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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강한 농업 - 도시청년, 밭을 경영하다
히사마쓰 다쓰오 지음, 고재운 옮김 / 눌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고백하건대, 한때 농사를 지을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지했었나 싶을 정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때의 생각은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불만과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일 뿐이었구나 깨달았지요. 농업을 히사마쓰처럼 접근했다면 달라졌을까 자문해봅니다.
지금은 농업이 아닌 다른 업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히사마쓰의 작고 강한 농업을 나만의 ‘작고 강한’ 무엇으로 등치시키곤 했습니다. 작고 강한 농업을 위한 히사마쓰의 다양한 방식과 수고로움은 ‘열정’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도구와 기계가 많은 지금과 같은 시대일수록 바탕에 깔린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답니다. 또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싶기도 할 겁니다. 열정이 워낙 흔하고 부정적인 뜻을 담은 말이 되어버렸지요. 그런데 히사마쓰의 말을 뒤집어보면 좀 달라집니다. 수많은 도구(정보)와 달라진 조건에서 적합한 도구와 방식을 찾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다. 열정 대신 소명이나 신념을 넣어볼까요. 이러한 추상어를 유지하고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적합한 도구를 찾아야 합니다.
히사마쓰는 고백합니다. ‘컴퓨터가 없는 시대였다면 농업을 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해마다 50종이 넘는 제철 유기농 채소를 생산해서 직접 판매까지 관여하여 작은 기업을 유지하려면 강력한 동기 부여와 철저한 업무 효율화를 통하지 않으면 힘듭니다. 업무의 효율화의 핵심은 바로 농사일을 ‘언어화’한 문서 관리와 IT 기술 활용입니다. 전통사회에서 작물 몇 십 종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농가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 비법을 전수했거나 지주 집안이어야 할 겁니다. 달라진 조건과 약한 자본에 맞는 도구와 방식을 찾은 것입니다.
이 같은 박리다매식 농업은 까다로워진 수요라는 난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작은 사업은 작은 수요를 제조업자가 직접 챙기고 대상을 정확히 노려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판매 규모에 적합한 생산과 자본 규모를 잘 유지해나가야 합니다. 현실과 동경을 구분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리지 않게 하는 것도 열정/소명/신념입니다.
농업의 매력을 표현한 히사마쓰의 말이 참 좋습니다. ‘날씨와 식물을 뜻대로 할 수 없으니 더욱 매력적이다.’ 그의 말에서는 ‘불가역의 자연’ 대신 ‘정성을 다한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열정이나 소명이나 신념은 정성을 다하게 해줍니다.