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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 마로니에북스 36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청림출판 / 1991년 11월
평점 :
품절
젤리 같은 소설?
설국'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자연스레 가질 수 있는 분위기, 선입견.
그래서 찬바람이 불고 눈 소식이 날아들면서 서점에 들러 무심코 집어든 책이 설국이다.
어느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밤 새워 이 책을 읽으리라 생각하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
'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자연 시간에 고체, 액체, 기체를 배울 때 여러 가지 물체들을 준비해 와 만져가며 공부했다. 그때 젤리 사탕은 과연 고체일까 액체일까 헷갈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도 고체가 되었건 액체가 되었건 젤리 사탕을 좋아하고, 먹는 데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놓았는지, 사건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감상 노트에는 친절하게도(?) 일본의 민족문화에서 기인하는 특이성이므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소설의 진가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그러나, 젤리 사탕처럼 읽는 데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뼈대 만지기를 포기하고, 그 이미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열차를 타고 도착한 강원도의 어느 간이역 대합실. 차창 밖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힌 세상. 난로의 온기로는 도저히 데워질 수 없는 휑한 대합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면도날 같은 냉기. 목적지 없이 도착한 이 시골 마을의 갈 곳 없는 여정. 역사를 나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모를 망설임. 휑한 대합실 안에 같은 이정을 가진 어느 여인. 몸을 부르르 떨며 어느새 머릿속에 차고 드는 불경한 상념. 여인의 따스한 체온. 단내 나는 체취.
글을 따라 읽다 어느 틈에 이런 망상을 하고, 이내 피식 웃고, 다시 글을 따라가고, 또 어느 틈에 이런 망상을 하고. 책을 덮을 때까지 이런 읽기와 망상을 같이 했다.
누군들 꿈 꾸어보지 않았으랴. 이런 불온한 자유를......
여전히 이 소설이 어째서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지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