 한 모습만 보여지겠니. 조용조용하기도 하고, 또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온화하기도 하고, 불같이 노여워하기도 하는 게 사람 아니겠니. 그게 바로 솔직함이 아닐까.

자유롭고 싶니? 그저 막연히 자유롭고 싶니? 무작정 길을 떠나 갈 곳이 어딘지 모르는 나그네는 결국 길에 쓰러져 죽기 마련이지. 무작정 길을 떠나도 갈 곳이 어딘지는 알아야 하지. 그게 자유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가면서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인가, 아니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가는 것이 옳은가. 그것이 가장 어려운 자유가 아닐까. 구본형 씨는 창조적 괴짜가 되라고 말한다. 괴짜는 사회적 통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하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규칙도 어느 정도 신경 써야 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이 되어선 안  되리라. 자연은 인간의 관례와 윤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이 완벽하지 않은가. 자신의 감각, 판단에 의존하는 습관을 길러야 해. 진정한 자기 길을 찾기 위해.

여성 경영자가 점점 많아지고, 또한 그들의 성공이 적잖이 들려온다. 이 시대에 옛날의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남성 중심의 경영은 낡은 것이라고 한다. 대신 여성의 감각적인 특징, 세심함이 경영에 반영될 것이라고 한다. 좋은 현상이다. 남성과 여성은 각각 자신의 특징을 알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판단과 함께 여성 자신의 특징에 대한 자신감이 필요하리라 본다.

웃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시간은 금이라고들 한다.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시간을 금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이 우리가 시간을 잘 다룬다는 의미인가? 소중하니까 쪼개서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진정 시간을 잘 관리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시간을 잘 쓰는 것이다. 쪼개서 무언가를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일을 할 시간과 쉬어야 할 시간과 놀아야 할 시간 등등을 잘 안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쓸데없는 약속은 버리라고 한다. 약속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아야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스물네 권의 책을 읽어라.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 하지만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책은 과감히 포기해버려야 한다. 대학 때 한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50쪽까지 읽었는데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버리고 다른 책을 집어라.”

놀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 자신에게도 배려가 필요하다. 가끔은 자신을 떼어내서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몸뚱이, 혹은 정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멀리서 관찰해보자.

아빠 앞에 ‘부자’ ‘가난한’이라는 말을 달지 마라. 아빠는 부자나 가난으로부터 주어지거나 빼앗기는 게 아니다.

변화의 핵심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 하지 말고, 잘 하는 것에 더 투자하라고 한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 하면 그저 다른 이들과 같아지는 것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니체가 내뱉은 한 마디로 끝내자.

춤추는 별 하나가 태어나려면 그 내면에 카오스를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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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 마로니에북스 3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청림출판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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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같은 소설?
 

설국'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자연스레 가질 수 있는 분위기, 선입견.

그래서 찬바람이 불고 눈 소식이 날아들면서 서점에 들러 무심코 집어든 책이 설국이다.

어느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밤 새워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자연 시간에 고체, 액체, 기체를 배울 때 여러 가지 물체들을 준비해 와 만져가며 공부했다. 그때 젤리 사탕은 과연 고체일까 액체일까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고체가 되었건 액체가 되었건 젤리 사탕을 좋아하고, 먹는 데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놓았는지, 사건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감상 노트에는 친절하게도(?) 일본의 민족문화에서 기인하는 특이성이므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소설의 진가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젤리 사탕처럼 읽는 데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뼈대 만지기를 포기하고, 그 이미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열차를 타고 도착한 강원도의 어느 간이역 대합실. 차창 밖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힌 세상. 난로의 온기로는 도저히 데워질 수 없는 휑한 대합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면도날 같은 냉기. 목적지 없이 도착한 이 시골 마을의 갈 곳 없는 여정. 역사를 나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를 망설임. 휑한 대합실 안에 같은 이정을 가진 어느 여인. 몸을 부르르 떨며 어느새 머릿속에 차고 드는 불경한 상념. 여인의 따스한 체온. 단내 나는 체취.

글을 따라 읽다 어느 틈에 이런 망상을 하고, 이내 피식 웃고, 다시 글을 따라가고, 또 어느 틈에 이런 망상을 하고. 책을 덮을 때까지 이런 읽기와 망상을 같이 했다.

누군들 꿈 꾸어보지 않았으랴. 이런 불온한 자유를......

여전히 이 소설이 어째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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